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06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춘포면 춘포4길 48
익산 춘포리 구 일본인 농장 가옥은 1940년대에 농장 안에 지은 2층 건물로 건축면적 106.78㎡, 연면적 139.83㎡로 나무판자를 잇대어 지은 건물이다. 1층은 정방형에 가까운 평면으로 ㄱ자형의 복도를 따라 방들을 배열하였고 2층에는 외부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발코니가 돌출되어 있어 독특한 외관을 이루고 있다. 건물 지붕은 팔작지붕 위에 일식기와를 올렸으며 외벽은 비늘벽으로 처리하였다. 1층 내부는 다다미방이 온돌로 바뀌고 칸막이벽을 없애는 등 대부분 개조되어 있다. 그러나 2층은 넓은 방에 다다미가 깔려 있고 반침과 도코노마가 그대로 남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2025-11-10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용안면 현내로 468
삼세오충열사는 전북 익산시 용안면 중신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1982년 8월 30일에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삼세오충열사는 3대에 걸쳐 나라를 위해 순절한 해주오씨(海州吳氏) 오충신(五忠臣)의 유적이 모여 있는 곳이다. 원래는 오응정(吳應鼎)과 그의 아들 욱(稶)과 직(稷), 그리고 직의 아들 방언(邦彦)을 배향하여 사충사(四忠祠)라 하였으나 근년에 오응정의 아들 동량(東亮)을 추향하여 오충열사(五忠烈祠)라 부르고 있다. 오응정(1548∼1597)은 전라도 용안현 출신으로 자는 문중(文中), 호는 완월당(翫月堂)이다. 조선 선조 7년(1574년)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에서 치적(治積)을 쌓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순천부사 겸 총 병부 문안사(順天府使兼總兵府問安使) 전라도 우방어사(全羅道右防禦使)가 되어 어모장군(禦侮將軍) 욱, 동량과 더불어 남원성(南原城) 전투에 참전하여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게 되자 화약더미 속에서 세 부자가 장렬하게 순절하였다. 오응정의 차남 오직(1574∼1619)은 광해군 때 도원수(都元帥) 강홍립(康弘立) 막하의 우영천총(右營千摠)으로 요동심하 전투에 출전하였으나 강홍립이 후금군에 항복하자 격분하여 부차(富車)에서 적과 싸우다 온 몸에 화살을 맞고 전사하였다. 그의 아들 방언(1588∼1637)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적과 싸우다 인조대에 삼전도 굴욕을 당하자 남한강에 투신자살하였다. 이를 기리기 위해 조선 숙종 7년(1681)에 충열사를 세웠다. 해주오씨(海州吳氏) 오충신(五忠臣)의 유적 관리 사무소를 지나면 광장입구에는 정문인 충신문이 있다. 충신문을 지나 올림픽기념 숲을 걷다보면 외삼문인 복절문에 이르고 복절문 좌측에는 기념관인 영국관이 있다. 내삼문인 장의문을 지나면 본사우인 삼세오충열사에 이른다. 여기에는 중앙에 오응정, 좌측에 동량과 욱, 우측에 직과 방언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삼세오충열사의 현판은 여산 권갑석 선생이 쓰셨다. 삼세오충열사를 나와 우측으로 가면 신도비와 오응정의 묘가 있고 정려각이 있다. 최근에는 모충제를 건립하였다. 충신문의 우측으로 가면 오충신의 묘와 오응운, 오응태, 오하몽, 오석근, 오식 등 직계선조의 묘가 있고 오영우, 오사고, 오희, 오사만, 오영수 등을 모신 삼신단이 있다.
2025-11-10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화곡1길 53-15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소자파의 묘비다. 1526년(중종 21)에 건립되었으며 진주소씨 익산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비신은 대리석으로 높이 165㎝, 너비 93㎝, 두께 23㎝이다. 화강암으로 된 대석은 가로 136㎝, 세로 98㎝, 높이 73㎝이며, 전면과 후면은 2개의 정사각형 안에 용화문을, 윗부분은 연판문으로 장식하였다. 4각의 받침돌은 국화무늬를 조각하였다. 머릿돌은 앞·뒷면에 연꽃과 구름무늬를 새겨 넣었는데 그 조각이 매우 섬세하고 뛰어나다. 비의 전액은 글씨 크기가 약 10㎝로 김희수(1475~1527)가 썼으며 남곤(1471~1527)의 글이다. 비의 뒷면은 이행(1478~1534)의 글이고, 글씨는 크기가 약 10㎝로 성세창(1487~1548)이 썼다. 비의 모습이 완전하고 비문의 글씨도 선명하며 조각 수법도 우수하다. 또한 비의 건립연대가 중종 21년(1526)으로 익산지역에 전해오는 금석문으로서는 가장 빠른 것이어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2025-11-10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내
미륵사지 석등하대석은 익산 미륵사지 내 동원과 중원에 있는 2기의 하대석이다. 중원의 석등 하대석은 석탑과 금당지 사이에 있고, 동원의 석등 하대석은 탑과 금당 사이에 있다. 미륵사지 석등하대석은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서 1974년 8월 21일부터 9월 20일까지 실시한 [동탑지 발굴 및 서탑 기초 조사] 당시 풍탁 및 철물과 함께 발견되었다. 석등을 이루었던 부재들은 옥개석·화사석·상대석·연화하대석으로 하대석을 제외한 부재는 원래 위치를 이탈한 상태로 수습되었으며, 화사석 3개는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미륵사지 석등하대석 상면에는 8개의 연화문이 조각되었는데, 백제 말기 연화문 수막새의 무늬와 같은 양식으로 백제 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미륵사지 석등하대석이 한국 석등의 시원 양식임을 알 수 있다.
2025-12-23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함라면 수동길 8
조해영가옥은 익산 김병순 고택, 이배원 가옥과 함께 ‘함라마을 삼부잣집’이라 불린다. 다른 부잣집과 달리 조해영의 선조들은 예로부터 함라마을에 터를 잡고 살아왔다. 조씨 집안의 기틀을 마련한 사람은 조해영의 고조할아버지인 조한기인데, 고종 때 사천군수와 정읍군수를 역임하였다. 이후 조해영의 아버지인 조용규가 막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1918년 조해영가옥을 세웠다. 조용규는 1923년 함라마을의 다른 부자들처럼 대규모 농장을 설립하였으며, 대륙호모공업 주식 500주를 소유하면서 대주주로서 기업 운영에 관여하기도 하였다. 조해영가옥은 본래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사랑채, 몸채와 별채 새방채, 행랑채, 농장 사랑채, 문간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제 강점기 부농 집안의 생활상을 보여 주고 있으며, 한옥의 변화 과정과 함께 외래문화의 유입을 살펴볼 수 있는 문화 유적이다.
2025-12-23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함라면 천남1길 13
이배원 가옥은 전라북도 익산시 함라면에 있는 오래된 전통 가옥으로 인근에 조해영 가옥과 김병순 고택이 있어 토석 담장과 한옥 기와지붕 등이 어우러져 전통적 경관을 유지하고 있다. 이 집은 현 관리자의 조부인 이배원이 1917년에 지은 것으로 그는 함라면의 대표적인 부농 중 하나였다. 이씨집 외에도 당시 함라에는 소위 만석꾼으로 일컬어지는 두 명의 부호, 즉 김씨집(김안균가)과 조씨집(조해영가)이 있다. 이 집은 세 집 중에서 가장 먼저 지은 집으로 김안균가와 조해영가의 모델로 작용하였으며 평면의 구성에서도 서로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 건립 당시에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 문간채, 곳간채 등 여러 채가 있었으나 현재는 안채와 사랑채, 그리고 주위의 토석 담장만이 남아 있다. 사랑채는 내부가 개조되어 원불교 교당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안채는 입식 부엌으로 개조하여 활용하는 안방 뒤쪽 공간을 제외하고 비교적 그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2024-10-29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지사면 계산리
전북 임실군 지사면에서 발견된 고인돌군은 지사면 계산리 광암 옥산마을에 분포되었으며, 청동기 후기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고인돌군은 북방식, 남방식과 개석식 고인돌이 혼재되었고, 농경문화로 발전하는 산촌 집단 주거지로, 고조선 사회 군장의 위상을 가늠케 할 뿐 아니라 상당한 힘과 집단을 거느린 사회로 진입하는 단계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인돌 모서리 상단에는 인위적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이 되는 구멍인 성혈(바위 구멍 그림)이 발견되었는데 별자리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 돌은 모양새가 담뱃잎과 비슷하다고 해서 주민들은 담뱃잎 바위라고 부르고 있다. 지사면 고인돌군은 약 30점 정도 분포되어있어 고인돌 밀집 지역으로 고조선 시대의 산촌 농경문화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학술적 자료로 여겨지고 있다.
2026-02-25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천호산길 140
문수사는 해발 500m의 천호산 자락에 있는 사찰로 주변의 백련암과 백운사와 더불어 3대 보살을 신앙하는 사찰로 전해오고 있다. 여래좌상은 극락전에 봉안된 삼존불 중 본존불로서, 원래는 대웅전에 봉안하였으나 극락전을 새로 지어 모시게 되었다. 좌우에 있는 협시보살은 최근에 제작한 것이다. 목조여래좌상은 나무로 된 불상에 칠을 하였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일부 탈락되었으나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다. 머리는 오른쪽으로 틀어 소라 모양을 한 나발이며, 부처님의 정수리에 볼록 튀어나온 부분인 육계는 조금 낮게 표현되어 있다. 사각형의 넓적한 얼굴과 오뚝한 콧날, 넓적한 콧방울, 굳게 다문 입 등은 조선 후기 17세기 불상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양손은 허벅지에 닿을 듯이 낮춰서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오른손은 손바닥이 아래를 향하고 있다.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 향한 아미타 수인을 결하고 있다. 양어깨에 걸친 통견의 법의가 양쪽 팔에 걸쳐서 결가부좌 한 무릎 아래까지 흘러내리고 있고 가슴 가운데에서 무릎까지 넓은 군의와 군의대가 있고 주름지듯 겹쳐진 옷자락도 눈에 띈다. 문수사 목조여래좌상은 안정감이 있고 균형 잡힌 불상으로 상의 자세와 세부 표현에서 17세기 중반 조각승 승일과 희장이 제작한 불상의 특징이 반영되어 있다. 그러한 점에서 문수사 목조여래좌상은 조선 17세기 중·후반에 조성된 불상으로 평가된다.
2024-11-05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함라면 수동길 8
익산시 함라면 함열리 조해영가옥 내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김육의 불망비이다. 이 비석의 건립연대는 조선 효종 10년(1659), 영의정 김육(1580~1658)이 사망한 이듬해로서 호남지역의 대동법 실시를 여러 차례 건의하고 유언으로까지 임금에게 간절하게 당부한 김육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한 일종의 선정비이다. 김육은 조선 인조와 효종 때의 대표적 실학자이다. 김육불망비는 기단, 비신, 이수로 구성되었으며 기단은 화강암, 비신과 이수는 대리석으로 만들었다. 비의 전면에는 중앙에 [영의정금공육경요보민인덕부망비]라 새겨져 있으며, 그 좌측 하단부에 [산부대 상공 해부심 고금]이라는 명문과 후면에 [기해 이월]이 음각되어 있다. 이수에는 양각으로 무늬를 조각하였는데, 전면 중앙에는 두 마리의 이무기가 여의주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으며, 주변을 이무기의 몸체가 감싸고 있다. 이수의 후면 중앙에는 국화무늬가 있고 주변에는 구름무늬가 양각되어 있다. 김육불망비가 있는 조해영가옥 주변으로 익산함라마을옛담장, 김병순 고택, 이배원 가옥, 함라한옥체험단지 등이 있다.
2026-02-06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함라면 수동길 20
익산 김병순 고택의 안채와 사랑채는 1922년 건립되었고, 행랑채는 1930년에 건립되어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나 개화기 전통가옥 형식에 근대의 건축기법이 가미되는 당시의 시대상과 건축적 특징, 건축양식의 시대 변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