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박달재

박달재

2026-03-09

충청북도 제천시봉양읍 원박리

제천시 봉양읍과 백운면을 갈라놓은 험한 고개를 박달재라 한다. 그 옛날 박달도령과 금봉 낭자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는 고개로 천등산뿐만 아니라 인근에 인등산과 지등산도 함께 있어 천지인이 모두 갖추어진 곳이다. 박달이라는 말은 순수한 우리말로 한자 자체가 가진 의미는 없다. 박은 밝다, 크다, 하얗다, 높다, 성스럽다 등의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 옛날에는 박달재와 다릿재를 넘으려면 걸어서 며칠이 걸렸다고 한다. 이 때문에 친정이 그리워도 다시는 갈 수 없는 슬픔에 시집가는 새색시가 눈물을 쏟는다고 해서 울고 넘는 박달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노성궐리사

노성궐리사

2025-12-18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교촌길 35

노성궐리사는 공자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이다. 궐리사라는 이름은 공자가 태어나고 자란 마을인 궐리촌에서 유래한 것이다. 숙종 13년(1687) 우암 송시열이 궐리사를 세우려고 했으나 2년 뒤 세상을 떠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뒤 숙종 42년(1716) 권상하, 김만준, 이건명 등의 제자가 현 위치에서 서쪽방향으로 있는 노성산 아래에 궐리사를 세우고 다음 해에 공자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정조 15년(1791)에는 송조 5현을 봉안하였고 순조 5년(1805)에 관찰사 박윤수가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지금 있는 영당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이곳 외에도 강릉, 제천, 화성에도 궐리사가 있었으나, 지금은 이곳과 화성에만 남아 있다.

망제동석불입상

망제동석불입상

2025-08-13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망제동

망제동석불입상은 전라북도 정읍시 두승산의 지맥인 만제봉 중턱에 있는 석불로 대암석불이라고도 한다. 머리에는 마치 갓과 같은 테가 큰 모자를 쓰고 있어 유교적인 성격이 가미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깨는 다소 움츠린 모습이며, 턱 밑에는 옷 주름이 있다. 손목 아래에는 세 줄의 평행선이 내려지고 있다. 오른손은 어깨높이로 들어 손바닥을 보이며 손끝은 위를 향하고 있다. 왼손은 마찬가지로 손바닥을 보이는데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다. 얼굴 표현과 손 표현에 노력이 집중된 불상으로 민속적인 특색을 띠고 있다. 큰 부처로 한 덩이 돌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며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주변 관광지로 창동서원, 백운암 석불입상, 말목정과 감나무, 전봉준 선생 고택, 말목장터 유지비가 있어 연계 관광할 수 있다.

태안향교

태안향교

2026-02-06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백화1길 7

1407년에 대장군 김중구가 사양동에 모옥으로 향교를 세우고 덕산에서 생원 최상운을 학사로 맞은 것이 향교의 시초이다. 처음에 초가이던 것을 세종 때 기와로 증·개축하였고, 1901년에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을 비롯하여, 명륜당·동무·서무·동재·서재·삼문 등이 있다. 태안향교는 지금도 충효 교실을 개설하고 하계 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학생들에게 직접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사회 교육을 실시하고 있어 오늘의 향교가 사회교육 기관으로서의 각광을 받고 있다. 580여 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는 태안향교는 태안 교육사의 측면에서 볼 때 문헌상에 나타난 최초의 교육기관임을 알 수 있다.

태안 목애당

태안 목애당

2026-03-09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백화로 54

태안 목애당은 조선 시대 태안군 관아의 동헌 건물로 고을의 수령이 일반 행정업무와 재판 등 공적인 일을 하던 곳이다. 조선조 고종 8년(1904) 오병선 군수가 목애당이란 서문을 썼다. 백성을 잘 다스리고 사랑한다는 뜻의 목애당은 2벌대로 쌓은 장대석 기단 위에 네모뿔형 주초석을 놓고 방형 기둥을 세워 평면을 구성하였다. 공포는 무출목 초익공계로 익공은 주두와 덧물려 외부로 돌출되었고 주초의 급단면은 직선으로 사절되어 있으며 내부는 량봉으로 되어 대량의 단부를 받치고 있는데 익공 끝을 길게 돌출시키지 않고 둥글게 마감하여 놓았다. 가구는 전방 토주와 후방 평주사이에 내고주를 세운 후 퇴량과 대량으로 결구한 일고주 오량집이며 홑처마 팔짝지붕으로 태안군 관아의 동헌 건물로 보인다. 오랫동안 태안군청의 민원실로 사용되면서 뒤편으로 건물을 새로 지었고, 내부도 많이 변경되었던 것을 옛 모습대로 복원하였다.

박약재

박약재

2025-03-17

충청북도 제천시 중말16길 5-4

제천에 있는 전통가옥으로 진주 강 씨 문중에서 자녀 교육을 목적으로 건립한 조선 후기의 건물이다. 강 씨 후손이 이곳에서 공부하고 제천 지역의 유력 사족으로 성장했다. 제천 상풍마을 초입에 제천 박약재 안내판과 진주 강 씨 유허비가 있고, 이곳으로부터 좌측으로 난 산길을 오르면 박약재가 나온다. 전면에 일각문을 세우고 주위로 막돌 담장을 둘렀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집이고 앞에는 가운데 섬을 둔 작은 연못을 조성하였다. 중앙은 대청마루가 있고 왼쪽에 방 2개, 오른쪽에 방 1개, 그리고 툇마루를 두고 있다. 현판문은 조선 후기의 학자 유인석의 친필이다. 1907년 강순조, 박정수, 이화중 등이 호서 의병장 운강 이강년의 전투사인 『운강창의일록』을 이곳에서 편찬했다. 오랜 역사를 가진 건물이지만 진주 강 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어 보존 상태는 양호한 편이었다. 정묘호란 때 척화를 상소한 강유가 이곳에서 공부하기도 했다.

백리포해수욕장

백리포해수욕장

2025-10-23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서해안의 절경 중 바닷물이 맑고 모래가 제일 으뜸이다. 해변은 짧은 편으로, 인근 만리포와 천리포와 연결되어 있어 이곳을 백리포해수욕장으로 부른다. 만리포처럼 드넓음은 없고, 그렇다고 천리포와 같은 쓸쓸함도 없는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는 해수욕장이 바로 백리포이다. 해변 양쪽에 절벽이 있는데 괌이나 사이판에 있는 유명한 절벽만큼 아름답다. 훼손되지 않은 자연경관과 깨끗한 바다, 그리고 고운 모래가 일품인 이곳은 조용한 곳을 찾는 사람들이 다녀가기 좋다. 병풍처럼 펼쳐진 주변의 소나무 숲이 아름다우며, 인적이 드문 바닷가 해변에는 껍질이 예쁜 꽃 조개가 많아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직산향교

직산향교

2025-03-19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군서1길 35-6

향교는 공자와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조선 전기 1588년(선조 21)에 세운 이 향교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다시 세워졌으며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보수하여 현재 모습을 갖추었다.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 내삼문, 외삼문이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5 성과 중국·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서적·노비를 지급받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로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지금은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천안향교

천안향교

2025-03-19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향교1길 89

천안향교는 태조 7년(1398) 처음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그 뒤 선조 39년(1606)에 다시 지은 것으로 보인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동무·서무,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명륜당,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 전사고, 삼문, 풍화루 등이다. 명륜당은 효종 7년(1656) 지었는데, 규모는 앞면 4칸·옆면 2칸이다. 대성전의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안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과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천안향교의 담장 밖에는 수령이 500년이 넘은 탱자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탱자나무는 천안향교와 함께 오랜 세월을 함께한 고목으로, 천안향교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나무다.

도덕폭포

2026-02-11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동

도덕폭포는 정읍 내장산에 있는 높이 20M의 폭포로 층층폭포라고도 부른다. 내장산국립공원 탐방안내소로 들어가는 입구 추령에서 장군봉에 이르는 약 350m쯤 올라간 지점의 좁은 골짜기에 있다. 절벽으로 떨어지는 폭포수의 물줄기는 가늘고 긴 편이며, 폭포 아래에 소가 형성되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조선 중종 34년(1539년) 내장산의 영은사 승려들이 도둑으로 돌변하여 민가를 다니며 약탈을 일삼고 부녀자를 희롱하며, 분묘를 발굴하며 탁란을 자행하는 등 승적들의 행패가 말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중 몇 사람이 이를 후회하고 폭포 아래에서 목욕재계하며 지성으로 기도를 드리다가 도를 깨치고 도인이 된 사람이 있었다 하여 도덕폭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주변에 도덕암이라는 암자가 있다. 폭포 주변의 경치가 매우 아름답고, 장마철에 물이 불으면 폭포의 장관을 볼 수 있다. 도덕폭포 상단으로 올라가면 5단 폭포가 있고 상단 폭포는 높이 45m로 내장산에서 제일 큰 폭포인데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