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2026-04-17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는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 있는 은행나무로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175호로 지정되었다. 키가 47미터에 이르며, 가슴 높이 둘레가 14미터로 한국 은행나무 가운데에서는 가장 굵으며 700살이 훨씬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용계초등학교 운동장에 있었으나 임하댐의 건설로 물에 잠길 위치에 있어 노거수의 이식이 불가하여 그 자리에 15m의 높이로 흙을 쌓아 인공섬을 만들고 그 자리에 수직으로 옮겨 심은 것이다. 이 나무에는 조선 선조(재위 1576∼1608) 때 훈련대장이었던 탁순창이 서울에서 내려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은행나무 계를 만들어 이 나무를 보호하고, 매년 7월에 나무 밑에 모여 서로의 친목을 도모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재 이 마을은 사라졌지만 탁씨의 자손들은 해마다 나무에 제사를 드리며 보호하고 있다. 용계리 은행나무는 주민 단합을 이루게 하는 상징물의 역할을 하여 온 나무로써 가치가 크고, 우리 선조들이 나무를 사랑하고 보호한 것을 알 수 있는 자료이며 우리나라에 있는 은행나무 가운데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다음으로 크고 오래된 나무이며 주변 단풍나무가 조성되어 가을 단풍 명소로 유명하다. 나무를 보기 위해서는 길가에 주차하고 인공섬으로 이어진 다리를 건너야 한다.

역동서원

역동서원

2026-04-17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국립경국대학교 안동캠퍼스 내에 자리하고 있는 역동서원은 고려 말기의 학자 우탁(禹倬, 1263~1342)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570년(선조 3) 퇴계 이황(退溪 李滉) 선생의 발의로 인근의 사족과 수령들의 협조를 받아 예안을 포함한 안동지역에서 최로로 건립된 서원이다. 우탁은 단양 출신으로 1290년 과거에 급제하였다. 북송의 성리학자 정이(1033~1107)의 저술 「역전」이 고려에 들어오자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역학에 조예가 깊었던 우탁이 이를 깊이 연구하고 터득하여 생도들을 가르쳤다. 역동서원은 1684(숙종 10)에 사액을 받은 후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훼철되었다가, 1969년 현 위치에 이건 복원되었다. 1991년에 국립경국대학교 안동캠퍼스가 이곳에 들어서면서 대학교에서 관리하고 있다. 서원은 정문인 입도문, 강당인 명교당, 원생들이 일상생활을 했던 사물재와 삼성재, 우탁의 위패를 모신 상현사, 그 외 서원의 부속 건물로 구성되었다. 서원에는 이황의 역동서원기와 다수의 친필 현판이 걸려 있다.

안동 주하리 뚝향나무

안동 주하리 뚝향나무

2026-04-17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금산로 242-5

안동 주하리 뚝향나무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 선산부사를 지낸 이정(李楨)이 평안북도 정주판관으로서 약산성 공사를 마치고 귀향할 때 가지고 와서 심은 것이다. 『노송운첩』에 이에 대한 내력이 실려 있다고 한다. 이정이 약산산성 쌓기를 마치고 귀향하면서 세 그루의 향나무를 가지고 와서 도산면 온혜와 외손인 선산의 박씨에게 각각 한 그루씩 주고 남은 한 그루를 이곳에 심은 것이라 한다. 그러나 모두 죽고 이 나무가 유일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나이는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나무 높이 4.0m, 가슴높이 둘레 2.5m이며, 가지가 아래로 처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형태의 받침대를 세워서 관리하고 있다. 향나무와 비슷하지만 곧게 자라지 않고 전체가 옆으로 퍼지면서 자란다. 안동 주하리 뚝향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안동 진성이씨 종택

안동 진성이씨 종택

2026-04-17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금산로 242-5

이 건물은 진성이씨(眞城李氏) 주하세거(周下世居) 경류정종택으로 당초 건립 연대(建立年代)는 미상이나 별당(別堂)인 경류정은 조선(朝鮮) 성종(成宗) 23년(1492)에 이연(李演) 선생이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이정은 이황(李滉)의 증조부로, 세종 때 영변판관(寧邊判官)으로서 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영변진(寧邊鎭)을 쌓았으며, 선산도호부사를 지냈다. 진성이씨가 안동 풍산 마애(麻厓)에서 이곳 주하, 즉 주촌(周村)으로 옮겨온 것은 이정의 부친인 이운후(李云候)에 의해서였다. 이운후는 진성이씨 안동 입향조이자 부친인 송안군(松安君) 이자수(李子脩)와 함께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따라서 이 건물은 진성이씨 대종택의 위상을 갖는다. 건물의 구조는 정침 외에 경류정, 사당, 행랑채, 방앗간채 등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은 ㅁ자형이며 전면 좌측에 사랑채가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에 바닥을 지면(地面)에서 높이 띄우고 앞쪽에 툇마루를 내었다. 경류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익공식(翼工式) 건물로 기둥은 원형(圓形)인데 일부에 배흘림이 남아 있어 주목된다. 정침과 경류정 뒤에 서남향으로 앉은 사당은 3칸으로 5량가의 겹처마집이다. 방앗간채는 문간과 고방 및 방앗간 2칸으로 된 4칸 집이다. 조선시대 이 지역의 사대부가(士大夫家)의 면모를 고루 갖추고 있는 종택이다.

안동 사신리 느티나무

안동 사신리 느티나무

2026-04-17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사신리

느티나무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대만, 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고 있다.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자라서 둥근 형태로 보이며, 꽃은 5월에 피고 열매는 원반모양으로 10월에 익는다. 줄기가 굵고 수명이 길어서 쉼터역할을 하는 정자나무로 이용되거나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당산나무로 보호를 받아왔다. 안동 사신리의 느티나무는 나이가 6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29.7m, 둘레 10.1m이다. 중앙에서 두 갈래로 나누어진 큰 가지에서 사방으로 풍성하게 잔가지가 뻗어나간 모습이다. 주민들은 이 나무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생각하며 정월 대보름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 밑에 모여서 새해의 행운과 풍년을 기원한다고 한다. 안동 사신리의 느티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민속적·생물학적 자료로서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산수정

산수정

2026-02-25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마애길 70-31

산수정은 호봉 이돈(1568∼1624) 선생이 관직을 떠나 고향에 돌아와 학문연구와 후학양성에 전념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건립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610년경 지어졌을 것이라 추정된다. 건물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 정면은 낮은 기단위에 자연석 덤벙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우고 두리기둥 사이를 난간으로 처리하여 정자 건축의 멋을 돋우고 있다. 평면구성은 가운데 어칸의 대청을 전면의 3칸 툇마루와 이어서 우물마루를 깔았고, 전면의 툇마루는 측칸을 한칸으로 넓히고 툇마루 좌우측면으로 판벽과 두짝 밖여닫이 골판문을 설치하여 배면의 두짝 골판문과 함께 풍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사충단

사충단

2026-03-19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로405번안길 22-9

조선시대 선조 25년(1592년) 4월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김해를 지키다 전사한 김득기, 송빈, 유식, 이대형 선생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고종의 명으로 1871년에 건립한 묘단이다. 처음에는 동상동 873번지에 있었던 것을 김해의 도시계획으로 동상동 161번지 일원에 확장 이전하였으며 매년 음력 4월 20일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1600년(선조 33)에 이들은 모두 가선대부(嘉善大夫) 중에서 김득기와 이대형은 이조참판, 유식과 송빈은 호조참판으로 각각 추증(追贈) 되었다. 이 중 김득기의 묘는 한림면에 있고 이대형의 묘는 상동면에 있다.

동림사(김해)

동림사(김해)

2026-04-17

경상남도 김해시 신어산길 144 (삼방동)

가락국(43~532)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왕후의 오빠 장유화상이 창건한 김해 동림사는 수려한 경관을 가진 신어산에 있는 사찰이다. 장유화상이 신어산에 들어와 고향인 아유타국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며 수행하던 사찰로 신어산 동쪽에 있어 동림사라고 전해지며, 신어산 서쪽에는 서림사(현 은하사)가 있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으나, 1989년부터 13년에 걸쳐 화엄선사와 월주스님이 복원했다.

이천 신대리 백송

이천 신대리 백송

2026-04-17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원적로568번길 205-26

백송은 소나무과에 속한 바늘잎 상록수로서 짧은 가지 끝에 세 가닥의 잎이 뭉쳐나고 끝이 뾰족하며 짧다. 수꽃이삭은 긴 타원형, 암꽃이삭은 달걀 모양인데 5월에 꽃이 핀다. 솔방울은 달걀 모양이며 종자는 조금 큰 편이고 이듬해 10월에 익는다. 중국이 원산지로 인가 부근에 많이 심는다고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드물게 자라고 있는 희귀종으로서 발견되는 대로 지정 보호를 받고 있다. 전국을 통틀어 서울 통의동, 원효로, 제동, 수송동 등 네 그루가 있고 밀양, 보은, 예산에 각각 한 그루, 그리고 이천의 백송 등 모두 8그루가 있다. 나무의 높이는 16m가량이며 밑둥치에서부터 두 그루로 갈라져 옆으로 잔가지를 늘인 모양이 보기에 좋다. 수령은 220여 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확실한 유래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 마을 노인들 말에 의하면 전라감사를 지낸 민달용의 묘를 이곳에 안치한 후 그 후손들이 묘 앞에 기념으로 심은 것이라고 한다.

조선효종영릉재실

조선효종영릉재실

2026-04-17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寧陵]은 조선 제17대 효종대왕과 인선왕후 장씨의 능이며, 재실[齋室]은 제관[祭官]의 휴식, 제수장만 및 제기 보관 등의 제사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능의 부속건물이다. 효종대왕릉은 1659년 경기도 양주군 건원릉의 서쪽에 자리를 잡은 후 능호를 익릉[翼陵]으로 하였다가 영릉으로 고치고, 능을 조성할 때 능 앞에 재실을 건립하였다. 이후 1673년 석물에 틈이 생겨 현 위치로 옮겨오면서 재실도 함께 옮겨왔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 왕릉의 재실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멸실되어 원형이 훼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 영릉 재실은 조선 왕릉 재실의 기본형태가 가장 잘 남아있고, 공간구성과 배치가 뛰어나 대표적인 조선시대 재실건축으로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