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9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 중리 산251
보가산성(보개산성)은 포천시 관인면 중리 산 251번지 일원에 축조된 복합식 석축산성으로 보개산부터 관인봉 능선의 서쪽 계곡부를 따라 내·외성을 쌓은 이중복곽식의 중·대형급 산성이다. 2005년 지표조사를 통해 외성과 내성의 존재가 확인되었으며 산성은 기반암인 응회암을 자연석 또는 반가공하여 사용하였다. 성의 규모는 전체 길이가 4,495m(외성 4,168m, 내성 327m)이고 성 내부면적은 총 537,718㎡이며, 잔존구간의 성벽 전체합산 연장길이는 443.8m로 조사되었다. 산성의 시설로는 상부가 없는 개거식 문지 1개소와 수구 2개소, 서문 문루지를 포함한 3개소의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으며 전형적인 중세성곽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전까지 태봉국의 궁예와 관련된 산성으로 알려져 있었다. 궁예가 왕건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피신할 때 항전하며 반격의 거점으로 쌓은 성터라는 전설 때문이다. 그러나 지표조사 때 산성에는 고려 중기 유물만 수습되었으며 이를 통해 볼 때, 1253년 몽고군에 의해 철원의 동주산성이 합락되었던 패전 경험과 대몽항쟁기 전쟁 양상의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비상시 대피가 가능한 입보형 산성으로 축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2025-03-20
경기도 여주시 주내로 13
영월루는 신륵사 국민관광지 맞은 편에 위치한 영월근린공원 내에 있는 2층 누각이다. 영월루에서는 남한강의 푸른 물줄기와 멀리 양섬, 강 건너 신륵사의 아름다운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많은 사랑을 받는 곳이다. 경기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영월루의 건축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건물 구조로 볼 때 18세기 말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팔작지붕을 한 2층 누각으로 낮은 기단과 좌우로 기다란 몸체와 치켜서 들린 지붕의 비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원래 여주군청의 정문이었는데 1925년경 군청 이전 때 당시의 군수였던 신헌수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한편 이곳은 예로부터 당대의 묵객들이 찾아와 시와 풍류를 즐겼던 명소라 한다. 영월루 바로 아래에는 커다란 바위 절벽이 있는데, 바위에는 마암[馬巖]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신라 경덕왕 때 마암 아래 강물에서 황룡마와 여룡마가 나타나 고을 이름을 황려현으로 고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때문에 이 바위는 마암이 되었다. 여주가 본관으로 여주에서 탄생한 대문호 이규보의 시 중에도 [두 마리의 말이 기이하게 물가에서 나왔다 하여 고을 이름이 황려라네]라는 내용이 있다. 영월근린공원 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고려시대의 탑인 여주 하리 삼층석탑과 다수의 선정비, 불망비, 구휼비와 현충탑, 그리스 참전비 등이 있고 분수와 운동시설, 벤치 등의 휴게시설이 있어 공원을 둘러보며 쉬어가기 좋다.
2026-05-14
경기도 여주시 세종대왕면 영릉로 269-10
영릉(英陵)은 조선 4대 세종과 소헌왕후 심씨의 능이다. 조선왕릉 중 최초로 같은 봉분에 왕과 왕비를 같이 모신 합장릉의 형식으로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에 세종, 오른쪽에 소헌왕후를 모셨다. 원래 영릉은 1446년 소헌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헌릉과 인릉 경내 인릉 자리에 조성되었고, 4년 뒤 세종이 세상을 떠나자 영릉에 합장하였다. 그러나 영릉이 풍수상 불길하다고 하여 세조 대부터 영릉을 옮기려고 하였으나 실현되지 못하였다가 1469년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옮기면서 옛 영릉에 있던 능침 석물과 신도비는 땅에 묻었고, 여주로 옮기면서 능침의 석물은 다시 만들었다. 영릉(寧陵)은 조선 17대 효종과 인선왕후 장씨의 능이다. 영릉은 같은 언덕에 왕과 왕비의 봉분을 위아래로 조성한 최초의 동원상하릉(同原上下陵)의 형식이다. 정자각 앞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위에 위치한 봉분이 효종의 능이고, 아래 봉분이 인선왕후의 능이다. 이렇게 능을 위아래로 조성한 이유는 쌍릉의 형태처럼 봉분을 나란히 조성할 경우, 풍수지리상 생기가 왕성한 정혈(正穴)이 벗어나기 때문에 위아래로 배치한 것이다. 1659년 효종이 세상을 떠나자 현 구리 동구릉 내 원릉 자리에 조성되었으나, 조성 직후부터 능침 석물에 문제가 생겨 보수가 계속되자 능 안에 빗물의 피해가 있을 것을 염려하여 1673년에 옮기기로 하였다. 그러나 능을 옮길 때 방을 열어보니 물이 들어온 흔적이 발견되지는 않았다. 영릉 입구에 있는 재실은 제향을 준비하는 건물로 현재 조선왕릉의 재실 중 원형이 가장 잘 남아있다.
2026-01-02
경기도 안성시 향교길 90-4 (명륜동)
안성향교는 1532년 창건된 된 향교로, 1932년과 1986년, 1988년 총 3차례 중수하였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안성향교는 대성전, 명륜당, 풍화루, 삼문 등이 현존하고 있다. 대성전은 문묘를 배향한 곳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명륜당은 일종의 교실이며, 풍화루는 일종의 강당으로 전국에 안성과 남원밖에 없으며 규모는 정면 11칸, 측면 1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성향교의 풍화로는 조선시대 향교 문루(아래에는 출입을 하는 문을 내고, 위에는 누를 지어 사방을 두루 살피는 기능을 가진 건물)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며, 경사지라는 입지여건의 특징을 잘 살려 외부에서 향교 내부가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향교 전면을 효과적으로 가릴 수 있는 적절한 높이와 규모를 가진 건물이다.
2025-01-17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산평리
서운산성은 차령산맥의 주된 봉우리인 서운산(해발 539m)에 있다. 정상부에서는 안성, 평택, 천안, 아산만 등 사방이 잘 조망되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성벽은 서운산 정상부의 봉우리 2개를 연결하여 산 복부를 감싸도록 쌓았다. 남벽 일부 외에는 성벽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 성의 둘레는 620m이고, 흙을 쌓은 곳은 450m 가량 된다. 전체적인 평면 형태는 동-서로 길쭉한 장방형이다. 성벽은 능선을 따라 흙을 성토하여 쌓았다. 자연지형에 따라 성벽을 쌓지 않거나 삭토하여 경사를 확보한 구간도 있다. 북쪽과 남쪽에 성문터가 있는데 주로 남쪽으로 출입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안에는 전투 때 지휘하던 곳으로 이용된 것으로 보이는 장수 바위와 우물터․절터․돌부처․작은 동굴․토기와 기와편 등이 발견되었다. 축성법이나 출토유물로 보아 서운산성은 삼국시대 백제성일 가능성도 있으나 아직 발굴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축성 주체와 축성 시기는 알 수 없다. 안에서 발견된 유물로 볼 때 삼국시대에 축조된 성을 임진왜란 당시 수축하여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음을 말해준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2025-07-23
경기도 이천시 관고동
설봉산은 높이 약 394m로 이천시를 수호하는 진산이다. 이천 시가지를 서쪽에서 둘러싸고 있는 설봉산은 부악산, 무학산, 부학산이라고도 부른다. 설봉산은 들머리와 날머리를 모두 설봉공원의 주차장으로 삼는 총 5개의 등산로가 있다. 3코스는 공원 입구→호암약수→설봉산성→정상→화두재→학소정을 거치는 코스로 신라시대의 성곽인 설봉산성, 고려 때 건립된 영월암, 설봉서원 등의 문화유적과 정상으로 오르는 길의 칼바위를 비롯한 여러 암봉, 삼형제바위, 호암계곡 및 호암약수터 등 설봉산의 명소를 둘러볼 수 있는 대표적인 등산코스로 꼽힌다. 총 6.85km, 약 120분 소요되는 코스이며 조금 길지만 등산 초보자 및 어린이도 오를 수 있는 쉬운 코스이다. 특히 설봉산은 봄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진달래 군락이 널리 알려져 많은 관광객이 모여든다. 산행 뒤에는 설봉공원 내의 박물관 및 미술관, 설봉조각공원 등을 둘러보거나 가까이 위치한 시내의 안흥유원지에서 온천욕을 하며 피로를 풀 수 있다. 설봉저수지 부근 제1주차장 쪽에 이천 종합관광안내소가 있어 필요시 관광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메인 주차장인 설봉공원 제1주차장 외 공원 내 모든 박물관, 미술관 등의 시설에 별도의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코스별 가까운 지점에 있는 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신둔IC에서 차량으로 약 8분, 경강선 이천역, 이천종합터미널에서 차량으로 약 10분 소요된다. 인근에 사기막골도예촌, 예스파크, 이천설봉온천랜드, 미란다호텔 스파플러스, 성호호수연꽃단지, 한택식물원, 지산포레스트리조트스키장, 이천테르메덴, 덕평공룡수목원 등이 있다.
2026-02-05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1366번길 18
강화 전적지는 갑곶돈대, 고려궁지, 광성보, 덕진진, 초지진으로 5개소이며 강화도는 지리적 특성상 고려부터 조선시대까지 외세의 침입에 대항하는 첫 번째 관문으로서 수많은 전투가 일어났던 전적지이다. 몽고와의 항쟁을 비롯하여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 및 정묘호란을 피했던 곳으로, 개화기에는 병인양요, 신미양요를 겪었으며, 일본과 강화도조약을 맺은 곳이기도 하다. 현재는 서울 방위를 위한 중요한 국방 요지이며, 1977년 복원 및 보수작업을 마무리하여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2026-03-12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청소년야영장 내 위치한 홍릉은 고려 23대 고종(1192~1259)의 능이다. 강종의 맏아들로 1212년(강종 1) 태자로 책봉되었다. 어머니는 원덕태후 유씨이고, 비는 제21대 희종의 딸인 안혜태후이다. 46년간 재위하였지만, 정치적 실권은 무신들이 장악하고 있었고 북방 민족의 침입도 잦아 국내외적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1231년 몽골이 침략하자 다음 해 강화로 천도하여 항쟁했으며 16년간에 걸쳐 강화에서 을 판각하였다. 1259년(고종 46)에 태자 ‘후일의 원종’가 몽골에 가서 강화의 뜻을 비쳤고 항쟁하던 성곽도 헐어버렸다. 같은 해 6월 고종이 사망하자 강화에 묻었고 그것이 홍릉이 되었다. 본래 홍릉은 높게 쌓은 3단의 축대로 되어있으며, 맨 아래에 정자각, 2단에 사람 형상의 돌 조각상, 가장 높은 곳에는 왕릉이 배치돼 있다. 원형의 봉분은 직경이 4m로 작은 편이다. 지금은 사람 모양의 돌조각 2구만 남았다. 1988년 재실이 신축, 복원되었다.
2026-02-09
인천광역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고인돌은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강화 부근리 고인돌은 길이 710cm, 높이 260cm, 넓이 550cm의 커다란 돌을 사용했으며, 형태는 북방식 고인돌로서 고대사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2000년 11월 29일 호주 케인즈 제24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고창, 화순의 고인돌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강화도 고인돌 유적은 고인돌의 제작 기겁과 선사시대의 다양한 무덤 형태 등에 대해 알 수 있는 공간으로 아이와 함께 역사 여행을 즐기기 좋은 곳이다.
2024-12-05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용천리 산27번지
함왕성은 둘레 2,150m의 산성으로 용문산 봉우리를 감싸면서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축조된 성곽이다. 성으로 오르는 길은 사나사가 있는 절골에서 북동쪽으로 진입하거나 절골 북서쪽의 큰골마을에서 오르는 길을 택할 수 있다. 함왕성은 함씨대왕성, 함공성, 양근성 등으로 불리어 왔으며 전설에 의하면 사나사 절 밑에 있는 함공혈이라 하는 커다란 바위굴에서 함씨대왕 주악이 탄생하여 이곳을 다스리면서 처음으로 함왕성이 축조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산성은[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하여 이곳의 지리와 관련된 옛 기록에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산성이며 고려 말기에 몽고병이 침입하였을 때 주민들이 피신하고 저항하였으나 결국 함락되고 마는 비운의 산성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산성은 산마루 주변을 둘러싸는 포곡식 석축산성으로 성벽은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바위가 있는 곳은 구태여 성을 쌓지 않았으며 지금은 성벽이 대부분 무너지고 남아 있는 부분은 북벽과 남벽의 일부뿐이다. 현재 성문은 북문 터와 서문 터가 잠정 확인되고 성문 안쪽에는 우물이 있으며 서문 안쪽의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 여러 채의 건물이 세워졌던 흔적과 많은 기와 조각들이 남아 있다. 현재의 함왕성은 축성법, 출토유물 등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에 민간보호용으로 축조되었다고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