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황룡강

황룡강

2025-04-09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일산2길

영산강 권역의 영산강 수계에 속하며, 영산강의 제1지류이다. 국가하천, 지방1급하천, 지방2급하천으로 나누어져 있다. 장성국 북하면에서 지방2급하천이 시작되고, 이후 북하면 용두교에서 지방1급하천으로 바뀌며, 광주광역시로 흘러들어 광산구 동남부를 관통한 다음 광산구 삼도동에서 평림천과 합류하여 국가하천으로 바뀌어 유계동에서 영산강으로 흘러든다. 장성군 북하면 쌍웅리 황룡강유역은 영산강 유역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백암산 계곡을 따라 흘러내리는 황룡강 상류를 막아 만든 장성호가 있고 주변에 관광지가 조성되어 있다. 강이 흐르는 주변에는 황룡면, 황룡동, 황룡마을, 사호동, 복룡동 등 황룡강에서 비롯한 지명이 많다. 황룡강변으로 차박을 하거나 낚시를 하기 위한 강태공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황룡강 생태공원이 있어 수국꽃이 만발하고 강변으로 양귀비와 수레국화 안개초, 연꽃 등의 꽃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시원하게 쏟아지는 황룡강 폭포 등의 수변 시설들이 잘 조성되어 있다.

성흥사 계곡

성흥사 계곡

2025-12-12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대장로 227 (대장동)

창원 불모산(801.1m) 자락인 화산(799.1m)에서 내려오는 계곡으로 성흥사 옆에 있는 계곡을 말한다. 계곡 주변 숲이 울창하고, 나무들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한 자연발생 유원지로 그늘진 숲속 바위에 앉아 맑은 계곡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속 깊이 숨겨진 번잡한 생각들이 말끔히 없어진다. 성흥사 계곡 입구에는 넓은 주차 공간과 토속 음식점들이 있어 평소에도 많은 시민들이 이곳을 찾고 있으며 여름철에는 무더위를 식히려는 피서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계곡을 벗어나 해안 관광도로로 접어들어 용원 방향으로 가다 보면 탁 트인 바다가 있다. 성흥사는 신라 흥덕왕 8년(833년) 무염국사가 웅동지방에 침입한 왜구를 불력으로 물리친 것을 기념하여 창건된 고찰로, 창건 당시에는 승려 수가 500여 명에 달하는 신라 유수의 고찰이었으나, 잦은 화재로 여러 차례의 중건과 이건으로 현재는 대웅전만이 창건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취백정

취백정

2025-06-19

대전광역시 대덕구 대청로526번길 45-24

취백정은 대청댐 인근에 금강변에 위치한 조선시대 문화재이다. 이곳은 원래 미호서원의 부속건물로 1701년(숙종 27)에 건립되었다. 건립 후 제월당 송규렴(1630∼1709)이 제자를 모아 학문을 가르치는 곳으로 활용되었다. 송규렴은 학문이 뛰어나 송시열, 송준길과 함께 ‘삼송’으로 일컬어졌다. 별세 후엔 ‘문희’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이곳은 1989년 3월 18일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또한 금강변 야산 구릉의 정상부에 자리하여 금강이 내려다보이는 경관이 아름답다. 취백정은 국도 17호선과 지방도 32호선에서 대청로, 대청로 526번 길을 통해 접근할 수 있다. 고속도로는 경부고속도로 신탄진 IC와 당진영덕고속도로 문의청남대 IC가 가깝다. 주변에는 대청댐, 금강로하스대청공원, 청남대, 용호동 구석기 유적 등의 관광지가 있다.

경장각

경장각

2025-01-20

광주광역시 광산구 용아로 460

경장각은 조선 인조 대 문신인 이신의(1551~1627)를 배향하는 재각이다. 재각은 무덤이나 사당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을 말한다. 이신의를 배향하기 위하여 1754년 지어진 유애서원이 1868년 서원 폐지령으로 훼철되자 1901년 서적과 유물을 보관하기 위하여 금서재가 세워졌고, 이후 금서재를 철거하고 1919년에 경장각을 건립하였다. 2000년 경장각 후면에 단청 사우를 마련하여 이신의를 배향하게 되었다. 이 곳에는 이신의의 유물로 선조왕 친필병풍과 거문고가 보존되어 있다. 병풍은 인조가 그의 충절을 가상히하여 선조왕 친필을 하사한 것이며, 거문고는 석탄이 평소 애용하던 거문고이다. 의병장이자 학자인 석탄 이신의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는 또 다른 유적지는 경기도 고양에는 위치한 도래울석탄공원, 이신의선생기념관이 있다. *석탄 이신의 이신의의 본관은 전의이며 자는 경칙이고 호는 석탄이다. 일찍이 어버이를 여의고 형으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향군 300명을 거느리고 적과 싸운 공으로 사옹원직장에 올랐으며, 이어 사재감주부·공조좌랑·고부군수 등을 지냈다. 1617년(광해군 9) 이항복·정홍익·김덕함 등이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하는 등 광해군의 폭정에 대해 극간하다가 유배되자, 이신의도 분연히 항소를 올렸다가 이듬 해회령으로 유배, 위리안치되었다. 그 해 가을 북로의 경보가 있어 변경 일대가 불안하자 흥양으로 유배지를 옮겼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으로 풀려 나와 형조참의·광주목사를 역임하고, 1626년 판결사를 거쳐 이듬 해 형조참판에 올랐다. 이 해 정묘호란으로 왕을 호종해 강화로 가던 도중 병이 나 인천에 머물다가 수원마정리에서 죽었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고양의 문봉서원과 괴산의 화암서원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정이다. 저서로는 『석탄집』이 있다.

망진산 봉수대

망진산 봉수대

2023-12-11

경상남도 진주시 봉수대길 116

고종 32년인 1895년 봉수대가 폐지 전까지 수백 년 동안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통신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가진 곳으로, 1996년 8월 16일 폐지된 지 1백여 년 만에 진주시민의 힘으로 망진봉수로 복원되었고, 지금 복원된 봉수대는 옛날의 것보다 1/3로 축소 조성되었다. 진주 시내를 전체적으로 잘 볼 수 있는 곳으로 날씨가 맑은 날은 지리산까지 볼 수 있고, 이곳에서 보는 시내 야경은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아름답다. 진주 8경 중 제5경에 속하는 아름다운 곳이며 자동차로 봉수대까지 올라갈 수 있어 쉽게 찾아갈 수 있는 곳이다.

영사재

영사재

2025-03-20

광주광역시 광산구 명곡길 170-30

영사재는 광주 광산구에 있는 조선 후기 나주오씨 재실이다. 대동사와 함께 명곡부락 뒤쪽 산기슭에 있으며 조선 중기 학자이자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에 참여한 생노당 오효석(1620~1697)이 은거하며 후진을 길렀던 곳으로, 사후에 오효석의 재실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이다. 오효석은 광해군 때 본량에서 출생하여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양란에 참여하였으며, 효종의 사망으로 북벌 계획이 좌절되자 고향으로 돌아와 후진 양성에 힘쓰다 68세로 사망하였다. 우암 송시열은 오효석을 대명처사라 불렀다고 한다. 오효석은 ‘생로당유고’를 남겼다. 영사재가 있는 곳은 골짜기가 길어 장탄이라고도 하는데, 워낙 골짜기가 깊어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의병들이 자주 머물며 무기를 제작하였다고 전한다. 특히 전해산 의병부대는 영사재에 주둔하며 무기를 수선하거나 화약과 탄환을 만들었다. 영사재는 한말 의병장 오성술 의병부대의 주둔지로도 자주 활용되었다. 오성술은 집안 사당인 영사재가 대명동천의 가장 깊숙하고 으슥한 곳에 자리한 점을 전술적으로 잘 활용하였던 것이다.

충익사 의병탑

충익사 의병탑

2026-03-13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충익로 1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홍의장군 곽재우(1552~1617)와 휘하에 있던 17명의 장수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탑으로, 1972년 4월 22일 의령군 남산 기슭의 남산천변에 의령군민들의 성금으로 건립한 것이다. 탑의 높이는 27m이며, 탑 중앙 부분의 둥근 고리 18개는 곽재우와 17장령을 상징하고, 고리를 지탱시키는 양쪽의 팔자 형태 기둥은 횃불을 형상화한 것이다. 고리 중간에 한글로 의병탑이라 적혀 있으며, 탑명은 고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휘호이다. 탑의 하단 양쪽에 말을 타고 전투를 지휘하는 곽재우 장군의 모습과 의병들의 전투 장면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의병탑 옆으로는 곽재우와 열일곱 장수의 위패를 봉안하는 충익사가 있는데, 사당은 1978년 12월에 건립되었으며, 사당, 기념관, 충의각, 충현정, 충의문, 홍의문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의병탑 근처에는 남산체육공원과 의령군의 명물인 의령구름다리, 의령천수변공원이 있다.

선진공원

선진공원

2026-03-17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공원 입구에서 53개 계단을 오르면 바다에 둘러싸인 전망 좋은 공간이 나온다. 공원 안에는 사천해전 때 승전을 거둔 충무공 이순신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천해전 승첩 기념비와 6·25 전쟁 당시 사천지역에서 참전·순직한 공군 조종사 65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공군충령비가 있다. 매년 봄이면 사천비연보존회 주관으로 벚꽃 연날리기 대회가 펼쳐지고 벚꽃축제도 열린다.

사천읍성

사천읍성

2025-03-17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수양공원길 51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선인리 일대에 있는 사천읍성은 돌과 흙으로 쌓은 성곽으로, 약 1.5㎞의 둘레 중 현재는 3개 부근 약 300m의 성곽이 남아있다. 사천의 옛 이름이 사물(史勿), 사수(泗水), 동성(東城) 등이었는데 조선 태종 때부터 사천이라 하였다. 세종 24년(1442)에 병조참판 신인손이 왕명에 의해 쌓았다고 전해지며, 이곳에 돌로 성을 쌓기 시작하여 3년 후(1445)에 완성시켰다. 이로부터 4년 뒤 관청을 짓고 읍을 옮겼다고 한다. 처음의 기록에는 성 둘레 3,105척, 성벽의 높이 10.5∼11.5척, 성문과 옹성이 각 3곳이라 되어있고, 그 후의 기록에는 성둘레 5,015척, 성벽의 높이 15척, 성문과 옹성이 각 3곳이라 되어있어 후에 증축하였음을 알 수 있다. 본래 백성을 보호하고 왜구를 방어하기 위하여 쌓았다고 전해지는데,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많은 수모가 있었다. 특히 선조 32년(1598) 정기룡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과 명나라 원군이 연합하여 이 성을 탈환하기 위해 혈전을 벌여 왜적을 몰아냈다 한다. 현재 성 안에는 충혼탑, 수양루, 활을 쏘는 관덕정이 있는 산성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팔용산 돌탑

팔용산 돌탑

2025-03-16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봉암동

마산회원구 팔용산과 인접한 양덕동에 거주하는 이삼용 씨 등 주민들이 1987년 7월부터 팔용산 먼동 골에 약수터를 개설한 뒤, 많은 지역주민이 찾게 되었으며 1993년 3월부터 산사태가 난 계곡 주변에 등산로 정비를 하면서 돌탑을 쌓기 시작하였다. 이삼용 씨는 이산가족의 슬픔을 느끼고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하나하나에 지극 정성을 담아 돌탑을 쌓기 시작하여 1,000여 기를 쌓았다고 한다. 돌탑이 시민들에게 알려져,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지로 발전하자 창원시에서 돌탑 주변 일대를 공원으로 조성하였고 돌탑공원 표지석, 반려동물 배변봉투함, 해충기피제 자동분사기, 먼지떨이 기계 등 각종 편의 시설을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