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곶돈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갑곶돈대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갑곶돈대

갑곶돈대

13.3Km    2025-03-14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1366번길 18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지역에 돌이나 흙으로 쌓은 소규모 관측·방어시설로, 조선시대 강화도 해안에 돌로 쌓은 돈대 53개가 설치됐다. 갑곶돈대는 1679년 5월에 완성된 48 돈대 가운데 하나이다. 강화 돈대는 황해도·강원도·함경도 승군 8,900명과 어영청 소속 어영군 4,262명이 80일 정도 걸려서 쌓았다. 갑곶돈대는 망해돈대·제승돈대·염주돈대와 함께 제물진의 관할 하에 있었으며, 포좌가 있는 본래의 갑곶돈대는 옛 강화대교 입구 북쪽 언덕에 있었다. 지금 사적으로 지정된 갑곶돈대는 제물진과 강화 외성의 일부이다. 갑곶돈대에서는 강화전쟁박물관, 강화 갑곶리 탱자나무, 홍이포, 이섭정, 비석군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출처: 강화군시설관리공단 홈페이지)

배미꾸미조각공원

배미꾸미조각공원

13.3Km    2025-03-22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 모도로140번길 41

인천 옹진군 북도면에 속한 모도의 배미꾸미 해변에 있는 조각 공원으로서, 배미꾸미는 배의 밑구멍처럼 생긴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조각가 이일호 씨가 이곳에 건물을 짓고 작품을 전시하면서 조각 공원이 되었다. 해변을 바라보는 넓은 마당에 100여 점이 전시되어 있으며, 대표 작품은 해변 암반에 설치한 철제 조형물 버드나무 ‘버들 선생’이다. 섬의 풍광과 어우러져 작품 감상과 산책을 하기에 좋은 장소로 알려져 있다. 조용한 자연 속에서 예술을 즐기며 힐링할 수 있는 이곳은, 인천에서의 특별한 문화적 경험을 원하는 이들에게 완벽한 명소이다.

장봉선착장

장봉선착장

13.4Km    2025-03-27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 장봉리 20-22

장봉 선착장은 영종도에서 배를 타고 신도바다역 여객터미널을 거쳐 도착하는 첫 장소이다. 장봉도는 길이가 길고 봉우리가 많은 섬의 형태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듯이 국사봉과 봉화산 등 여러 작은 산이 섬에 솟아 있어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산을 오르내리며 바다를 바라보며 여행하는 트레킹 코스로도 유명한 곳이다. 장봉도 선착장에서 독바위 방향에 있는 옹암 구름다리는 장봉도 여행자들이 여유롭게 쉴 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이다.

진해식당

진해식당

13.4Km    2024-08-09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1366번길 9

강화에서 직접 잡은 자연산 미꾸라지만 취급해서 담백한 맛이 나는 통미꾸라지탕, 갈아서 먹는 추어탕, 깻잎에 돌돌 말아서 튀기는 미꾸라지 튀김, 추어탕에 수제비를 넣어 끓여서 먹고 밥을 비벼서 준다. 메기탕도 얼큰하게 끓여 국물이 시원하며 메기탕 역시 수제비를 건져서 먹은 뒤 밥을 비벼준다. 기존 메뉴에 추가해 고추장 추어탕도 인기 메뉴로 떠오르고 있다. 토종닭 백숙은 최소 1시간 전에 예약해야 한다.

갑곶순교성지

13.4Km    2024-05-02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1366번길 35

1866년 프랑스인 성직자 9명을 처형한 책임을 물어 프랑스 함대가 갑곶 돈대로 상륙했다. 이로 인해 강화 지방에서는 혹독한 박해가 시작됐고 갑곶 성지가 보이는 백사장에서 많은 신자가 순교했다. 또 1871년에는 미국 군함에 다녀왔다는 죄로 우윤집, 최순복, 박상손 등이 갑곶 진두에서 순교했다. 후에 천주교 인천 교구는 갑곶 진두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 지금의 갑곶 순교성지를 조성하고 2004년 2월 10일 갑곶 순교성지 첫 미사를 드렸다. 강화도 성지로 일만 위 순교자 현양 동산, 진무영(鎭武營) 순교성지, 관청리 형방이 있으며, 십자가의 길, 순교자 삼위비, 박순집 베드로 묘 등을 순례할 수 있다. 성지순례를 위해서는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예약해야 한다.

오읍약수터

오읍약수터

13.5Km    2025-03-14

인천광역시 강화군 북문길 110 오읍약수터

강화 산성 북문을 지나 숲 속 오솔길을 따라가면 오읍(五泣) 약수터가 있다. 고려 고종 때 북문 건축 시 기우제를 올려 하늘에서 내려주었다는 약수이다. 오읍약수터의 약수는 그 효능이 알려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물을 마시며 건강을 챙기고 있다. 약수터 주변은 푸르른 숲과 맑은 공기로 둘러싸여 있어, 자연 속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에 이상적인 곳이다. 또한, 오읍약수터는 넓은 휴식 공간과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가족 단위 방문객들에게도 인기가 많다. 이곳은 단순히 약수를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장소로도 사랑받고 있다. 오읍약수터는 강화도의 역사와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명소로, 힐링과 건강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월곶면민만세운동유적비

월곶면민만세운동유적비

13.5Km    2025-04-30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김포대로 2857-39

월곶면민 만세운동 유적비는 김포시 월곶면에서 전개된 3·1운동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로 통진 휴게소에 있다. 통진 휴게소는 당시 만세 시위가 시작되었던 군하리 장터이며 기념비 기단의 높이는 0.66m, 비의 높이는 1.2m이다. 1984년 12월 29일에 제막하였으며, 2005년 5월 국가보훈처에서 현충 시설로 지정하였다. 전국에서 세 번째, 경기도에서는 두 번째 규모인 김포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22일~29일, 8일 동안 검단면, 양촌면, 고촌면, 하성면, 월곶면 등에서 전개됐으며, 집회 횟수 총 15회, 참여 인원은 약 1만 5,000명에 가까웠다. 특히, 월곶면 지역의 독립 만세운동은 김포 출신의 이살눔(본명 이경덕·1886∼1948)에 의해 1919년 3월 22일을 시작으로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으며, 3월 29일 조강리와 갈산리 일대로 이어졌다. 3월 23일에는 양촌면 오라니 장터에서도 동시다발적인 만세 운동이 전개되었고 오라니 장터 만세 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양촌대곶면민 만세운동유적비가 세워졌다. 월곶면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 시위의 주동자와 적극 가담자들은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고 순국했다. 월곶면민 만세운동 유적비에는 그날의 함성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으니, 김포 여행 중에 이 기념비를 만나게 된다면 시간을 두고 눈여겨보면 좋을 듯하다.

이섭정

이섭정

13.5Km    2025-03-14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갑곳리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갑곳리에 위치하고 있는 정자이다. 최초로 건축된 것은 1398년(태조 7년) 강화 부사 이성(李晟)이 세웠다고 한다. 고려 때 몽고와의 협상에서 우리 측이 이롭게 되기를 염원하고 외교 사신들을 영접, 환송하기 위해 지은 강화도 관문의 팔각정이다. 이섭정은 옛 진해루 옆에 있었는데 무너진 지 오래되어 1398년(태조 7년) 강화 부사 이성이 현 자리에 복원하였으나 다시 무너졌고 1976년 국난극복의 역사 전적지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옛 건물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이곳에 오르면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 강화도와 김포 사이를 흐르는 염하강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강화도령 화문석 체험장

강화도령 화문석 체험장

13.5Km    2025-03-26

인천광역시 강화군 송해면 강화대로 891

강화도령 화문석 체험장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송해면에 위치한 전통 화문석 체험 공간이다. 이 체험장은 강화도의 특산물인 화문석을 이용한 다양한 제품을 제작하고, 방문객들에게 직접 화문석을 만드는 경험을 제공한다. 체험장에서는 화문석의 역사와 제작 과정을 배울 수 있으며, 전문가의 지도 아래 전통적인 방식으로 화문석을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다. 또한,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다양한 공예품과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어, 강화도의 전통문화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강화도령 화문석 체험장은 가족 단위 관광객에게 특히 인기가 높은 명소이다.

강화산성

강화산성

13.5Km    2025-03-14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산3번지

강화읍을 에워싸고 있는 고려시대의 산성이다. 몽골의 침입으로 백성과 국토가 수난을 당하자, 당시 실권자인 최우는 1232년 강화도로 수도를 옮겼다. 왕궁과 성·관아 시설은 1234년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때 개경의 궁궐과 비슷하게 지어 산의 이름도 송악이라 지었다. 성은 흙으로 쌓았고, 내성·중성·외성으로 이루어져 있고, 내성은 주위 약 1,200m로 지금의 강화성이다. 중성은 내성을 지키기 위해 쌓았으며, 외성은 1233년 강화 동쪽해안을 따라 쌓았다. 이 외성은 몽골군이 바다를 건너 공격하지 못하게 한 가장 중요한 방어시설이자, 정부가 39년간 육지로부터 물자를 지원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고려 원종 11년(1270) 개경으로 수도를 다시 옮기면서 몽골과 강화조약의 조건으로 성을 모두 헐게 되었다. 조선 전기에 내성이었던 강화성을 축소하여 다시 지었다. 1637년 병자호란 때 청군에 의해 다시 파괴당하였고, 숙종 3년(1677)에 성을 보수하면서 모두 돌로 쌓고 넓혀 지었다. 남문인 안파루·북문인 진송루·서문인 첨화루와 동문인 망한루가 있으며, 비밀통로인 암문 4개 그리고 수문이 2개 남아있다. 높은 곳에서 망을 보기 위한 장대와 성위에서 몸을 감추기 위한 여장 등의 방어시설도 갖추고 있었으나 여장은 모두 무너졌다. 현재 성의 동쪽 부분은 없어졌으나, 남북 쪽 산자락은 복원 정비되어 있다. 조선 후기 병인양요·신미양요와 일본 침략에 의한 강화조약을 체결한 수많은 외세침략의 역사적인 현장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