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1-21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영암사지는 황매산 남쪽 기슭에 있는 절터이다. 처음 지어진 연대는 정확히 모르나 고려 현종 5년(1014)에 적연선사가 이곳에서 83세에 입적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홍각선사비의 조각 중에도 ‘영암사’라는 절이 등장하는데 이 비석이 886년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영암사의 창건 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 발굴을 통해 조사해 본 결과, 불상을 모셨던 금당·서금당·회랑터·기타 건물터가 확인되어 당시 절의 규모를 알 수 있고 금당은 3차례에 걸쳐 다시 지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절터에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든 쌍사자석등(보물)·삼층석탑·귀부·당시의 건물 받침돌·각종 기왓조각들이 남아있다. 금동여래입상은 8세기경의 것으로 절의 창건연대를 살피는 데 중요하다. 영암사의 건물터는 일반 사찰 건물과 다른 몇 가지 특징이 있다. 금당이 있는 상단 축대의 중앙 돌출부 좌우에 계단이 있는 점, 금당지 연석에 얼굴 모양이 조각되어 있고 후면을 제외한 3면에 동물상을 돋을새김 한 점, 서남쪽 건물터의 기단 좌우에 계단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이러한 특징과 더불어 절터 내에 흩어져 있는 석조물은 이색적인 느낌마저 든다. 조형의 특이함과 입지 조건, 서남쪽 건물의 구획 안에서 많은 재가 나오는 점으로 보아 신라 말에 성행한 밀교의 수법으로 세워진 절로 보인다.
2025-08-20
경기도 하남시 서하남로418번길 122 (춘궁동)
하남 동사지는 경기도 하남에 있는 사적이다. 고려 초기에 창건된 거대 규모의 절터로서, 금당 규모가 경주 황룡사 금당에 필적하는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1988년 발굴 작업 시 ‘[桐]동 [寺]사’ 라는 이름의 명문기와가 출토되어 절터임이 확인되었다. 이외에도 금동불상과 막새기와, 동으로 만든 불기류 및 도자기들이 출토되었다. 지름 5.1m의 8각 구조물과 건물터 등 유구의 상태, 건축양식 또한 독특하여 건축사 및 한국불교미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2026-04-07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선원사지로 222
강화 선원사지는 1976년 동국대학교 강화도학술조사단이 강화도 일원에 대한 지표조사에서 처음 발견하였다. 발견 당시 이곳에서 몇 개의 주춧돌을 비롯하여 보상화 무늬 전돌, 범자[梵字] 새긴 기와, 지붕에 얹었던 잡상들을 확인하고, 선원면[仙源面] 도감마을, 도감산에 있는 사지이므로 학술적·역사적으로 가치가 있어 지역의 연원을 기초하여 1977년에 사적 강화선원사지[江華仙源寺址]로 지정되었다.
2025-03-16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북면 박문수길 147
암행어사로 많은 일화를 남긴 박문수(1691∼1756)의 제사를 모신 곳이다. 박문수는 조선 후기 문신으로 경종 3년(1723) 문과에 급제하여 병조정랑에까지 올랐다가 1724년 노론이 집권할 때 파면되었다. 1727년 소론이 집권하면서 다시 기용되어 영남암행어사, 충청도암행어사 등을 거치며 부정한 관리들을 적발하였다. 그 뒤 호조참판을 거쳐 병조판서와 영의정에까지 벼슬이 올랐다. 이 건물은 1932년에 세웠으며 안채는 ㄱ자형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사랑채는 5칸 규모이며 一자형 평면을 갖춘 집이다. 재실 안에는 박문수 공이 사용하던 유품과 영정을 모시고 있고 박문수의 손자인 박영보가 쓴 수부정기와 박문수 일대기 등의 전적을 보관하고 있다. 1990년에는 원래 재실이 있었던 자리에 새로 재실을 지었다.
2025-03-17
충청북도 충주시 충열1길 6 임충민공충렬사
충민공 임경업(1594∼1646)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숙종 23년(1679)에 사당을 세웠고, 1706년에 장군에게 충민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영조 3년(1727)에는 사당 이름을 충렬사라 했다. 임경업 장군은 선조 27년(1594) 충주에서 태어나 인조 2년(1624) 이괄의 난 때 큰 공을 세웠다. 특히 병자호란 때 백마산성과 의주성을 다시 쌓아 국방을 강화하는 등 나라에 이바지한 바가 컸다. 명나라를 숭상하던 장군은 인조 30년(1642) 명나라가 청나라에게 위협을 받게 되자 명군과 협력해 청에 대항하고자 했으나 계획이 탄로 나 청군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청나라는 장군에게 여러 제의를 하면서 포섭하려 했으나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 후 1646년 국내의 ‘심기원의 모반 사건’에 억울하게 연관되어 감옥에서 혹독한 고문을 받고 피살되었다. 현재 충렬사에는 장군이 사용했던 유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사당 앞 왼쪽에는 장군 부인의 곧은 절개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부인완산이씨 정렬비’가 있다.
2025-11-07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대흥사 경내에 있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 휴정과 제자인 사명대사 유정, 뇌묵당 처영의 영정도 함께 모시고 있는 사우이다. 서산대사는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늙은 몸을 이끌고 전국의 승려들에게 격문을 돌려 나라를 지키는데 앞장서도록 하였다. 묘향산에서 1,500여 명, 그의 제자인 유정은 금강산에서 700여 명, 처영은 지리산에서 1,200여 명의 승병을 모집하여 순안, 평양 등지에서 왜구를 토벌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전쟁 이후 그는 승려로서 최고의 존칭과 정 2품 당상관 작위를 받았으며 묘향산에서 선조 37년(1604) 입적하였다. 대흥사와 인접해 있는 이 건물은 조선 정조 12년(1788)에 세웠으며 앞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 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초창 당시는 대웅전을 바라보는 곳에 있었는데, 헌종 2년(1836) 잠시 동남쪽의 주산으로 옮겼으나 철종 11년(1860) 현재 자리로 돌아왔다.
2025-03-17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길 126
아산 이충무공 유허는 아산 현충사 일대의 성역을 말한다. 현충사는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사당으로 1706년(숙종 32)에 처음 세워졌다. 1932년에는 이충무공 유적보존회가 결성되어 사당을 다시 지은 후, 1966년부터 1974년까지 정부 차원에서 성역화하고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이곳은 이순신 장군의 영정과 일생 기록화인 십경도가 보존되어 있으며, 난중일기(국보) 등과 장검(보물) 등 관련 유물과 임진왜란 당시 해전 사료를 수집하고, 이를 전시 및 교육하기 위한 역사 테마관인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이 함께 있다. 그 외에도 이순신 장군이 살던 옛집, 활터, 정려 등이 있다.
2026-03-18
서울 중구 소공동 97-3
환구단은 서울특별시 중구에 있는 대한제국시대의 제단으로 환단이라고도 한다. 유교적인 정치 이념을 수용해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제천단을 가리킨다. 환구단의 한자 표기는 고종실록에 기록된 것이고 한글 표기는 독립신문을 따라 정하였다. 고종 34년(1897년) 고종의 황제 즉위식과 제사를 지내기 위해 당시 황궁인 경운궁 맞은편 옛 남별궁터에 단을 만들어 조성했다. 원래는 거대한 규모를 가진 대한제국의 성역으로 제를 올리는 환구단과 천신의 위패를 모시는 황궁우, 그리고 주변 시설로 어재실, 향대청, 석고각 등을 갖췄었다. 그러나 일제가 1913년 호텔 신축을 이유로 철거하여 환구단 본단은 없어지고 상징물 격인 황궁우와 석고각 안에 있던 돌북만 남아 있다.
2025-11-12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 위만사당길 20-4
충절사와 상의재는 엄흥도의 충성심을 기리는 건물들이다. 엄흥도는 조선의 지조 있는 선비로 조선 6대 임금이었던 단종이 영월에서 시해당하자 시신을 거두어 장사 지냈다고 한다. 17세기 중반 이후 충신과 사육신에게 표창을 하는 정책이 생기게 되고, 엄흥도의 충성심을 높이 평가해 그의 후손을 관리로 등용하였고 엄흥도를 육신사에 모시게 되었다. 영조 26년(1750)에는 엄흥도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별도로 묘를 마련했는데 영조 31년(1755)에 상절사라는 사당을 세웠다. 순조 33년(1833) 상절사는 의산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 이후 1900년에 의산서원 강당에 해당하는 상의재를 세웠고 위패를 별도로 모셔 충절사라 하였다. (출처 : 국가유산청)
2025-03-16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동학사1로 462
숙모전은 계룡산 동학사 안에 있는 사당으로 비운의 왕인 조선 단종과 정순왕후의 위패가 모셔진 곳이다. 숙모전 앞에는 계유정난에 원통하게 죽은 황보인, 김종서, 정분 등의 세 재상과 안평대군, 금성대군 등의 종실, 단종의 복귀를 꾀하다 발각돼 참형당한 사육신, 생육신, 그 외 죽음을 당한 많은 원혼과 의인들의 충의절신위패가 모셔져 있다. 1455년 세조가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자 매월당 김시습이 머리를 깎고 동학사를 찾아 통곡했다고 전해진다. 다음 해 사육신이 참수당하자 시신을 거두어 지금의 서울 노량진 언덕에 매장하고 동학사로 다시 돌아와 단을 만들고 제사 지냈다. 현재 숙모전 내부에는 단종과 단종의 비 정순왕후, 동무에는 엄홍도를 비롯한 47위, 서무에는 사육신을 비롯한 47위를 모시고 있다. 사단법인 숙모회에서 봄과 겨울에 지내는 전통제향인 숙모전 대제로도 유명하다. 숙모전 대제는 조선 초기 고려의 충신 야은 길재가 동학사 서쪽에서 고려의 왕과 스승을 위해 지낸 초혼제로부터 시작됐다. 1399년(정종 1) 금헌 유 선생이 단을 만들어 고려의 왕과 포은, 목은을 초혼했으며 1400년에는 이정간이 수령으로 부임해 각을 세우고 야은 길재를 추가로 배향하여 삼은각이라 이름 지었다. 1456년(세조 2) 김시습이 삼은각 옆에 사육신 초혼단을 만들었는데, 1457년 세조가 동학사에 들렀다가 초혼단을 보고 감동해 팔 폭 비단에 억울하게 죽은 100여 명의 신하와 고려의 왕들을 제나 지내게 했다. 그리고 1년 뒤 다시 단종과 안평대군, 그 밖에 100여 명의 신하의 명단을 추가로 내려보내 모두 200여 명을 제사하게 했다. 후대에 오면서 제향이 중단되었다가 1963년 숙모회가 발족하며 봉안 대상과 의례 절차를 정비하고 매년 김시습이 최초로 제사한 음력 3월 15일 춘향제를, 단종이 사사된 음력 10월 24일 동향제를 거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