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의당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충의당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충의당

13.8Km    2025-06-26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 이조3길 28-17

조선 중기의 무신 정무공 최진립(1568∼1636)이 살았던 곳으로 가옥의 사랑채에 해당한다. 최진립 장군은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이끌었고, 정유재란 때 권율 장군을 도와 공을 세웠다. 충의당은 처음에는 당호를 흠흠당이라 했는데 1760년경 건물을 수리한 후 충의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건물은 앞면 4칸, 옆면 2칸으로 홑처마 팔작지붕을 하고 있으며 뒤편에는 정침과 고방채가 있고 오른쪽에 제향공간이 있어 조선시대 상류주택의 전형적인 배치방법을 지니고 있다. 그가 지냈던 충의당은 경주 최부자집의 시작이라 볼 수 있으며, 현재 일부는 고택체험이 가능한 한옥스테이 객실과 다실로 운영된다. 숙박 시 충의당 휴게실, 정무공 최진립 장군 동상이 있는 충의공원, 충의당 유물관과 사당, 잔디마당 등을 둘러볼 수 있다.

경주 황룡사지

경주 황룡사지

13.8Km    2025-09-23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

황룡사는 6세기 신라시대 때 만들어져 고려 13세기 몽고의 침입으로 불타 없어진 사찰로 지금은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터만 남아있다. 면적 8,800평 규모에 불국사의 8배나 되는 대형 사찰로 추정된다. 왕명으로 553년(신라 진흥왕 14)에 창건하기 시작하여 566년에 주요 전당들이 완성되었고, 금당은 584년(진평왕 6)에 완성되었다. 선덕여왕 14년(645년) 탑의 건조까지 모두 완성된 황룡사는 신라의 호국 신앙의 중심지였다. 황룡사 경내에는 신라 보물 중 하나인 황룡사 구층 목탑이 있었으며 이는 당나라 유학 후 돌아온 승려 자장대사의 건의로 백제의 아비지에 의해 3년 만에 완성된 신라의 상징물이었다. 현재 구층 목탑이 서 있던 자리에는 탑을 지탱해 주었던 중앙 기둥 주춧돌인 심초석이 남아 있다. 이 절은 신라 왕궁 월성의 동쪽에 있었는데, 그 창건 기록에 따르면 진흥왕이 새로운 궁을 월성 동쪽 낮은 지대에 건립하려 했으나 그곳에서 황룡이 승천하는 모습을 보고, 왕이 새로운 궁 건립을 중지하고 절로 만들게 하여 황룡사라는 사명을 내렸다고 한다. 국가적인 사찰이었기 때문에 역대 국왕의 거동도 잦았고 신라 국찰 중 제일의 자리를 지켰다. 신라 멸망 후에도 고려 왕조에 이어져 깊은 숭상과 보호를 받았으며 탑의 보수를 위해 목재까지 제공받았다. 그러나 1238년(고종 25) 몽골군의 침입으로 탑은 물론 모든 건물이 불타 없어졌다. 1969년 강당지를 발굴조사하여 금당, 강당, 탑지의 초석을 발굴했고, 1976년 3월부터 8년간의 발굴 작업에서 독특한 가람배치인 일탑 삼금당식으로 밝혀졌으며, 4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기단을 비롯한 건물 하부구조는 확인되었으나, 상부가 정확히 고증되지 않아 전체적인 복원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64개 주춧돌로 된 기단부만 복원하였다. 황룡사지 터 옆에는 황룡사 건립부터 소실까지의 과정을 담은 3D 영상 시청각실, 발굴조사 과정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한 신라 역사전시실 등으로 구성된 황룡사지 황룡사 역사문화관이 있으며 1층에는 황룡사 구층 목탑을 10분의 1 크기로 재현한 모형탑이 전시되어 있다.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13.9Km    2025-09-23

경상북도 경주시 산업로 4214-76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은 경주 굴불사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바위 불상으로 약 높이 3미터의 바위 네 면에 불상이 조각되어 있어서 사면석불이라 부른다. 이 사면불의 서쪽은 서방 극락세계의 아미타삼존불, 동쪽은 유리광세계의 약사여래불, 북쪽은 미륵불, 남쪽은 석가모니불을 각각 새긴 사방불의 형태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이 백률사를 찾았을 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땅을 파보니 이 바위가 나와서 바위의 사방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굴불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이 기록만으로는 분명하지 않지만, 여러 가지 여건으로 보아 이때쯤 불상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은 불상조각에 있어 입체의 표현, 음각과 양각의 표현, 좌상과 입상의 표현 등을 변화 있게 배치해 매우 특색이 있으며 풍만하고 부드러우면서 생기를 잃지 않은 솜씨를 볼 때 통일신라 초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분황사 청보리밭

분황사 청보리밭

13.9Km    2025-09-16

경상북도 경주시 분황로 94-11

경주의 분황사 주변에는 매년 봄 싱그러운 청보리밭이 펼쳐진다. 추석 직후에 파종한 보리가 이듬해 봄부터 초여름까지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분황사 주차장에서 황룡사지 방향을 바라보면 황룡사 역사문화관을 배경으로 짙푸른 청보리밭이 끝도 없이 펼쳐진다. 파란 하늘과 따스한 햇살, 봄바람에 일렁이는 청보리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해 질 무렵에는 노을에 물든 청보리가 황금빛으로 반짝이며 천년 경주의 매력을 더한다.

경주횟집 지중해

경주횟집 지중해

13.9Km    2025-10-23

경상북도 경주시 알천북로 325 (동천동)

경주시 동천동에 위치한 경주횟집 지중해는 다양한 해산물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메뉴는 생선회, 전복 등의 해산물을 1인 1접시로 차려 대접받는 느낌을 주는 모둠회와 생선회, 모둠구이, 랍스터 구이 또는 대게다리 등 다양한 해산물로 구성되어 있는 지중해 스페셜 코스요리 등이 있다. 이외에도 광어, 우럭, 참가자미, 자연산 잡어 등을 싱싱하게 회로 맛볼 수 있으며, 물회와 횟밥 등의 메뉴도 준비되어 있다.

경주 탈해왕릉

경주 탈해왕릉

13.9Km    2025-09-23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

경주 동천동에 있는 신라 제4대 탈해왕(재위 57~80)의 무덤으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있다. 무덤의 형식 자체는 일반적이나, 신라 초기의 왕릉이고 특히 최초의 석 씨 왕릉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 무덤은 높이 4.5m, 지름 14.3m 크기로 둥글게 흙을 쌓아 올린 봉토무덤이다. 주변에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았으며, 겉으로 보아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으로 추측된다. 왕릉 초입에는 탈해왕의 제사를 모시기 위한 전각 숭신전이 있다. 탈해왕은 신라 최초의 석 씨 왕으로 62세에 즉위하여, 24년 만에 세상을 떠났으며, 왕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왜국에서 동북쪽으로 1천 리 떨어져 있는 다 파나 국(또는 완하국, 용성국)의 왕비가 잉태한 지 7년 만에 큰 알을 낳았다. 이는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 하여 그 알을 궤에 넣어 바다에 버리니 동해 아진포에 닿았다. 그때 한 할머니가 이것을 열어 보고 어린아이가 있어 데려다 길렀다. 배에 까치들이 울며 따라왔으므로 까치 작(鵲)에서 새 조(鳥) 자를 떼서 석(昔)으로 성을 삼고, 아이가 궤를 풀고 나왔다 해서 이름을 탈해(脫解)라 지었다. 탈해왕은 석 씨의 시조로서 신라 최초 석 씨 왕이 되었다.

분황사

분황사

13.9Km    2025-11-14

경상북도 경주시 분황로 94-11

분황사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 불국사의 말사이다. 선덕여왕 3년인 634년에 창건된 사찰로, 원효대사와 자장법사가 머물렀던 역사 깊은 절이다. 절 안에는 국보로 지정된 모전석탑이 있으며, 이는 통일신라 이전에 세워진 대표적인 전탑 양식이다. 모전석탑은 본래 5층 이상이었으나 현재는 3층만 남아 있으며, 고려시대에도 보수가 이루어졌음을 사리장치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탑 1층에는 감실과 수문장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석사자상도 함께 배치되어 있다. 경내에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형 돌우물인 삼룡변어정이 있으며, 호국용 전설이 전해진다. 이 우물은 1965년 석불 14구가 출토된 유서 깊은 장소이기도 하다. 분황사에는 약사전, 약사여래입상, 석등, 대석 등 다양한 유적이 남아 있다. 화쟁국사비부는 원효대사를 기리는 비석의 받침돌로, 고려 명종 때 만들어졌다. 현재 분황사는 역사적·문화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고찰로 평가받고 있다.

백률사(경주)

백률사(경주)

14.0Km    2025-12-11

경상북도 경주시 산업로 4214-110 (동천동)

경주시 북쪽 소금강산 중턱에 자리한 백률사는 신라 법흥왕 14년(527) 불교 공인을 위해 순교한 이차돈을 기리기 위한 절이자, 신라의 불교 성지이다. <삼국유사>와 헌덕왕 때 작성된 <향전>에 따르면 이차돈은 법흥왕의 명을 받들어 불교를 공인하고 사찰을 짓기 위해 순교했는데, 참수형을 받고 이차돈의 목을 베니 흰색 피가 솟아 나오고 꽃비가 내리는 등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불교 공인을 반대하던 신하들도 이것을 보고 마음을 돌렸다고 하며 이차돈의 아내가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차돈의 목이 베려 날아가 떨어진 자리에 자추사를 지었다고 전한다. 백률사는 이 기록에 나오는 자추사일 것으로 추정된다. 백률사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 후에 다시 지었으며, 기단부는 일부 신라시대 양식을 지니고 있다. 과거 대웅전에 모셨던 금동약사여래입상은 불국사의 금동아미타여래좌상,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으며, 이 세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3대 금동불로 알려져 있다. 금동약사여래입상과 이차돈의 석당은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대게장순두부 금성관

대게장순두부 금성관

14.0Km    2024-06-27

경상북도 경주시 초당길 117

대게장순두부 금성관은 경상북도 경주시 동천동에 있다. SBS 시사 교양 프로그램 모닝와이드, KBS 2TV 시사 교양 프로그램 생생 정보통 등 여러 방송에 소개됐다. 세월의 흔적이 엿보이는 외관과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내부에는 단체석이 마련되어 있어 각종 모임을 하기 좋다. 대표 메뉴는 대게를 통째로 갈아 넣고, 게살과 장을 순두부와 함께 끓인 대게장순두부다. 전복 등 각종 해산물을 넣어 만든 전복해물뚝배기도 많은 사람이 찾는다. 이 밖에 불고기뚝배기, 해물파전, 꽃게간장게장, 꽃게양념게장, 전복갈찜 등도 준비되어 있다. 경주IC에서 가깝고, 주변에 보문관광단지, 경주동궁원, 경주월드가 있어 연계 여행에 나서기 좋다.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14.0Km    2025-12-11

경상북도 경주시 탑골길 36 (배반동)

경주 남산 이 일대는 통일신라시대에 신인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이다. 남쪽의 큰 바위에는 목조건물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석탑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남쪽면의 불상을 주존으로 하여 남향 사찰을 경영했었음을 알 수 있다. 9m나 되는 사각형의 커다란 바위에 여러 불상을 회화적으로 묘사하였다. 남쪽 바위면에는 삼존과 독립된 보살상이 배치되어 있고, 동쪽 바위면에도 불상과 보살, 승려, 그리고 비천상을 표현해 놓았다. 불상, 보살상 등은 모두 연꽃무늬를 조각한 대좌와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 한 광배를 갖추었으며 자세와 표정이 각기 다르다. 비천상은 하늘을 날고 승려는 불상과 보살에게 공양하는 자세이지만, 모두 마멸이 심해 자세한 조각 수법은 알 수 없다. 서쪽 바위면에는 석가가 그 아래에 앉아서 도를 깨쳤다는 나무인 보리수 두 그루와 여래상이 있다. 하나의 바위면에 불상·비천·보살·승려·탑 등 다양한 모습들을 정성을 다하여 조각한 것은 장인의 머릿속에 불교의 세계를 그리려는 뜻이 역력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조각 양식은 많이 도식화되었으나 화려한 조각을 회화적으로 배치하여 보여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특이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