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보문사(원주)

보문사(원주)

2025-07-18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고문골길 270

보문사는 신라 경순왕때 무착(無着)이 창건하였으며, 이후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절의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다. 보문암창기(普門庵創記)에 따르면 1592년 임진왜란 때 불에 탔다가 중창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 중창하면서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신행결사도량으로 삼아 절 이름을 보문련사(普門蓮社)라고 불렀으며, 국형사(아랫고문절)의 위쪽이 되므로 ‘웃고문절’이라고도 한다. 1930년에 강상준이 중건하고, 1971년 주지인 이백련화(李白蓮華)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주요 건물로는 대웅전과 약사전·산신각·용왕각·요사채 등이 있다.

황무진충효사

황무진충효사

2026-03-12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

충효사는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 반계리에 위치한 사당으로, 부사과 충효공 황무진(1568~1652)을 봉안한 곳이다. 원래는 원주시 명륜동 향교 자리에 있었으나 건물의 노후로 인해 후손들이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황무진의 본관은 창원이며, 자는 자룡, 호는 벽룡담이다. 그는 회산부원군 황석기의 9세손으로 원주시 봉산1동 무진고개 인근에서 태어났으며, 가세가 어려워 문막읍 반계리 골무내기 마을로 이주해 평생을 살았다. 일찍 부친을 여의고 모친을 지극한 효성으로 모셔 '하늘이 낸 효자'라는 칭송을 받았다. 1627년 정묘호란 당시 사한 김창일, 관설 허후 등과 함께 의병활동을 하여 절충장군 용양위 부사과에 봉해졌다. 1634년(인조 12) 그의 효행을 기려 나라에서 명하여 집 앞에 정문을 세웠다. 사당은 황무진 사후 69년이 지난 1721년(경종 1)에 건립되었다. 충효사 내부에는 황무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매년 3월 23일 생일에 헌다례가 열린다. 충효사는 원주굽이길 6코스 12.5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해당 구간은 황무진의 이름을 따 ‘황효자길’이라 불린다.

원주 운곡원천석묘역

원주 운곡원천석묘역

2025-10-28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행구동

운곡 원천석(1330~) 선생의 묘이다. 원천석 선생은 어릴 때부터 학문에 밝아 목은 이색 등과 함께 성리학의 보급에 큰 역할을 했으며 조선 태종의 어릴적 스승이기도 하였다. 고려말에 정치가 문란해지자 이를 개탄하면서 치악산에 들어가 숨어 버렸다. 조선왕조가 들어서 선생에게 벼슬이 주어지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끝까지 지켜 나아가지 않았다. 선생의 묘역 내에는 봉분 앞에 묘비와 제사음식을 차려 놓을 수 있는 상석(床石)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신도비가 있는 소박한 형태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원주 조엄묘역

원주 조엄묘역

2025-10-28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지정면 간현리

문익공 조엄(1719~1777)의 묘역이다. 조엄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문장에 능하고 민생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지평, 수찬 등 여러 벼슬을 지내면서 조창을 설치하고 조세부담을 줄이는 등 많은 공을 세웠다. 특히 영조 39년(1763) 통신사로 일본에 가서 고구마의 종자를 가져와 우리나라 최초로 고구마 재배에 성공하여 가난한 백성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었다. 봉분 앞에는 제사음식을 차려 놓을 수 있는 상석(床石), 망주석 2기가 있고 상석에서 조금 왼쪽으로 묘비가 세워져 있으며, 이곳에서 100m 떨어진 묘소 진입로 쪽에 신도비가 있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신도비는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양식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입석사(원주)

입석사(원주)

2026-03-12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황골로 707

입석사는 원주 치악산에 있는 전통사찰로 상원사와 비로봉에 오르는 중간 지점인 치악산 입석대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신라의 고승 의상(義湘)이 토굴을 짓고 수도하였다고 전해진다. 경내의 연화대좌와 광배와절 앞에 있는 석탑의 연꽃받침 탑신은 고려 전기의 조각 양식과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절의 서북 방향인 입석대 옆에는 마애불좌상이 있는데 원우오년경오삼월일[元祐五年庚午三月日]이라는 명문이 있다. 이 기록으로 보아 고려 전기인 1090년(선종 7) 무렵에 불사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대에 이르러 1957년 요사가 건립되었고 1992년에는 대웅전이 건립되었다.

정수사(강진)

정수사(강진)

2026-04-10

전라남도 강진군 대구면 정수사길 459

정수사는 천개산에 있는 절로, 기록에 의하면 통일신라말 애장왕 6년(805년)에 도선국사가 세웠다고 한다. 세울 당시에는 계곡을 중심으로 양쪽에 묘덕사와 쌍계사 두 절이 있었는데, 후에 쌍계사는 수정사라 이름을 바꾸었다. 한동안 폐허가 되었던 것을 중종 19년(1524년) 다시 지으면서 정수사라 이름을 바꾸었다. 정수사에는 전라남도 유형문화유산인 정수사대웅전과 보물로 지정된 강진 정수사 석가여래삼불좌상을 볼 수 있다. 향좌측의 소조불좌상은 묵서에 따르면,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은 조각승 태보와 사담에 의해 1561년에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다시 1648년에 화원 승일 등 7명의 조각승에 의해 중앙과 향우측의 불상이 조성될 때 다시 중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석가여래삼불좌상 중 1존이 나머지 2존과 조성 시기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이러한 조성 양상마저 당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등 시대적인 상황을 반영하는 불상 조성 방식의 일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창의문(자하문)

창의문(자하문)

2025-03-13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의문로 118 (부암동)

서울성곽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四大門), 그 사이에 4소문(四小門)을 두었는데, 창의문은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의 북소문(北小門)으로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는 뜻이 있다. 그러나 창의문은 북소문으로 불린 적은 없었고, 이곳 계곡의 이름을 빌어 ‘자하문(紫霞門)’이라는 별칭으로 불려 왔다. 1413년(태종 13)에는 풍수학자 최양선이 “창의문과 숙정문은 경복궁의 양팔과 같으므로 길이 내어 지맥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건의한 것을 받아들여 두 문을 닫고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422년(세종 4)에는 군인들의 출입통로로 이용할 수 있게 하였고, 1617년(광해군 9)에는 궁궐 보수 작업 때 석재의 운반을 위해 열어주도록 하였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당시에도 길 자체는 있었던 것 같다. 창의문이 서울성곽의 문루로서 제구실을 하게 되는 것은 1741년(영조 17)에 이곳을 수축할 때였다. 당시 훈련대장 구성임이 “창의문은 인조반정(1623년) 때 의군이 진입한 곳이니 성문을 개수하면서 문루를 건축함이 좋을 것”이라고 건의한 것이 받아들여져 비로소 세워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1956년 창의문 보수 공사 때 천장 부재에서 묵서로 된 기록으로 확인되었고, 지금 창의문에는 인조반정 때 공신들의 이름을 새겨 놓은 현판이 걸려 있다. 창의문의 형태는 전형적인 성곽 문루의 모습으로, 서울의 4소문 중 유일하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수백 년간 사람의 발길에 길들여진 박석이 윤기를 발하고 있다. 특히 빗물이 잘 흘러내리도록 문루 바깥쪽으로 설치된 한 쌍의 누혈(漏穴) 장식은 연잎 모양으로 맵시 있게 조각되어 이 성문의 건축 단장에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 그리고 성문의 무지개 모양 월단 맨 위에는 봉황 한 쌍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는데, 속설에 의하면 닭 모양을 그린 것으로 창의문 밖 지형이 지네처럼 생겼으므로 지네의 천적인 닭을 그려 넣은 것이라고 한다.

영덕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

영덕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

2026-06-01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길 17-4

영덕 무안박씨 무의공파 종택은 임진왜란 때 경주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운 박의장의 넷째 아들 박선(1596~1669)이 맏형 박유를 위하여 1600년 중반에 집을 완성했다. 야산을 뒤로하고 앞들을 내려다보며 남향으로 놓여 있으며, 건물 전체가 대문채, 정침, 내삼문,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은 정면 10칸, 측면 7칸의 ㅁ자형이고, 사랑채는 팔작지붕, 안채는 맞배지붕이다. 여러 차례의 보수를 거치면서 부분적으로 구조 변형이 이루어지기는 했으나, 가운데 설주의 유구와 사랑대청의 대들보, 상부에 파련대공 등 품격을 지니고 있는 큰 규모의 종택으로 무의공의 위세와 조선 중기의 건축기법을 발견할 수 있다. 불천위 사당 앞에는 고택과 함께 세월을 보낸 370년 된 회화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 위 국가유산은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인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음

영덕대소산봉수대

영덕대소산봉수대

2026-05-12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하며,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내던 시설이다. 조선시대 세종대에 국경이 명확해지면서 봉수 시설을 체계적으로 조성하기 위하여 약 12㎞마다 산봉우리에 봉수대를 놓았다. 그중 영덕대소산봉수대는 보존 상태가 양호하여 원형 그대로 남아 있으므로 조선시대의 통신수단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대소산 봉수대에 서면 멀리 영덕 축산항과 영해면을 조망할 수 있으며 일출 명소이기도 하다.

세렴폭포

2026-04-09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학곡리

세렴폭포는 강원도 원주시 치악산 구룡사 계곡에 있는 폭포로 구룡폭포와 함께 치악산을 대표하는 폭포로 알려져 있다. 높이 6.7m의 폭포로 2단으로 굽이쳐 내려오는 모습이 장쾌함을 선사한다. 세렴폭포까지 가는 길은 완만한 경사의 산책코스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이용 가능한 치악산 대표 탐방코스이다. 출발지인 구룡탐방지원센터에서 구룡사~용소~대곡안전센터~세렴폭포를 왕복하는 탐방코스로 총 3km로 1시간 30분 소요된다. 특히나 구룡소까지의 황장목숲길은 장애인, 노약자, 임산부 등의 사회적 약자를 위한 무장애 탐방로로 조성되어 있다. 세렴폭포까지 가는 길목에 황장목 군락지는 울창하고 시원한 산책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어 산림욕을 즐기며 등산을 하기에 좋다. 세렴폭포까지 가는 등산 코스는 하절기와 동절기에 따라 입산 시간이 정해져 있으므로 방문하기 전에 확인을 해보는 것이 좋다. 탐방로를 끼고 이어지는 계곡도 여름철에만 한시적으로 개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