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고홍건신도비

고홍건신도비

2025-08-12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하서면 석불산길 138

거북과 용머리를 새긴 고홍건신도비는 1668년에 세운 것이다. 신도비란 높은 벼슬을 지낸 사람의 행적을 기록하여 무덤 앞이나 또는 무덤으로 가는 길목에 세우는 비다. 용두귀부의 절묘한 솜씨는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당대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흥건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공신록에 이름이 오른 고희의 아들로, 1580년에 출생하였다. 1603년 무과에 급제한 뒤 1613년 한양의 도성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었으며, 조상의 큰 공으로 무관직 6품에 승진되었다. 1624년 이괄의 난 때 인조를 호종하여 공주에 간 공로로 종2품 가선대부가 되어 영원군에 책봉되었다. 이어 평안도 희천군수와 여산영장을 거쳐 5위의 장이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인조를 호위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 서쪽 문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었다. 병자호란이 끝난 뒤 충청도병마절도사와 오위도총부부총관, 서흥부사 등을 거쳐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제수되었다. 1651년 지중추부사에 임명되었다.

부안 격포리 후박나무군락

부안 격포리 후박나무군락

2026-03-18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

후박나무는 녹나무과에 속하는 상록교목으로 제주도를 비롯한 남해의 여러 섬들과 해안에서 자라며 울릉도와 외연도에도 분포한다. 주로 해안을 따라서 자라며 암수 한 그루인 이 나무의 꽃은 5월에서 6월에 새 잎이 나면서 함께 피고 이듬해 7월에 검게 익는 열매가 달린다. 껍질과 열매는 약재로 쓰인다. 나무가 웅장하고 아름다워서 정원수, 공원수 등에 이용되고 바람을 막기 위한 방풍용으로도 심는다. 부안 격포리의 후박나무 군락은 해안 절벽에 자라고 있는데 약 60년 전의 기록을 보면 10그루의 후박나무가 있었고 그중 나무의 높이가 4m에 이르는 큰 나무가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으나 현재는 132그루의 후박나무가 자라고 있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고 있어 그 안쪽에 있는 밭을 보호하는 방풍림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근처에 수성당(水城堂)이라는 서낭당이 있다. 부안 격포리의 후박나무 군락은 육지에서 후박나무가 자랄 수 있는 가장 북쪽 지역이 되므로 식물분포학적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간재선생유지

간재선생유지

2026-03-23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계화면 양지길 12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전우(1841∼1922) 선생이 학문을 연구하던 곳이다. 선생은 임헌회 문하에서 20년간 학문을 배웠으며 고종 19년(1882) 벼슬에 올랐으나 곧 사임하고 학문에만 전념하였다. 1910년 국권이 일제에 강탈되자 선생은 통분해하며 스스로 귀향하여 도학으로 국권을 회복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러나 의병을 일으키지 않고 도학만을 이야기한다고 하여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1922년까지 이곳에서 도학을 가르치며 항일정신을 고취하여 민족정기를 진작하는데 일생을 바쳤다. 전우 선생의 성리학적 연구 업적은 높이 평가되고 있으며 전통적인 유학사상을 그대로 실현시키려 한 점에서 조선 최후의 정통 유학자로서 추앙받고 있다.

남원 진기리 느티나무

남원 진기리 느티나무

2025-12-15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보절면 보절신기길 14-3

진기 마을의 정자나무 구실을 하는 남원 보절면의 느티나무는 나이가 약 600살 정도로 추정되며, 크기는 높이 23m, 가슴높이의 둘레가 8.25m이다. 단양 우씨가 처음 이 마을에 들어올 때 심은 것이라고 전해진다. 조선 세조(재위 1455∼1468) 때 힘이 장사인 우공이라는 무관이 뒷산에서 나무를 뽑아다가 마을 앞에 심고 마을을 떠나면서 나무를 잘 보호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는 세조 때 함경도에서 일어난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는데 큰 공을 세워 적개공신 3등의 녹훈을 받았으며 그 후 경상좌도 수군절도사를 지냈다. 후손들은 사당을 짓고 한식날 제사를 지내고 있으며, 가까운 곳에 우씨 집안의 열녀문이 있다. 이 느티나무는 단양 우씨가 마을을 이룬 유래를 알 수 있는 자료로서 문화적 가치가 있고, 오래된 나무로서 생물학적 보존 가치도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지리산 천년송

지리산 천년송

2026-03-23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와운길 255

지리산 천연기념물 천년송은 뱀사골 계곡 등산로에서 석실바위 50m 전 지점에서 좌측으로 700m 떨어진 와운마을 북쪽 능선에 위치한다. 높이 20m, 가슴높이 둘레 6m, 가지 폭 12m에 이르는 소나무로, 수령은 약 500년으로 추정된다. 우산을 펼친 듯한 아름다운 수형을 지닌 반송이며 임진왜란 이전부터 자생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한아시송과 할매송 두 그루가 20m 간격으로 자라며 이 중 더 크고 오래된 할매송을 주민들은 ‘천년송’이라 부른다. 마을에서는 매년 설에 천년송 앞에서 당산제를 지내며 안녕과 풍년을 기원해 왔다.

정령치

정령치

2026-03-23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정령치로 1523

정령치는 높이 1,172m로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주천면과 산내면에 걸쳐 있는 지리산국립공원의 고개이다. 고개 꼭대기의 정령치 휴게소는 지리산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다. 동으로는 바래봉과 뱀사골 계곡이, 서쪽으로는 천왕봉과 세석평전 반야봉 등과 남원의 시가지가 한눈에 펼쳐진다. 지리산 주능선 일 백리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출처 : 남원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오리정

오리정

2026-03-23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사매면 월평리

춘향고개 하단도로변에 자리 잡고 있는 오리정은 1953년에 세웠다. 정자가 자리한 이곳은 고대소설 『춘향전』의 주인공인 성춘향과 이몽룡이 이별의 정을 나눈 곳이라 한다. 소설에 따르면 이몽룡이 부친을 따라 한양으로 가게 되었을 때 이곳까지 따라온 성춘향은 서로 백년가약을 맺고 행복하게 지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서 눈물로써 이몽룡을 보냈다고 한다. 비록 소설 속의 이야기지만 그토록 애절한 사랑의 사연을 담은 곳이기에 오리정은 지나는 사람의 발길을 멈추도록 한다. (출처 : 남원 문화관광)

제이드가든

제이드가든

2026-04-29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남산면 햇골길 80

‘숲 속에서 만나는 작은 유럽’이라는 테마로 꾸민 이국적인 수목원으로 약 16만 3500㎡ 부지에 자연 지형을 가능한 원형대로 유지한 채로 24개의 테마 정원을 조성했다. 수목원 입구의 이탈리아 토스카나 풍 방문객 센터, 영국풍 화단으로 꾸민 영국식 보더가든, 이탈리아풍 정원 양식과 수로를 갖춘 이탈리안 웨딩 가든 등 곳곳에서 유럽 감성이 느껴진다. 수목원을 돌아보는 산책로는 크게 나무내음길, 숲 속바람길로 나눠진다. 중심부의 나무내음길은 바닥에 우드 칩이 깔려있고 테마 정원 곳곳으로의 접근성이 좋다. 숲 속바람길은 나무가 무성하고 시원해서 여름철에 걷기 좋다. 각 코스는 편도 40~60분 정도 소요되며 중간중간 서로 연결된다. 모든 코스는 매표소에서 시작해 가장 꼭대기의 가드너스 코티지나 스카이가든에서 끝난다. 산책 중 만날 수 있는 카페 허니비 코티지를 비롯해, 스튜디오제이드(Gift shop) 등의 편의시설을 갖췄다. 시기별로 야간 개장을 시행하며 경춘선 굴봉산역과 수목원을 오가는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여원치마애불상

여원치마애불상

2026-03-13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이백면 양가리

여원치 마애불은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이백면 여원치 정상 아래 바위에 새겨진 불상으로, 높이 2.5m, 어깨 폭 1.09m이다. 불상 앞에는 건물 흔적으로 보이는 구조물과 기와 조각이 남아 있어 과거 불전을 두고 불상을 모셨던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은 민머리에 넓고 낮은 상투 모양 머리묶음과 광배가 표현되어 있으며, 목에는 삼도, 넓은 어깨는 강한 인상을 준다. 오른팔은 가슴에 대고 있고, 하체는 파손이 심해 형태가 불분명하다. 불상 동쪽면에 새겨진 글을 통해 이 불상이 조선 개국과 관련된 인물인 이성계와 관계가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태종대 전망대

2024-09-25

부산광역시 영도구 전망로 24

태종대 앞바다 멀리 수평선이 아스라이 바라보이는 순환도로 서남쪽 끝 부근에 전망대가 있으며, 1999. 8월 재건축된 이 건물은 총 526평(지하1층, 지상3층) 규모로 전망대와 레스토랑, 간이매점 등의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전망대가 건립된 자리는 본래 자살바위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진 바위가 서 있던 곳으로 1970년대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극심한 생활고나 실연 등의 괴로움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이 이곳 낭떠러지 아래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음으로써 사회문제를 불러일으키곤 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