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해운대 관광특구

해운대 관광특구

2025-04-07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부산광역시 해운대구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관광지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여름 휴양지로 사랑받는 것은 물론, 봄, 가을, 겨울에도 부산국제영화제와 국제요트대회, 해운대 해맞이 축제 등 다채로운 축제와 행사가 열려 사계절 내내 관광지로 인기가 많은 곳이다. 해운대관광특구에는 해운대해수욕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해양 레저와 풍부한 수산물을 즐기고 맛볼 수 있는 곳이며, 각종 여가와 문화를 즐기며 장기간 휴양할 수 있는 체류형 관광지로 전 세계인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동백섬과 달맞이언덕, 해수온천과 같은 자연 자원뿐 아니라 컨벤션 센터와 요트장 등 관광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관광특구에는 영화의 전당, 영화 촬영소, 미술관, 아쿠아리움 등 문화 시설도 있으며, 야경이 환상적인 문탠로드와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갈맷길 등 산책코스도 다양하다.

수운정

수운정

2025-03-11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신덕면 금정길 62-5

수운정(睡雲亭)은 조선 철종 13년(1862) 4월에 이곳 금정리에 살던 경주김씨 수운(睡雲) 김낙현(金樂顯)이란 사람이 세운 것이다.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옆모습이 여덟 팔(八) 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김낙현은 경주김씨 계림군 김균의 15대손으로 성운(星運), 성홍(星弘), 성철(星徹) 등 아들 셋을 두어 행복한 가정을 꾸려오던 중 성운·성홍 두 아들이 죽게 되자 그 슬픔을 금할 길 없어 산수를 벗 삼고 소요하고자 시냇가 양지바른 곳에 터를 닦아서 세웠다고 한다. 한편 경주김씨가 이곳 금정리에 이거한 것은 계림군 김균의 9대손인 김재오(金載五)가 삼계면 석문동에서 이곳으로 이거한 이후 여러 대에 걸쳐 세거하고 있다. 이후에 행객들이 이곳을 찾고 수려한 자연을 벗 삼아 글을 지으면서 교류하였고, 그 글귀가 현판으로 걸려있다. 6ㆍ25 당시 마을이 모두 소실되었으나 수운정만은 소실되지 않고 보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일제 치하에 있을 때 일본인들이 몇 개의 현판을 떼어갔다고 한다. (출처 : 국가유산청)

자락정

자락정

2025-03-06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계면 삼봉리

자락정은 조선시대 사인 김영호, 감사 박수기 등이 처음 지었으나, 1924년에 양쪽 집안의 후손들이 낡은 것을 고쳐 지었다. 자락정은 스스로 즐긴다는 뜻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했던 박기수의 심성을 잘 나타낸 말이다. 건물은 앞면 2칸, 옆면 2칸 규모이다. 아름다운 주위 경관, 풍천의 맑은 물과 섬과 같이 치솟은 석벽에 정자가 조화되어 가히 제일경으로 손꼽히고 있다.

통일공원(파주)

통일공원(파주)

2025-11-07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통일로 1586-24

파주 통일공원은 육군 제1사단 장병들의 호국정신을 기리고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1973년에 조성되었다. 1953년 휴전회담 당시에 유엔종군기자센터가 있던 곳에 세워졌다. 안보전시장과 철도종단점, 망배단 등의 시설이 있다. 한국전순직종군기자추념비를 비롯해서 6·25전쟁 당시 순직한 이유 중 대령과 김만술 대위의 기념비, 육탄용사충용탑, 충현탑, 개마고원 반공유격대 위령탑 등의 기념물이 있다. 이 중 망배단은 북한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을 위하여 1985년 9월 26일 설치된 제단이다. 추석과 설날 등 명절은 물론 평소에 이곳을 찾는 실향민들이 차례를 지내는 곳이다. 육탄용사충용탑은 높이 20m의 대형 탑으로 6·25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 개성의 송악산 전투에서 박격포를 안고 적진에 뛰어든 10인의 용사를 기리는 탑이다. 개마고원 반공유격대 위령탑은 8·15광복 후 38선 이북이 공산화되자 서북광복동지회를 주축으로 유격전을 펼치다 희생된 전사들을 추모하는 탑이다. (출처 : 파주시 문화관광)

이태원 관광특구

이태원 관광특구

2026-03-18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150

이태원은 1997년에 서울시에서 최초로 지정된 관광특구로 2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는 다국적·다문화 지역이다. 1980년대 들어 각종 국제회의를 비롯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되면서 이름이 알려지게 되어 관광객들의 명소가 되었다. 특히 가죽 제품과 독특한 디자인의 보세 의류, 소품들이 유명하며 외국인들의 쇼핑 투어에 꼭 포함되는 쇼핑과 유흥의 거리다. 구두, 의류, 가방 등을 파는 쇼핑 상가는 물론 호텔을 비롯한 숙박 시설, 각종 음식점, 유흥 오락 시설과 여행사 등의 상가가 골목골목에 밀집해 있다. 또한 외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음식점이 모여 조성된 세계음식거리에서는 이국 문화와 음식 체험이 가능하다.

만휴정

만휴정

2026-05-20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묵계하리길 42

만휴정은 보백당 김계행공의 정자이다.1500년(연산군 6)에 건립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중수를 거치면서 변형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일부만 조선후기 양식을 보이고 있다. 김계행은 조선 초의 문신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하지만 연산군 폭정을 만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땅으로 낙향했다. 그 후 설못(현 소산2리)가에 조그마한 정자를 지었으나 길 옆인 관계로 더욱 조용한 장소를 찾아 이 정자를 건립하였다. 길안면 묵계서원에서 개울건너 산곡 간에 들어서면 웅장한 계곡에 반석위로 폭포를 동반한 곡간수(谷澗水)가 흐르는 절경을 이루는 곳에 동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 품위가 느끼져는 만휴정의 구조를 살펴보면 홑처마 팔작지붕집으로 처마 앙곡과 안허리가 매우 날카로워 정자의 맛을 더욱 살리고 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전면쪽 3칸은 삼면이 개방된 누마루형식으로 누각 주위 삼면에는 계자각난간을 돌렸다. 뒤쪽 3칸은 어칸이 마루로 전면의 누마루와 연접되어 있으며 후벽의 문하부는 궁판이 높직하게 끼워져 있다.양 퇴칸은 온돌방을 들였는데 방의 앞부분은 일반적인 쌍여닫이 세살문을 달았으나 마루쪽으로는 띠살무늬의 세짝 들어열개문이 설치되어 있다. 전면쪽을 고스란히 개방하여 툇마루로 구성한 예는 흔하지 않으며 약계정과 유사한 평면형식을 보이고 있다. 기둥 상부에는 연봉장식이 가미된 2익공양식의 촛가지가 돌출되어 있어 조선후기 작품으로 간주되지만 말기의 번잡한 양식과는 달리 품위를 유지하고 있다. 창방위에는 연꽃을 새긴 화반을 놓았는데 비교적 공을 들여 조각하였다. 상부는 5량가로 대량 위에 동자주를 세워 종량을 놓았으며 그 위에 제형판대공을 올렸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예능 예능 16기에 등장하는 안동의 명소다. 한적한 숲에서 찾아올 이를 기다리는 만휴정과 유일한 길인 외나무다리가 꼭 출연진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백운정

백운정

2025-04-30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경동로 1850-97

※ 25년 3월 산불로 인해 개호송 숲 출입이 불가함으로 방문 전 참고 부탁드립니다.
.text202503{ COLOR: #FF0000; } 백운정은 귀봉 김수일(1528∼1583)이 그의 부친인 청계 김진(1500∼1580)으로부터 부지를 받아 선조 1년(1568)에 지은 정자이다. 김수일은 과거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 남아 자연과 더불어 학문 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썼다. 정자는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현판의 글씨는 허목(1595∼1682)이 직접 쓴 것인데, 분실의 우려가 있어 별도로 보관하기 때문에 현재는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다.

안동 삼산정

안동 삼산정

2026-04-15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삼산길 12

조선 영조 26년(1750) 경에 유정원(1702∼1761)이 지어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을 가르치던 정자이다. 지금은 그 후손들이 선생의 덕행을 기리며 자손들을 가르치는 곳으로 쓰고 있다. 유정원은 영조 때의 문신으로 홍문관수찬·사간원교리 등을 거쳐 대사간에 이르렀다. 영조의 총애와 채제공의 추천으로 장헌세자에게 강의하기도 하였다. 한편 지방관으로 있을 때에는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어 정약용의『목민심서』에서 그 치적을 다루기도 하였다.‘역해참고’등 많은 책을 남겼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의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낙암정

낙암정

2026-04-15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풍산단호로 895

낙암정은 조선시대의 문신 배환을 기리기 위해 문종 1년(1451) 흥해 배씨 후손들이 지은 정자이다. 선조 8년(1575)과 순조 13년(1813)에 다시 지었고, 고종 18년(1881)과 1955년에 고쳐 지었다. 배환은 흥해 배씨 중 안동 지역에 처음으로 정착한 배상지의 둘째 아들이다. 지금의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태종 1년(1401)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황해·충청·전라도 관찰사를 지냈다 낙암정은 낙동강 옆 절벽에 세워져 낙동강과 강 건너 넓은 계평 들판의 아름다운 경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왼쪽에 마루가 있고 오른쪽에 온돌방이 있으며, 앞면에는 난간을 두른 툇마루가 있다. 일반적인 정자에 비해서 누마루 아래 기둥이 짧다. 낙암정의 자리는 도깨비가 정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루는 배환이 선비들과 술을 마시다가 거나하게 취해 낙동강 옆 백사장에서 잠이 들어 버렸다. 마침 지나가던 도깨비들이 배환이 죽은 줄로 알고 좋은 묫자리를 찾아 묻어 주기로 하였다. 도깨비들은 배환을 메고 강가의 가파른 절벽을 오르다가 지금의 낙암정 자리에 배환을 묻어 주고자 하였다. 배환은 그제야 잠에서 깼으나 계속 죽은 체하면서 듣고 있었다. 그때 한 도깨비가 이곳은 묫자리보다는 정자를 지을 터라고 하며 다른 곳을 찾자고 하였다. 도깨비들이 한눈을 파는 사이, 배환이 “네 이놈들! 내가 죽긴 왜 죽느냐!” 하고 크게 호통을 치며 일어났다. 놀란 도깨비들은 사라지고, 그 소동에 절벽 위에 있던 큰 바위가 굴러 떨어져 정자를 짓기 좋은 터가 만들어졌다. ‘낙암정’이라는 이름은 이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제3땅굴

2025-10-23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제3땅굴로 210-358

1974년 9월 5일 북한에서 귀순한 김부성이 ‘자신은 남측 땅굴을 측량한 측량기사인데 비무장지대 안에 땅굴이 있다’고 제보하면서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후 별다른 땅굴 징후를 발견하고 있지 못하다가 3년이 지난 1978년 6월 10일 한 시추공에서 폭발음과 함께 물이 솟아오르는 것을 포착하게 되었다. 아군에게 발견된 제3땅굴은 문산까지의 거리가 12㎞, 서울까지의 거리는 52㎞지점에 있다. 폭 2m, 높이 2m, 총길이는 1,635m로 1시간당 3만 명의 병력이동이 가능하다. 하루 5번 운행하는 셔틀승강기를 설치하여 모노레일을 타고 땅굴 속까지 걸어가지 않아도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DMZ 영상관에서는 분단의 역사와 자연생태계를 담은 입체영상물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상징조형물, 기념품판매장등의 시설이 설치되어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 : 파주 DMZ 평화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