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노적봉

노적봉

2026-04-16

전라남도 목포시 노적봉길 45 (측후동)

노적봉(露積峯)은 해발 60m의 바위산에 불과하지만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호국혼이 담겨있다. 정유재란 때 12척의 배로 불가능해 보였던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고 전열을 재정비하는 동안 조선의 군사와 군량미는 턱없이 부족하여 바로 왜적이 쳐들어온다면 함락될 수밖에 없는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때의 노적봉은 아주 큰 역할을 하였다. 유달산 앞바다에 왜적의 배가 진을 치고 조선군의 정세를 살피고 있을 때 이순신 장군은 노적봉을 이용하여 위장전술을 펼쳤다. 노적봉 바위를 이엉(볏짚)으로 덮어 마치 군량미가 산처럼 많이 보이게 하고 새벽에 바닷물에 백토를 풀어 밥 짓는 쌀뜨물처럼 보이게 하여 왜군들이 군사가 많은 줄 알고 스스로 물러나게 하였다. 이러한 일이 있는 후로 이 봉우리를 노적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순신 장군이 호령하고 있는 듯한 모습의 큰 바위 얼굴은 맞은편 이순신 장군 동상과 함께 서남해안의 관문인 목포를 수호하고 있다. 노적봉의 기를 받으면 건강에도 좋다고 하여 다산목과 함께 소원을 빌기 위해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아 새로운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출처 : 목포 문화관광 홈페이지)

순천만 화포포구

순천만 화포포구

2025-07-30

전라남도 순천시 별량면 학산리

화포는 옛날 지명이 쇠리로 시골스러움과 한적한 포구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순천만의 고즈넉한 갯벌이 오롯이 보존된 곳이다. 봄이면 진달래 개나리를 비롯한 개꽃들이 동산의 소나무와 대나무 사이를 촘촘하게 메운다고 해서 화등이라 부르고 그 아래 자리한 포구라고 해서 화포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이곳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건너 와온해변에서 시작하는 남도 삼백 리 길 가운데 2번째 코스이자 남파랑 일부이기도 하고 예로부터 꼬막과 낙지, 짱뚱어 등의 중요한 어족자원들이 풍부한 어촌마을이다. 뻘이 깨끗한 이곳에서 잡히는 낙지는 대표적인 세발낙지로 명성이 자자하다. 또한 이곳은 순천만으로 날아드는 철새는 황새, 흑두루미, 저어새, 검은머리갈매기 등 70여 종에 달해 생태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화포마을 뒤편의 봉화산(235.9m)은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으며 순천만의 경관이 한눈에 보이는 정상에는 고흥 마복산에서 타오른 봉화를 순천에 전하던 봉화터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바다 너머로 보이는 동쪽 땅은 여수반도, 서쪽은 고흥반도이다.

금곡동 제철유적

금곡동 제철유적

2026-03-18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광주광역시 금곡동제철유적은 금곡[金谷]이라는 지명이 쇳골을 의미하고 있으며, 유적 주위에 건물지의 기단부와 수많은 철재가 남아 있어 일찍부터 유적이 나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금곡동제철유적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1567~1596)의 의병 활동과 관련한 무기 제조창으로 알려졌다. 금곡동제철유적 일대는 산화철이 포함된 미문상 화강암이 넓게 분포하고 있어, 이 암석을 모암으로 생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철을 채취할 수 있는 지역이다. 또한, 무등산 내에서 제철 연료용의 목탄도 풍부하게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 작업장 내에서 제철, 정련, 단조 철기 제작의 전 공정을 보여 주는 유구가 일괄 확인되어 15~16세기 제철 및 철기 제조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또한, 금곡동제철유적의 발굴을 통해 김덕령의 의병 활동 과정에서 무기 제조 장소로 활용된 역사적 사건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유적지에 이르려면 무등산 의병길을 따라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

광주 충효동 왕버들 군

광주 충효동 왕버들 군

2025-03-20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샘길 7

광주호 동쪽 호안(湖岸)과 충효동 마을 사이의 도로변에 위치한 왕버들나무는 버들과의 딸린 갈잎 큰 키나무이다. 암수 나무가 딴 그루를 이루며, 4월에 꽃이 피고 열매는 5월에 익는다. 우리나라 경기도 이남 지역과 일부 중부 이남 지역, 중국 중부 지역에 분포하며 풍치림(風致林)과 정자목(亭子木)으로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물가나 들에서 자라며, 목재는 가구와 땔감 등으로 쓰인다. 충효동의 왕버들 3그루는 모두 광주시 나무로 지정되어 있는데 원래는 일송·일매·오류(一松·一梅·五柳)라 하여 마을의 상징 조경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매화와 왕버들 1그루는 말라죽었으며, 또 1그루의 왕버들과 소나무는 마을 앞 도로를 확·포장하면서 잘라 버려 지금은 왕버들 3그루만 남아 있다. 마을에서는 다시 왕버들 2그루를 식목하였으며, 소나무와 매화도 계속 식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충효동의 역사는 분명치 않으나 예부터 성이 있어 성안 또는 석저촌(石低村)이라 불려 왔다. 이 일대는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양산보(梁山甫)의 소쇄원(瀟灑苑)을 비롯하여 김윤제(金允悌)의 환벽당(環璧堂), 김성원(金成遠)의 식영정(息影亭)과 누하당(樓霞堂) 등의 원림(苑林) 정각(亭閣)이 많이 있어, 주변 조경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곳이다.

충효동 정려비각

충효동 정려비각

2026-04-22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샘길 7 (충효동)

충효동 정려비각은 충장공 김덕령(1568~1596) 장군과 그의 부인 흥양 이 씨, 그 형 덕홍과 동생 덕진 일가족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해 충효리 마을 앞에 세운 비각이다. 이것이 여느 문과 다른 것은 이 비각 앞의 현판에 새겨 있는 내용에서 ‘1788년 정조가 윤음으로서, 표리비를 세우라’ 이르고 충효 지리(忠孝之里)라는 마을 이름을 지어 하사한 점이다. 비는 1789년(정조 13년)에 세운 것으로 전면에는 비명이 3행으로 새겨져 있다. 비의 크기는 총 높이 220㎝, 기단 높이 110㎝, 비신 높이 171㎝, 비신 너비 68㎝이며 비갓이 얹혀 있다. 비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며 삼문과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비각의 건립 연대는 1792년이며, 그 뒤 수차례의 중수를 거쳤다. 비각 전면에는 전주 부윤 한용구가 쓴 정조어제윤음(正祖御製倫音)이란 현판이 있다.

광주 충효동 요지

광주 충효동 요지

2026-03-04

광주광역시 북구 풍암제길 14

무등산 북쪽 충효동에 자리 잡은 가마터로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까지 상감청자·분청사기·백자를 굽던 곳이다. 가마의 구조는 사람이 드나드는 출입시설·도자기를 집어넣는 번조실·굴뚝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둥근 무덤 형태가 연결된 모양으로 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과 출토유물의 연도를 통해 1430년을 전후해 만들어지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후 약 70∼80년간 자기 제작이 지속되다가 16세기 초에 중단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초기에는 분청사기만 만들다가 백자가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같이 제작했으나 분청사기의 무늬가 조잡해지면서 생산량이 줄어들었다. 반면 백자를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질이 좋아지고 생산량도 늘어 분청사기가마에서 백자가마로 성격이 바뀌었다. 백자는 크기가 작은 것이 주를 이루는 데 비해 분청사기는 크고 작은 것 모두 있고 종류도 접시·종지·잔·병·항아리·벼루·제기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분청사기에 주로 사용된 무늬는 국화·나비·물고기·게·구름무늬 등이며 여러 무늬를 조합하여 그리기도 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운영되었던 곳으로 청자부터 분청사기를 거쳐 백자로 넘어가는 과정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출처 : 광주광역시 북구문화관광홈페이지)

환벽당

환벽당

2025-04-01

광주광역시 북구 환벽당길 10

환벽당은 광주호 상류 창계천가의 충효동 쪽 언덕 위에 있는 정자로, 나주목사를 지낸 김윤제(1501∼1572)가 낙향하여 창건하고 육영에 힘쓰던 곳이다. 환벽(環璧)이란 뜻 그대로 푸르름이 고리를 두르듯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룬다라는 의미이다. 환벽당은 시가문학과 관련된 국문학사적인 인문학적 가치가 매우 큰 곳이며, 별서 원림으로서 가치가 우수한 호남의 대표적인 누정문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당호(堂號)는 영천자 신잠이 지었으며, 벽간당이라고도 불렀음이 고경명의 유서석록에 기록되어 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이다. 가운데 2칸을 방으로 하여 앞쪽과 오른쪽을 마루로 깐 변형된 형식이다. 원래는 전통적 누정 형식이었으나 후대에 증축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바뀐 것으로 생각된다. 이곳에는 우암 송시열이 쓴 제액이 걸려있고, 석천 임억령과 조자이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환벽당에 관한 시는 정철이 지은 2수가 있는데, 송강속집과 광주목지에 실려 있다. 환벽당에는 정철에 얽힌 일화가 전한다. 어느 날 김윤제가 이곳에서 낮잠을 자다가 조대 앞에서 한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난 김윤제가 이상히 여겨 급히 그곳에 내려가보니 미역을 감고 있는 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그 소년의 비범한 용모에 매혹되어 외손녀를 이 소년에게 시집보냈는데, 이 소년이 뒤에 정치가로서 또한 문호로서 이름을 날린 정철이었다 한다. 환벽당 아래는 김윤제와 정철이 처음 만난 곳이라는 전설이 깃든 조대와 용소가 있다. 창계천 동북쪽으로 250m쯤 떨어진 곳에는 식영정이 있으며, 환벽당 바로 곁에는 취가정이 있다. 인근에는 독수정과 소쇄원이 자리 잡고 있어 바로 이 일대가 조선시대 원림 문화의 중심 지역임을 알 수 있다. * 사촌 김윤제 김윤제(1501~1572)는 본관이 광산으로, 충효리에서 태어났다. 1528년 진사가 되고, 1532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교리 겸 춘추관으로 벼슬길에 나아간 뒤 홍문관교리, 나주 목사 등 13개 고을의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관직을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환벽당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을 썼는데, 송강 정철과 서하당 김서원 등이 대표적인 제자이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과 김덕보형제는 그의 종손으로 역시 학문의 영향을 받았다.

목포시사

2026-02-24

전라남도 목포시 유달로 165

유달산정문에서 조각공원 쪽으로 약 2㎞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목포시사는 본래 1890년에 하정 여규형 등이 건립한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초기에는 유산정이라 부르며 문인들에게 시문을 가르치고 백일장 등을 주도하던 곳이었다. 이후 1920년에 무정 정만조가 재확장하여 유산사로 개명하고 1932년에 중수하였으며 1937년 목포시사를 발족하였다. 목포시사는 40.49㎡(12.25평) 크기의 목조 기와로 되어 있다. 측면과 뒷면의 중방은 습기를 방지하기 위하여 벽돌로 쌓았으나 1979년과 1984년 2회에 걸쳐 벽돌을 제거하고 보수하였다. 시사란 문사들이 서로 시문을 독려하고 자연과 시를 노래했던 풍류의 장소로 시인들의 단순한 모임을 넘어 망국의 한과 우국충정을 토로하는 유림의 문학 결사 단체였다. 특히 한말의 유학자 정만조는 이곳에 머물며 퇴폐한 유풍을 바로잡고 학풍을 진작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한시의 명맥을 이어온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시사로 무정문집과 구한말의 전적, 창사이래 개최된 백일장에서의 입선작, 문인들의 원고를 모두 보존하고 있다.

녹도

2026-02-09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녹도2길 33-2

보령시 서쪽 약 25km 해상에 있는 이 섬은 고개는 서쪽으로 뿔은 동쪽으로 두고 드러누워 있는 사슴과 같이 생겼다라고 하여 녹도라고 불린다. 전형적인 어촌 마을이기도 하다. 녹도의 마을은 바다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오밀조밀하게 형성되어 있어 불이 켜진 한 여름밤에 바다 쪽에서 바라보면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서구의 옛 성을 연상케 하는 그림 같은 섬이다. 녹도는 그리 크지 않아 외부인의 발길이 적고, 주로 낚시 애호가가 찾아오는 조용하고 깨끗한 섬이다. 하지만 녹도를 한 바퀴 돌아보면 고요한 청정미를 느끼며 마을 언덕에서 방파제를 바라보는 풍경도 그림과같이 아름다워서 관광지로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고대도

2026-03-12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고대도1길 1

고대도는 보령시 원산도와 태안군 안면도 사이에 위치한 섬으로 태안해안국립공원에 속한다. 옛부터 일찍이 사람이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던 섬으로 조그만 섬이지만 풍부한 어자원과 어장으로 일찍이 생활 수준이 발달하였다. 마을에서 가까운 당산 너머에는 기암괴석과 금사홍송으로 둘러싸인 당산 해수욕장, 섬의 남쪽 끝머리에는 자갈 해수욕장이 있어 피서지로 방문하기에도 좋다. 이 섬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기독교 선교가 이루어진 섬으로 일컬어진다. 고대도 교회는 조선에 배를 타고 들어온 최초의 선교사 칼 귀츨라프 선교사를 기념하는 교회이다. 멋진 풍경 뿐 아니라 이러한 역사까지 갖고 있는 고대도는 안면도 영목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들어갈 수 있다. 주변에는 안면도, 원산도뿐만 아니라 장고도, 삽시도 등의 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