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Km 2025-04-29
경기도 구리시 안골로97번길 38 (수택동)
상우씨알탕은 구리 전통시장 곱창골목 근처의 수택동에 있는 알탕 맛집이다. 밖에서 보면 마치 한옥의 툇마루를 연상시키는 좌식 좌석이 창 너머로 보이고 날씨가 좋은 날은 창을 위로 걷을 수 있어 시원하다. 안에는 입식 좌석도 있어 편하게 취향에 맞는 곳에 골라 앉으면 된다. 주메뉴는 알탕이다. 전골처럼 좌석에서 끓여 먹는데 알뿐만 아니라 곤이, 각종 채소류까지 건더기가 풍부하다. 추가 메뉴로 전류들이 있어 매콤한 탕과 곁들여 먹으면 더욱 맛나게 먹을 수 있다.
6.4Km 2025-08-20
서울특별시 성북구 흥천사길 49-23 (돈암동)
적조사는 성북구 돈암동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소속사찰이다. 1849년(헌종 15) 혜암성혜 스님이 염불관선(마음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 부처를 생각하는 수행법)의 수행도량으로 삼고자 흥천사의 산내 암자로 창건하였으며, 칠성각을 건립하여 국가축원 기도처로 유명하였다. 이후 가람이 소실되어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58년에 학월경산(1917~1979) 스님이 주석하면서 복원 불사를 일으켜 가람을 정비하였다. 1970년대 후반 흥천사의 산내암자에서 사격이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적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세 번 역임한 경산스님이 1979년 입적하기 전까지 주석하며 헌식적으로 전법교화에 진력하였던 도량이다. 입적 이후 스님이 사리를 수습하여 1982년 사리탑과 비석이 조성된 사찰로서 경산스님의 수행과 전법은 현대불교사에 뚜렷한 자취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 또한, 적조사는 1980년 10월 계엄사령부의 합동 수사본부 합동 수사단이 불교계 정화를 명분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및 불교 관련자를 강제로 연행 및 수사하고, 포고령 위반 수배자 및 불순분자를 검거한다는 구실로 군·경 합동으로 전국의 사찰 및 암자 등을 수색한 사건인 10·27법난의 피해사찰이다.
6.5Km 2025-03-24
서울특별시 도봉구 시루봉로15마길 13 (방학동)
마을극장 흰고무신은 계훈제 선생님의 옛집터에 건설된 문화시설로 2018년 9월 2일 개관하였다. 1990년부터 세상을 떠나던 1999년까지 방학동에서 거주했으며, 2002년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선정되었다. 그의 업적와 정신을 기리고자 매년 수안 연극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지역거주민들을 위한 맞춤형 문화예술 및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6.5Km 2025-06-24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17길 46 (방학동)
연산군묘는 조선 10대 연산군(재위 1494∼1506)과 거창군부인 신씨(1476~1537)의 묘이다. 연산군은 9대 성종과 폐비 윤씨의 아들로 태어나 1494년 왕위에 올랐다. 즉위 초에는 성종 대의 평화로움이 그대로 이어졌다. 사치풍조를 잠재우기 위해 구체적인 금지 조항을 만들어 단속하였고, 종묘에 신주를 모시는 제도를 새롭게 정비하였으며, 비융사를 설치하여 철갑옷과 무기를 만들어 생산하는 등 국방정책에도 힘을 썼다. 그러나 무오사화(戊午士禍, 성종실록 편찬 중 김일손 등 사림이 훈구파에게 화를 입은 사건으로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원인이 되어 사림이 피해를 본 사건)와 갑자사화(甲子士禍, 생모 폐비윤씨의 사사사건을 이용하여 훈구 및 사림파들이 척신파에게 화를 입은 사건)로 많은 사람을 죽이고, 사화 이후 국정에 관심을 두지 않기 시작하여 사치와 향락으로 조정이 어지러워졌다. 결국 1506년 중종반정으로 폐위되어 강화도로 유배되었고 그 해에 세상을 떠났다. 거창군부인 신씨는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으나, 1506년 중종반정으로 왕비에서 폐위되었다. 연산군묘는 하나의 곡장 안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분의 형식으로,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서쪽)이 연산군, 오른쪽(동쪽)이 거창군부인의 묘이다. 연산군은 1506년(중종 1) 유배지인 강화 교동에서 세상을 떠나 그곳에 묘가 조성되었다가, 1512년(중종 7) 거창군부인이 중종에게 연산군묘 이장을 요청하여 양주 해촌(현 도봉구 방학동)인 지금의 자리로 묘를 옮겼다. 이후 1537년(중종 32) 거창군부인이 세상을 떠나자 연산군묘 옆에 묘가 조성되었다. 묘에는 문석인 2쌍, 망주석, 장명등, 상석, 향로석, 표석을 배치하였고, 묘 근처에는 재실을 두었다.
6.5Km 2025-05-12
경기도 남양주시 송산로152번길 20 (별내동)
경기도 남양주 별내동에 있는 뷔페 음식점이다. 서리태콩으로 직접 만든 검은색 두붓집에서 한식 뷔페로 메뉴가 변경되었다. 테이블을 정하고 좌석에 앉으면 대인, 소인, 미취학별로 계산서를 확인해 주면, 뷔페 음식이 있는 진열대로 가서 원하는 음식을 테이블로 가져와 먹는다. 잡채, 묵무침, 연근샐러드, 취나물무침, 샐러드, 겉절이, 코다리조림, 삶은 두부, 수육, 청국장, 녹두죽, 쌈 채소, 흰밥, 영양밥, 누룽지, 후식 등 30종이 넘는 음식이 있다. 음식 종류는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하는 후불이다. 매장 한쪽에 농산물과 반찬을 판매하는 곳이 있다. 오후 4시에 영업을 마친다.
6.5Km 2025-07-21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 556 (쌍문동)
도봉도서관은 서울특별시교육청 소속 공공도서관으로 1981년 12월 개관한 이후 40여 년간 한결같이 책과 함께 지역주민이 소통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약 20만 여 권의 장서를 보유하고 있으며, 다양한 자료와 정보를 수집하여 제공하고 있다. 또한, 독서문화행사, 평생교육강좌, 독서인증제 등 각종 교육 및 문화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지역 주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6.5Km 2025-09-17
서울특별시 성동구 마장로31길 43 (마장동)
인생한우는 지하철 2호선 용두역 4번 출구 부근에 있다. 매장이 있는 건물에 주차장이 있으나 협소하다. 방문 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게 편리하다. 매장 안은 넓고 테이블도 많아 단체 행사나 가족 모임에도 적합하다. 대표 메뉴는 1++등급의 고기를 이용한 한우티본스테이크, 엘본스테이크, 꽃등심, 채끝등심 등이 있다. 고기류 가격은 변동이라 현장에서 확인 가능하다. 식사 메뉴로 한우육회, 갈비탕, 육개장, 냉면 등이 있다. 주변에 남산 서울타워, 왕십리 곱창거리, 청량리 통닭골목, 신당동 떡볶이타운 등이 있어 연계 관광을 할 수 있다.
6.5Km 2025-06-26
경기도 남양주시 송산로170번길 1-11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에 있는 한우고기 전문점이다. 화이트 톤의 외관 건물이다. 숙성한우는 등심, 갈비살, 양념 갈비살, 육회가 있고, 점심 특선으로 소고기 등심 정식이 있다. 식사로는 왕갈비탕, 한우국밥, 육회비빔밥, 냉면, 된장찌개, 잔치 국수가 있다. 숙성 한우는 손질하면 100g이 줄어들고, 상차림비가 별도로 있다. 처음 기본 상차림은 제공하지만, 김치, 무채, 콩나물, 상추, 마늘, 고추, 된장 등 추가 반찬은 셀프 바에서 가져다 먹는다. 주류, 음료 등도 냉장고에서 셀프로 가져다 먹는다. 가까이에 별내동카페거리가 있다.
6.5Km 2024-10-14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구리역
구리둘레길은 왕숙천과 한강, 아차산 등을 연결하는 둘레길로 총 4개의 코스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거리는 32km 가량이다. 각 코스별로 둘레길 주변의 지명, 마을의 스토리 등을 연계하여 구리시의 자연·역사·문화 및 관광을 접목한 테마가 있는 둘레길이다. 구리둘레길 3코스는 2코스의 종착점인 사노 나들목에서 출발하여 구리 왕숙체육공원, 구리 농수산물도매시장, 왕숙천 생태습지를 지나 구리자원회수시설까지의 길로 총 길이 7.8km 2시간 30분이 소요되는 길이다. 이 길은 왕숙천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 도로와 같은 노선으로 왕숙천에서 서식하는 야생 조류를 볼 수 있으며 이 밖에도 다양한 체육시설과 공원, 쉼터 등의 휴식시설이 많아 쾌적하게 걸을 수 있다.
6.5Km 2025-11-27
서울특별시 성북구 보문사길 6-16 (보문동3가)
보문사와 담장 하나 사이에 있으며, 탑골승방으로 잘 아려진 미타사는 여승들의 거처이다. 이 사찰은 950년에 혜거국사가 처음 창건하고 미타사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1047년에는 석탑을 조성하여 탑골승방이라 하였다. 석탑은 대웅전 뒤 단하각 왼쪽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이 절은 131년에 혜감국사에 의해 중건되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단종비였던 정순왕후 송씨에 의해 중수되었다. 또 이곳에는 6층으로 된 오래된 석탑이 있는데, 위 3층과 아래 3층이 그 시대를 달리하고 있다. 아래 3층의 조성 시기를 고려 때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