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옥산서원

옥산서원

2025-08-14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옥산서원길 61-7

포은 정몽주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1715년(숙종 41) 연일정씨 후손들이 시조인 정습명과 포은 정몽주를 비롯한 6명의 선조에게 향사를 올리기 위해 이곳에 세덕사를 지었다. 그 후 1830년(순조 30)에 서원으로 바꾸면서 정몽주의 위패만 모시고 봄·가을에 향사를 올렸다. 정몽주가 1374년(공민왕 23)에 이곳 비봉루에서 하루를 묵은 인연으로 진주를 중심으로 한 서부 경남 사림들과 그 자손들이 예조에 주청하여 옥산서원을 진주 비봉산 비봉루에 세웠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그 자리에 영당을 지어 정몽주의 영정을 봉안하였다. 1965년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서원을 복원하고, 사당을 신축하여 문충사라 이름 짓고 정몽주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옥계서원(합천)

옥계서원(합천)

2025-03-16

경상남도 합천군 봉산면 서부로 3078-13

옥계서원은 율곡 이이의 유물인 「격몽요결」과 「해동연원록」 등을 소장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이이(1536∼1584)는 조선 중기 학자이자 정치가로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는 대학자이다. 옥계서원은 영조 3년(1725)에 지금 있는 자리에서 4㎞ 정도 떨어진 향옥동에 세웠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던 것을 고종 6년(1867)에 마을 동쪽 200m 지점에 다시 세웠다. 서원의 건물로는 강당, 소원사, 내삼문, 외삼문, 관리사 등이 있다. 강당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소원사는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오봉서원(밀양)

오봉서원(밀양)

2026-03-31

경남 밀양시 초동면 오방리

오봉서원은 경상남도 밀양시 초동면 오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이다. 조광익과 조치우를 제향하며, 지역 유자를 양성하고 수양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780년 조광익의 후손들이 조광익을 독향 하기 위하여 오봉사로 창건하였다. 1790년 취원당의 증조할아버지 조치우의 병향이 윤허되어 청효사로 개칭하였고, 1796년 경상남도 밀양의 사림이 춘추 사향을 청원하여 오봉서원으로 승호 하였다.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어 편액을 오봉서당으로 고쳤다.

오례사

오례사

2025-03-16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오례길 127-3

백촌 김문기(1399∼1456)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이를 계승하고자 세운 곳이다. 김문기 선생은 세종 8년(1426)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쳤으나 사육신과 함께 단종복위를 꾀한 사건으로 희생당하였다. 그 뒤 영조 7년(1731) 복관 되고, 영조 33년(1757) 충의(忠毅)란 시호가 내려졌다. 오례사는 선생의 후손이 1870년에 세웠으며, 1994년에 크게 보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외삼문, 추원재, 내삼문, 사당이 있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추원재는 앞면 4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출처: 국가유산청)

예림서원

예림서원

2026-03-11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예림서원로 128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에 위치한 예림서원은 조선 전기 김종직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지은 서원으로 1567년 조선 명종 때 짓고 위패를 모셨다.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1606년에 다시 지었다. 본래는 명종 1567년 당시 부사 이 경우가 밀양 유림의 요청으로 퇴계 이황의 자문을 받아 자씨산 아래 영원사 옛터인 덕성동에 서원을 짓고 덕성서원이라고 했다. 1635년에는 상남면 예림리로 옮겼으며, 이름을 예림서원으로 바꾸고, 박한주와 신계성을 더하여 모셨으며, 1680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건물의 구조는 교육공간은 앞에, 제사 공간은 뒤에 위치한 전학후묘의 배치를 하였다. 사당인 육덕사와 유생들의 모임 및 학문을 닦는 곳인 강당, 생활공간인 돈선재와 직방재, 그리고 전사청, 독서루 등이 남아있다.

예동서원

예동서원

2025-01-17

경상남도 의령군 유곡면 마장로 226-14

오랫동안 남계서원(藍溪書院)으로 알려졌는데 최근에 예동서원으로 바꾸었다. 학덕높고 절의의 큰 선비 표연말(表沿沫)을 추모향사하는 서원이다. 서원에는 경모당(景慕堂), 숭보사(崇報祠)와 기적비가 있다. 남계 표연말의 자는 소유(少游)이고 호가 남계(濫溪)로 1431년에 출생했고, 1498년 서거했다. 성종때 문과에 급제한 뒤 부제학, 이조참판겸 홍문관 예문관 대제학에 올랐고 연산군때 무오사화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중종때 신원됨과 함께 이조판서에 추증된 학덕높은 큰 선비였다. 김종직의 문인으로 김굉필, 정여창등과 함께 문행이 세상에 알려졌다. 묘소는 경북 상주에 있다.함양의 구천서원(龜川書院), 남계서원(濫溪書院)과 함창의 임호서원(臨湖書院)에서 표연말을 향사하였고 마장리에는 경모당과 숭보사와 기적비가 세워졌으며 예동서원에서 향사하고 있다.

신암서원

신암서원

2025-03-16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신암로 209

안군 가야읍 신음리에 있는 신암서원은 1780년(정조 4)에 안관(1491~1553) 선생을 향사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안관은 경상남도 함안 출신으로,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크게 통탄하고 벼슬길을 멀리하였다. 1519년(중종 14)의 기묘사화와 1521년(중종 16)의 신사무옥이 발생하자 1523년(중종 18)에 함안의 여항산에 은거하였다. 학문 탐구와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많은 저서를 남겼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 1780년(정조 4)에 영남 사림에 의해 사와 서원 강당이 건립되었고, 1784년(정조 8)에 서원으로 승격하였다. 1823년(순조 23)에 강당을 이건 하고, 1850년(철종 원년) 중건했지만 1868년(고종 5)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한동안 복원하지 못하다가 1990년 신암 서원 복원 추진 위원회가 결성되어 경상남도 함안 지역의 유림과 후손의 지원으로 1993년 10월에 준공하였다. 서원은 신암재로 편액을 바꾸었다. 중앙은 마루 2칸이고, 동편 2칸과 서편 1칸은 방이다. 신암재 좌측에는 정면 5칸, 측면 3칸, 목조 와가 팔작지붕으로 신축한 신암서원이 있다. 경내에는 사우 및 별묘를 비롯하여 동재, 서재, 장판각, 외삼문 등이 있다. 신암서원 내에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인 고려 후기 안축 근재집 목판 93매가 소장되어 있다. 향사일은 매년 3월 상정과 9월 상정이며, 순흥 안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김해 산해정

김해 산해정

2025-09-18

경상남도 김해시 대동면 산해정길 123-26

김해 산해정은 조선 전기 유학자인 남명 조식이 30세부터 45세까지 처가인 김해에 살며 자신의 학문과 사상을 정립하고 제자를 길렀던 곳이다. 남명 조식의 경에 바탕을 둔 정신 수양과 의를 기반으로 한 실천 정신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곽재우, 정인홍, 김면 등의 제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산해정의 ‘산해’는 ‘높은 산에 올라 바다를 바라본다’라는 뜻으로, 학문을 닦아 경지가 높아지면 생각과 마음이 바다와 같이 넓어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선 광해군 1년(1609)에 강당과 사당을 갖춘 ‘신산서원’이 이곳에 창건되었으나 고종 8년(1871)에 서원 철폐 정책으로 철거되었다, 이후 1890년에 산해정이 다시 세워졌고, 1999년에는 사당인 숭도사가 복원되었다. 숭도사에는 남명 조식의 위패와 더불어 그와 교류했던 송계 신계성의 위패도 모시고 있다. 산해정은 동부 경남의 유적 중 남명 조식과 관련한 유일한 유적이며, 그의 학문과 사상이 정립되던 시기의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신남서원

신남서원

2026-03-12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판정로 125-13

무안면 정곡리에 있는 신남서원은 고려 말기 대마도정벌과, 조선 태조 이성계를 도와 위화도 회군에 공을 세운 정국군 박위와 조선 초기 문신인 소총재 박기 부자를 향사하는 서원이다. 밀성 박 씨 정국군파 종중 소유로 종중에서 관리한다. 신남서원은 1822년에 후손인 박성기의 주청으로 밀양 사림의 공론을 모아 창건하였다. 서원 내 사당을 상모사, 강당을 경보당이라 하며, 당시 봉안문과 상향축문은 응교 강세백이 지었다. 1994년 우리 손으로 네 번째 건조된 잠수함에 이 박위장군의 이름을 빌어 ‘박위함’으로 명명하기도 했다. 1868년에 내려진 서원 철폐령에 따라 사당은 철거되었으나, 후손들은 서원 강당의 당호를 경보당으로 바꾸고 재실로 삼아 이곳에서 박위 장군을 주향, 박기를 배향으로 향사를 올렸다. 1981년에는 후손들의 발의와 고을 유림들의 호응으로 상모사를 이전대로 중건하였다. 서원의 배치는 사당인 상모사를 중심으로 전면에 신문을 설치하여 신역을 구분하였으며, 사당 밖에는 강당인 경보당이 있다. 경보당은 견치석으로 쌓은 높은 기단 위에 지은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 홑처마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평면은 가운데 삼 칸 대청을 두고 그 좌우에 온돌방을 들인 형식이며, 대청 앞은 개방하고, 온돌 앞에는 두 짝의 띠살창이 달려 있다.

예강서원

2026-03-05

경상남도 김해시 진례면 진례로311번길 107

예강서원은 조선 후기의 부농주택으로 약 700평의 대지에 대문채, 사랑채, 안채, 가묘, 고방채와 기타 3동의 부속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 염수당은 예강서원이라는 편액이 달려있으며 정면 5칸, 측면 1칸에 전후퇴가 있고 우측부터 큰 사랑방, 작은 사랑방, 안마루, 중 문간, 중 사랑방으로 짜여 있다. 전퇴에는 툇마루, 후퇴에는 벽장 등의 수장 공간이 부설되어 있다. 작은 사랑방과 안마루 사이에는 세 짝의 세살문을 달았으며, 안마루 뒷벽은 판벽으로 하여 수장시설을 더했다. 큰 사랑방에도 중방위에 벽장을 시설 하였으며 배면에 안채로 통하는 외짝 여닫이문을 달았다. 사랑채 지붕은 초창기 낙동강변의 억새를 엮어 지붕을 잇는 샛집이었으나 1971년 봄에 평기와집으로 고쳤다고 한다. 창호의 형식과 가구수법, 부재규격에 근대 한옥의 특성이 잘 나타나고 있다. 가묘는 단칸의 맞배집으로 별도의 4대 선조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