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청주 문의 문산관

청주 문의 문산관

2025-05-16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대청호반로 721

청주 문의 문산관은 조선시대에 청주 문의현에 있던 관아건물이자 충청북도 유일한 객사이다. 객사는 전패를 안치하고 초하루 보름으로 대궐을 향하여 절을 하는 의식을 거행하고, 중앙에서 내려온 사신의 숙소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이 건물의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1666년 문의읍에 현령 명하가 옮겨 세웠다는 기록이 있으며, 지붕의 암막새 기와에 옹정육년 무신사월이 새겨져 있어 1728년에 중건했음을 알 수 있다. 현 건물은 대청댐 공사로 인해 1979년 문의향교 옆으로 옮겼다가 1997년 문의문화유산단지 현 위치에 옛 모습대로 복원했다. 건물구조는 정당이 중앙에 있고 그 좌측에 좌, 우익실을 두었으며, 전면에 중문, 외문, 측면에 무랑 등이 부속되었고, 정당은 벽돌을 깔고 좌, 우익실은 한국식 우물마루로 되어 있다.

만석보혁파비

만석보혁파비

2025-03-06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을 위한 구실이었으며 크게는 반봉건 의미를 담은 만석보 철거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만석보 철거 요구는 당시 백성들의 민심을 헤아릴 수 있는 동시에 이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백성들의 의식이 커졌음을 의미하며 결국 신임 고부군수 안길수로 하여금 민심수습을 위해 철거를 결심할 수밖에 없게 만든 정치적 사건이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 당시 농민들은 고부관아를 점령한 뒤 수탈의 구실이었던 만석보를 부수었는데, 1898년 새로 고부군수로 부임한 안길수가 남아있던 만석보를 완전히 철거하였다. 이에 동년 9월 농민들이 ‘군수 안후길수 만석보 혁파 선정비’를 세웠다. 1994년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맞아 풍우로부터 비석의 훼손을 예방하기 위해 비각을 세웠다. ( 출처 : 정읍관광)

예산 용궁리 백송

예산 용궁리 백송

2025-03-19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산 73-28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인근에 위치한 예산 용궁리 백송은 김정희 선생이 조선 순조 9년(1809) 10월에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서 중국 청나라 연경에 갔다가 돌아올 때 백송의 종자를 필통에 넣어가지고 와서 고조부 김흥경의 묘 옆에 심었던 것이라고 전해진다. 김정희 선생의 서울 본가에도 영조(재위 1724∼1776)가 내려 주신 백송이 있어 백송은 김정희 선생 일가의 상징처럼 여겨지고 있다. 이 백송은 나이가 약 2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4.5m, 둘레 4.77m이다. 줄기가 밑에서 세 갈래로 갈라져 있는데 두 가지는 죽고 한 가지만 남아 빈약한 모습이다. 나무껍질은 거칠고 흰색이 뚜렷하며, 주변의 어린 백송들과 함께 자라고 있다. 예산의 백송은 희귀하고 오래된 소나무로써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클 뿐만 아니라, 중국과의 교류관계와 당시 사람들이 백송을 귀하게 여겼던 풍습을 알 수 있는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아산 윤보선 대통령 생가

아산 윤보선 대통령 생가

2025-03-19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해위길52번길 29

윤보선 대통령은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을 역임하였으며, 헌정 사상 최초의 의원 내각제 하 대통령이다. 본적은 충청남도 아산, 호는 해위(海葦), 기독교 집안인 중추원의관 동야 윤치소 씨와 중추원의관을 지낸 전주 이 씨 이재룡 씨의 장녀인 이범숙 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1913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던 윤보선은 이후 여운형을 따라 상하이로 건너가 상해임시정부에 들어가 약관의 나이에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영국에서 옥스퍼드와 에든버러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였다. 해방 후 서울시장 및 상공부장관을 맡으며 출세가도를 달렸으나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과 사사오입 등의 개헌을 통해 이승만의 장기집권을 도모하자 야당들을 통합하여 민주당을 탄생시켰고, 야당인 민주당 소속으로 3, 4, 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자 윤보선은 민의원과 참의원의 양원합동회의에서 내각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신군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물러나게 되었으며 74년 정계를 은퇴하여 부인 공덕귀 여사와 함께 유신체제에 항거하는 재야지도자가 되었다. 윤보선 대통령이 태어난 생가는 충남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 143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1984년 12월에 국가민속문화유산 제196호로 지정되었다. 3138㎡의 생가 터에 사랑채, 안채, 문간채, 행랑채 등의 구조로 윤보선 대통령의 부친인 윤치소가 1907년에 지었다고 하며, 주변은 해평 윤 씨 집성촌으로 현재는 전통가옥(윤일선가옥, 윤승구가옥, 윤제형가옥)들과 함께 하나의 권역을 이루고 있다. 평생을 나라사랑과 민주화된 조국을 염원했던 윤보선 대통령의 일생은 불의에 대한 저항과 사회에 대한 책임 등 그 정신적 바탕에는 아산이라는 지역정서가 크게 담겨 있으며, 둔포면 신항리는 우리나라 개화기 시대의 선각자들인 윤 씨 가문의 전통이 녹아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진천명품 휴미락캠핑장

진천명품 휴미락캠핑장

2024-07-23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용암2길 108-36

진천명품 휴미락캠핑장은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에 위치한 캠핑장으로, 안골관광농원이었던 곳을 리모델링하여 자동차 야영장으로 조성했다. 주위에는 우거진 숲과 함께 골짜기에 흐르는 맑은 물로 이루어진 자연 호수가 뛰어난 경관을 자랑하며, 딱따구리와 부엉이 등 숲 속에서 들리는 새소리가 평화로운 정취를 한껏 느끼게 해 준다. 캠핑을 위한 화장실, 개수대, 샤워실, 매점, 쉼터 등이 깨끗하게 마련되어 있으며, 매점 겸 관리 사무실 안에는 전자레인지와 이용할 수 있는 냉장고도 있다. 이곳은 사이트 간 간격이 넓고 파쇄석으로 잘 정비되어 있어 야외에서 즐길 수 있는 바비큐 파티와 지인들과 함께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정다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또한, 자연을 벗 삼을 수 있는 저수지와 계절을 따라 녹음이 우거진 숲과 낙엽 쌓인 오솔길을 따라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산책로와 등산로도 있어 마음껏 자연을 느끼며 싱그러운 자연 속에서 가족과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다. 특히 밤하늘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어 더욱 좋으며 가족과 또는 친구들과 행복한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곳이다.

영괴대

영괴대

2025-03-19

충청남도 아산시 온천대로 1459

영조가 온양의 온궁에 행차하였을 때, 함께 따라온 장헌세자(사도세자)가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다. 세자는 이를 기념하고자 온양군수 윤염에게 세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도록 하였고, 이후 아들인 정조가 왕위에 오른지 19년만인 1795년에 온양군수 변위진과 충청도 관찰사 이형원에게 명하여 이곳에 대를 만들도록 하였다. 대의 옆에 공사가 끝난 후 그 간의 과정을 기록한 비를 함께 세웠는데, 앞면에 새긴 ‘영괴대비’라는 비의 명칭은 정조가 친히 써서 내려준 글씨이다. 1984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전견훤묘(견훤왕릉)

전견훤묘(견훤왕릉)

2025-03-19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금곡리

전견훤묘는 후백제의 시조 견훤(甄萱:867∼935)의 것이라고 전해온다. 견훤의 원래의 성은 이(李)씨이며, 상주 사람으로 신라 장군 이자개의 아들이라 한다. 신라 진성여왕이 즉위하면서 몇몇 신하들의 횡포로 정치 기강이 문란해졌고, 또 기근이 심하여 백성들의 원망과 봉기가 심해졌다. 이때 견훤이 경주의 서남 주현(州縣)을 공격하니 이르는 곳마다 사람들이 호응하여, 마침내 진성여왕 6년(892)에 무진주(지금의 광주)를 점령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그 뒤 완산주(지금의 전주)에 도읍을 정하고 후백제를 세워 40여 년간 다스렸다. 고려 태조 19년(936)에 황산불사(黃酸佛寺)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죽을 때 전주 완산이 그립다고 유언을 하였으므로 완산을 향하여 묻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는 걱정이 심해 등창이 나 황산의 절에서 죽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에는 견훤의 묘는 은진현의 남쪽 12리 떨어진 풍계촌에 있는데 속칭 ‘왕묘’라고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커다란 봉분 앞에 1970년 견씨 문중에서 세운 비석이 서 있을 뿐 주변에는 아무 시설이 없고 남쪽으로 전주 뒷산이 70리 떨어져 잘 보이고 있다.

강경미내다리

강경미내다리

2025-12-16

충청남도 논산시 채운면 삼거리

강경천의 채운교가 있는 강둑을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시멘트로 만들어진 다리가 놓여 있고, 그 옆으로 작은 미내다리가 설치되어 있다. 전국 교역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는 강경포구가 있던 곳으로, 이 강을 ‘미내(渼奈)’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하여 ‘미내다리’라고 부른다. 강경미내다리는 조선시대에 충청도와 전라도를 잇는 삼남에서 가장 큰 다리였다. 다리의 규모는 길이 30m, 너비 2.8m, 높이 4.5m이다. 긴 돌을 가지런히 쌓아 3칸의 무지개 모양을 만들고, 그 사이마다 정교하게 다듬은 돌을 가지런히 쌓아 올렸다. 다리의 강둑 쪽 중간쯤에는 형태를 정확히 알 수 없는 동물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데, 눈은 마치 장승의 눈과 같고, 코는 뭉툭하며, 얼굴 양옆으로 귀 모양과 갈기가 있다. 다리 옆에 놓여 있던 ‘은진미교비’는 국립부여박물관에 보관 중인데, 비문에 의하면, 조선 영조 7년(1731) 주민의 필요에 따라 강경촌 사람인 송만운이 주도하여 이 다리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논산 노성산성

논산 노성산성

2026-03-04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송당리

논산 노성산성은 백제 때 산 정상 부분을 돌로 둘러쌓아 만든 테뫼식 산성이다. 산 지형을 자연스럽게 이용하여 거의 완벽하게 쌓았고 동쪽면, 북쪽면, 서쪽면은 돌을 네모 모양으로 다듬어 쌓았다.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는 장수의 지휘대로 보이는 터가 있으며 동쪽벽으로 조금 내려오면 봉화를 올리던 봉수대로 보이는 곳이 있다. 성 안에는 4개의 우물이 있는데 지금도 사용하고 있고 토기, 기와 같은 여러 유물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연산에 있는 황산성과 함께 백제와 신라가 서로 마주했던 마지막 방어지에 해당하는 산성으로,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 사용한 주요 방어지역이었던 곳이다.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

2026-03-11

세종특별자치시 세종동

은행나무 두 그루의 나이는 약 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숭모각 입구 우측에 위치한 은행나무는 높이 20m, 뿌리목 둘레 6.9m이며, 입구 좌측의 은행나무는 높이 19m, 뿌리목 둘레 5.4m이다. 임난수 은행나무에 관한 기록은 1674년 간행된 『부안임씨세보』의 부조사우도에 은행나무 한 쌍과 행정[杏亭]에 대해 언급되어 있다. 또한, 충청도 공주목의 『공산지(1859)』 부조사우[不祧祠宇]와 『연기지(1934)』에도 은행나무에 관한 내용이 전해진다. 세종 임난수 은행나무는 여러 문헌에 기록될 만큼 역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특히 암수 한 쌍으로 이루어진 노거수로, 기존에 단목으로 지정된 은행나무와 구별된다. 유교 문화와 관련된 행단[杏壇]의 좌우 대칭으로 심는 전통 재식 방식과 전월산 자락의 숭모각과 조화를 이루는 경관도 뛰어나다. 현재까지도 부안 임씨 후손들이 매년 은행나무 목신제를 지내고 있어 학술적·경관적 가치가 크며, 이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