14.7Km 2025-07-18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누에고치모양처럼 남북으로 길게 누워 낮은 구릉을 이루는 이 산은 신라 실성왕 12년(413)부터 신성하게 여겨져 성역으로 보존되어 온 곳이다. 기록에는 “왕이 낭산에 상서로운 구름이 서린 것을 보고 신하들에게 신령이 하늘에서 내려와 노는 곳이니 당연 복을 주는 지역이다. 이제부터는 낭산의 나무 한 그루도 베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한다. 7세기부터는 불교의 성스러운 산으로 왕실에 복을 주는 장소로 변하기 시작하였다. 선덕여왕의 유언에 따라 만든 여왕의 능을 비롯하여 신라 향가의 현장인 사천왕사지, 문무왕의 화장터로 여겨지는 능지탑, 바위에 부처를 새긴 마애불, 구황리 삼층석탑 등 신라 유적이 많이 있다.
14.7Km 2025-12-11
경상북도 경주시 보문동
경주 낭산의 정상에 있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릉(재위 632∼647)은 646년경에 조성되었다. 높이 6.8m, 지름 23.6m의 원형 봉토분이며, 자연석을 이용해 봉분 아래에 2단 보호석을 쌓은 것 외에는 별다른 장식이 없다. 선덕여왕은 아들이 없던 진평왕의 딸로 태어나 성골이라는 특수한 신라 왕족 의식에 의해 신라 최초의 여왕이 되었다. 재위 16년간 첨성대와 분황사, 특히 신라 최대의 황룡사 9층 목탑을 세웠으며, 훗날 태종 무열왕이 되는 김춘추와 명장 김유신과 함께 신라 삼국통일의 기초를 닦았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선덕여왕이 죽을 날을 예언하며 부처의 나라인 도리천에 묻어 달라고 했다고 한다. 도리천은 불교 설화의 수미산 밑을 이야기하는데 어디를 말하는지 몰라 신하들이 묻자, 낭산 기슭이라 대답하였고, 이 기슭에서 장사를 지냈다. 이후 문무왕이 삼국통일을 한 후 낭산에 사천왕사를 지었다. 사천왕이란 도리천의 호불신으로 선덕여왕의 무덤은 결국 도리천에 있는 셈이 되어 비로소 신하들이 낭산의 정상이 도리천이라 한 여왕의 뜻을 알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경수 선덕여왕릉은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주변에 신문왕릉, 효공왕릉, 신무왕릉, 효소왕릉 등이 있다.
14.8Km 2025-07-08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용전1길 60
반룡사는 경북 경산시 용전면 구룡산 자락(반룡산)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의 말사이다. 661년 원효대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전기에 원응국사가 ‘신흥암’이라는 이름으로 중창하였다. 이후 임진왜란을 겪으며 소실되었고, 조선 후기에 사찰의 면모를 회복하였다. 반룡사는 인조 대부터 숙종 대까지 60여 년 동안 총 25개의 전각을 건립하여 대가람을 이루며 ‘신흥사’를 반룡사로 개칭하였다. 하지만 화재로 많은 전각이 소실되었다. 1968년 중창하였고 이후에도 산식각, 용왕각 등을 완공한 후 2018년 요사채를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반룡사에는 경상북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산 반룡사 화문면석 부재 10여 점이 보관되고 있다. 이 밖에도 1741년 조성된 종형 부도 1기가 유존하고 있다.
14.8Km 2025-07-24
경상북도 경주시 통일로 367 (배반동)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소는 신라 천 년의 시간을 흐르는 경주 남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응한 산림환경조사, 산림병해충의 친환경 방제, 우량수목 등 식물 유전자원 보존 및 증식, 천연기념물 후계목의 증식과 보존, 병해충을 방제 등 산림보호를 위한 연구 기관이며, 지방 정원, 숲 체험원 조성으로 생태휴양공간을 마련하고 산림의 효율적인 경영과 보호를 위한 임도 및 사방사업을 수행하는 산림 전문 연구기관이다. 숲공원으로 지자체가 조성하고 관리하는 국가 정원으로는 국내 5번째이고, 경북에서는 첫 번째 숲 정원이다. 경북천년숲정원은 다양한 테마로 조성된 정원과 오솔길. 메타세콰이어 숲길, 거울숲, 외나무다리 등 이 있으며, 각 구역별 계절별 꽃을 피우는 나무와 야생화들이 식재되어 있어 각기 다른 공간적 특징을 지니며 계절에 따른 변화도 즐길 수 있다. 식물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는 안내문도 잘 작성되어 있어 아이들의 교육현장으로도 좋다.
14.8Km 2025-09-09
경상북도 경주시 알천북로 421-11
라플레르는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에 있다. 고풍스러운 느낌의 외관과 깔끔한 인테리어가 눈에 띄는 곳이다. 대표 메뉴는 아메리카노이며, 카페라테, 바닐라라테, 카페모카, 더치커피, 더치라테 등도 맛볼 수 있다. 이 밖에 한식 요리로 구성된 브런치 메뉴도 인기가 많다. 경주 IC에서 가깝고 인근에 첨성대, 보문관광단지, 경주CC 등 경주의 내로라하는 관광지가 빼곡하다.
14.8Km 2025-07-07
경상북도 경주시 새남산길 62
화랑교육원은 신라 화랑의 얼을 계승하여 투철한 국가관을 확립하고 바른 품성과 인격을 도야하기 위한 목적으로 1973년 전국 최초 학생 교육원으로 개원하였다. 시설은 화랑관, 운동장, 강당, 식당. 정자, 생활실 등이 있으며 프로그램으로는 화랑 안전체험, 호연지기 체험, 화랑 심성교육 등 신라 중요한 유적 답사 체험과 주말 국궁체험 등을 진행하고 있다. 화랑교육원에서는 자아존중, 이웃사랑, 충효실천의 원훈 아래 참다운 미래 지도자 양성을 위하여 충, 효, 신, 용, 인의 화랑정신을 창조적으로 계승할 수 있는 양질의 수련 활동을 제공한다.
14.8Km 2025-11-06
경상북도 경주시 통일로 366-4 가든센터
경주 동남산 기슭에 자리한 경북천년숲정원은 본래 경상북도 산림환경연구원이었다. 산림환경을 조사하고 천연기념물 후계목 증식·보존, 병해충 방제 등 산림 보호를 위한 연구를 수행하던 기관이었으나, 2023년 시민에게 숲공원으로 개방되었다. 지자체가 조성하고 관리하는 지방정원으로는 경북천년숲정원이 국내 다섯 번째이자, 경북에서는 첫 번째이다. 아스팔트 도로를 기준으로 서쪽은 경북 산림 환경연구원이 있고 동쪽으로 숲과 오솔길, 개울과 정원 등이 조성되어 있다. 메타세쿼이아 숲길을 따라 들어가면 제일 먼저 거울 숲을 만난다. 외나무다리에 서면 맑은 실개천에 그 모습이 거울처럼 비친 다하여 이름이 지어진 곳이며 분재원과 암석으로 조성된 정원과 구름폭포, 바닥분수가 있는 서라벌 정원, 마지막으로 버들 못 정원을 만날 수 있다. 각 구역별 다양한 나무와 꽃들이 식재되어 있어 각기 다른 공간적 특징을 지니며 계절에 따른 변화도 즐길 수 있다. 식물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는 안내문도 잘 작성되어 있어 아이들의 교육 현장으로도 추천하며, 차로 10분 거리에 동궁과 월지, 선덕여왕릉과 월정교 등이 있으니 경주 여행 코스로 함께 방문해도 좋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강덕순 애정 변천사> 석삼에 대한 설움과 부모님을 향한 미안함이 한데 뒤섞여 덕순이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외나무다리가 있던 곳이다. 극 중에서 빨래터로 등장한 외나무다리 주변은 사진 명소로 특히 유명하다.
14.9Km 2025-10-23
경상북도 경주시 하강선길 43-16 (보문동)
010-3050-7856
덕만재는 신축 한옥 독채 펜션으로 하루 한 팀만 이용하는 프라이빗한 숙소입니다. 선덕여왕릉 아래 고즈넉한 곳에 위치해 조용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자랑합니다. 넓은 잔디마당과 길고양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아늑함을 더합니다. 동굴과 월지, 황리단길, 불국사 등 경주 주요 관광지와 차량 15분 거리입니다.
14.9Km 2025-12-11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이 능은 신라 제49대 헌강왕(재위 875~886)의 무덤이다. 경문왕의 맏아들로서 왕위를 이었다. 헌강왕은 왕은 불교와 국학에 큰 관심을 가지고 문치를 지향하였다. 재위 기간에 해마다 풍년이 들어 태평성대를 이루었는데, 거리마다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일본왕이 황금을 바칠 정도였다고 한다. 헌강왕이 죽은 후에 보리사 동남쪽에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 능이 있는 곳은 경주 남산 북동쪽의 자락이다. 무덤은 높이 4.2m, 지름 15.3m의 둥근형태로 흙을 쌓은 원형 봉토무덤으로,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무덤 밑둘레에 돌을 4단으로 쌓았다. 1993년에 발굴조사로 석실 내부 구조를 확인했다. 동남쪽으로 널길이 있고, 서쪽으로 석실을 배치하였다. 석실 입구에 돌문, 문지방, 폐쇄석 등이 있으며, 서쪽 벽 접하여 시신을 안치한 시상이 있다.
14.9Km 2025-12-11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경주 북천가에 있는 신라 제41대 헌덕왕(재위 809~826)의 무덤이다. 헌덕왕의 본명은 김언승이며, 조카인 애장왕을 죽이고 왕이 되었다. 재위기간 동안에 농사를 권장하고 당나라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으나, 김헌창의 난과 김범문의 난이 일어나는 등 국내정세가 혼란스러웠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826년에 왕이 죽자 천림사의 북쪽에 장사 지냈다고 한다. 천림사의 위치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 왕릉의 남쪽에 절터가 있어 이곳을 천림사 터로 본다. 이 능은 원형 봉토분으로 지름 26m, 높이 6m이다. 봉분 밑의 둘레를 따라 둘레돌을 배치하여 무덤을 보호하도록 하였다. 둘레돌은 먼저 바닥에 기둥 역할을 하는 돌을 한단 깔고, 그 위에 넓적한 돌(면석)을 세웠다. 면석사이에는 기둥역할을 하는 탱석을 끼워 고정시켰다. 탱석에는 무덤을 수호하는 상징적 의미로 방향에 따라 12지신상을 조각하였는데, 이 무덤에는 현재는 12지신상 중 돼지(해)·쥐(자)·소(축)·호랑이(인)·토끼(묘) 등 5개상만이 남아있다. 둘레돌 밖으로는 돌기둥을 세워 난간을 설치하고, 둘레돌과 난간 사이 바닥에는 돌을 깔았다. 지금의 모습은 1970년대에 정비된 것으로, 둘레돌의 일부와 돌난간석을 새로 만들었다. (출처 : 국가유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