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영동 삼괴당

영동 삼괴당

2025-03-17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임산3길 28-13

조선시대 효자로 이름이 높았던 남지언 선생이 제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건물로 그의 호를 따서 삼괴당이라고 하였다. 그의 아버지인 남인과 아들인 남경도 역시 효자로 이들을 칭찬하기 위해 나라에서 삼효각을 세워 주었다고 하나 지금은 소실되어 남아 있지 않다. 현재의 삼괴당 건물은 순조 25년(1802) 다시 세운 것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의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영동 사로당

영동 사로당

2025-03-16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민주지산로 3759-13

영동 사로당은 현감 박수근(朴守謹)이 그의 아우들과 학문을 논하던 곳으로, 사로당이라 하였다. 박수근의 아우들은 수인(守認), 수해(守諧), 수원(守源)이다. 이곳은 조선 숙종 36년(1710)에 세워졌고, 영조 43년(1767)에 중수하였으며, 이후 여러 차례 중수하여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었다. 건물의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붕은 옆모습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면에서 땅에서 1.2m 높이 위에 마루가 설치된 전형적인 별당 건축이다. 보기 드문 높은 마루를 하고 사면에는 간결한 난간을 돌리고 있는 특징이 보이고 있다. 앞면 3칸 중 왼쪽 끝 1칸과 오른쪽 모퉁이를 온돌방으로 꾸미고 나머지를 대청마루로 하였다. 2단의 받침대 위에 주춧돌을 놓고 둥근기둥을 세웠다. 사방에 간결한 난간이 둘러져 있고 온돌방의 창호가 알맞게 짜여 있다.

영동 영모재

영동 영모재

2025-03-16

충청북도 영동군 상촌면 관기길 16-3

영동 영모재는 고성 남 씨의 재실 건물이다. 재실이란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으로, 순조 28년(1828)에 남주한이 선대의 묘소 아래 처음 지은 후 1885년에 고쳐지었으며, 1929년에 중수하였다. 건물의 구조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겹처마 팔작지붕집이다. 중앙의 2칸은 넓은 대청으로 하고, 양끝에 온돌방을 만들었으며, 돌담과 높이 솟은 대문, 현판, 중수기, 상량문 등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특히 이곳은 온돌방에 불을 지피면 연기가 내부로 빨려 들어가게 하여 열효율을 극대화하도록 굴뚝을 설치하지 않은 특이한 건물이다. 영모재는 전통온돌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영동 추풍령 전적 및 장지현 순절비

영동 추풍령 전적 및 장지현 순절비

2025-03-17

충청북도 영동군 추풍령면 사부리

임진왜란(1592) 때 의병장이었던 삼괴 장지현(1536∼1593) 장군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순절비 및 전적지이다. 장지현은 선조 23년(1590) 신립 장군의 부장이 되고, 이듬해 사헌부 감찰이 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 2,000명을 모아 관군과 합세하여 추풍령에서 1만여 명의 왜적과 싸워 김천 방면으로 물리쳤다. 그러나 곧 금산 방면에서 공격해 온 왜군의 협공을 받아 사촌동생 호현과 함께 전사하였다. 장군의 높은 뜻과 애국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이곳에 1978년 사당을 건립했다.

황간향교

황간향교

2025-03-16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구교리길 88

황간향교는 태조 3년(1394)에 마을 뒷산에 세웠으나 현종 7년(1666)에 흙으로 쌓은 성안으로 옮겼으며, 영조 28년(1752)과 고종 9년(1872)에 수리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과 고직사 등의 부속건물이 있는데 앞쪽은 배움의 공간, 뒤쪽은 제사공간을 형성하는 전학후묘의 배치형태를 따르고 있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공부하던 강당으로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해 여러 성현들을 모시는 제사공간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집이다. 또한 주춧돌에 연꽃무늬가 새겨진 것으로 보아 사원건축양식과 정자, 주택양식이 절충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는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에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에 걸쳐 제사만 지내고 있다. 이곳에 보관되어 있는 책들은 지방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반야사(영동)

반야사(영동)

2026-05-14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백화산로 652

백화산에서 흘러내리는 큰 물줄기가 태극문양으로 산허리를 감아 돌면서 연꽃 모양의 지형을 이루는데 연꽃 중심에 반야사가 위치해 있다. 호랑이를 품고 있는 절로도 알려져 있으며 신라 성덕왕 27년(728년) 원효대사의 10대 제자 중 하나인 상원화상이 창건한 천년의 사찰이다. 뒤에 고려 충숙왕 12년(1325년) 학조대사가 중수하였고 1464년(세조 10) 세조의 허락을 얻어 크게 중창하였다. 극락전은 언제 중건되었는지 확실치 않으나 근래 수리하고 단청해서 상태가 단정하고 아담하다. 동북쪽으로는 백화산이 솟아 있고 절 앞을 흘러내리는 석천계곡에는 폭이 50m나 되는 큰 냇물에 반석이 깔려 있고 녹수청산의 절경을 이루고 있는 망경대가 있다. 세조대왕이 속리산 법주사 복천암 법회 후에 이곳 반야사를 들렀을 때 일이다. 세조가 경내를 거닐고 있는데 어디선가 문수동자가 나타나 세조에게 가까운 곳에 좋은 약수 샘이 있다고 안내하여 목욕할 것을 권하였다 한다. 문수동자의 안내를 받아 망경대에서 휴식을 취한 세조는 문수동자를 만난 것을 뜻깊게 여겨 글을 남겼는데, 그 글은 현재도 보관 중이라고 한다. 이 절의 이름을 반야사라고 한 것도 이 절 주위에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신앙 때문이며, 문수의 반야를 상징하여 절 이름을 붙인 것이다. 영동 반야사에는 백화산 기슭의 반야사 호랑이와 더불어 수령 500년이 넘는 백일홍나무가 유명하며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반야사 삼층석탑이 있다. 사찰 뒤편 산허리에 쌓인 파쇄석 모양이 꼬리를 세운 호랑이 모습을 닮은 반야사 호랑이 형상은 높이 80m 길이 200m이며 백화산 기슭에서 수천 년간 흘러내린 돌무더기가 주변 수목과 이루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한편, 보물로 지정된 영동 반야사 삼층석탑은 반야사 안에 건립되어 있는데 원래 반야사 북쪽의 석천계곡 탑벌에 있던 것을 1950년에 지금의 자리로 이전한 것이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계와 신라계 석탑 양식을 절충한 것이 특징이다. 현재 반야사에서는 다양한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지친 사람들을 위한 위로의 체험형 템플스테이와 나 자신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지혜를 찾도록 돕는 휴식형 프라즈나(지혜) 템플스테이를 진행하고 있다.

영동 가학루

영동 가학루

2025-11-24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구교리길 94

영동 가학루는 황간향교 앞에 있는 누각이다. 이 누각은 자연경관을 즐기던 곳으로, 조선 태조 2년(1393)에 황간현감 하첨이 지었다. 임진왜란(1592) 때 불탔으나 새로 짓고 여러 차례 보수했다. 가학루라는 이름은 경상도관찰사 남공이 마치 학이 바람을 타고 떠다니는 듯하다 해서 지은 것이다. 앞면 4칸, 옆면 4칸 규모의 1층 건물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기둥과 난간만 있어 사방이 탁 트인 형태로 시원하다.

난계 박연선생 생가

난계 박연선생 생가

2025-11-24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하고당1길 14-17

국악의 거리에서 외길을 따라 고당리 방면으로 가다 보면 난계 박연 선생이 태어난 가옥이 있다. 난계 박연은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손꼽힌다. 조선 초기의 문신이자 음악가로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타계했다. 박연은 악보와 악기를 정리한 악서를 편찬하고 대고와 석경 등 아악기를 제작했다. 또, 궁중악을 완성하고 악기를 조율하는 편경을 만드는 등 국악을 발전시키고 완성한 국악의 아버지다. 세조 2년(1456년)에 삼남 계우가 단종 복위 사건에 연루되어 화를 당할 뻔하였으나, 세 임금에 봉직한 공으로 화를 면하고 관직에서 물러나 이곳으로 돌아와 살다가 세조 4년(1458년) 3월 23일 81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박연이 낙향할 때 강을 건너며 배 위에서 피리를 불었는데 그 피리 소리에 가던 배도 멈추고 쓸쓸한 느낌에 눈물을 흘리지 않은 이가 없었다는 일화가 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걸출한 인물의 비애를 단적으로 나타내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음악과 함께한 국악의 거성 난계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00년 5월 안채와 사랑채를 복원하였다. 생가의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측면 1칸은 퇴칸 구조이며 정면 2칸만큼 우물마루를 설치하고 한쪽에는 부엌과 곡식창고를 부설한 고미 반자에 우진각의 기와지붕으로 되어있다. 우진각지붕은 용마루와 추녀마루만 있고 내림마루는 없으며 전·후면은 사다리꼴이며 양쪽 측면은 삼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용마루가 짧고 내림마루가 길게 늘어진 모습이 특이하다. 부속 채는 1동으로 외양간, 광과 방 1칸인 초가지붕으로 되어있다.

수성당

수성당

2025-10-30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변산면 적벽강길 54

수성당은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에 있는 제당이다. 이 지방의 해안마을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마을의 공동 신앙소로, 건평 4평의 단칸 기와집이다. 이곳은 칠산바다를 관장하는 개양할미와 그녀의 딸 8자매를 함께 모시며 해마다 음력 1월 14일에 당산제를 지내고 있다. 개양할미는 키가 매우 커서 나막신을 신고 서해를 걸어 다니며 수심이 깊은 곳은 메우고, 풍랑을 다스려 어부들이나 이곳을 지나는 선박들을 보호하는 바다의 신이다. 1992년 발굴조사에서 3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의 백제, 가야, 통일신라부터 조선을 비롯해 고대 중국과 일본에서 만들어진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유물을 통해 이곳에서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 사람들도 제사에 참여하고 제사가 끝나면 제기를 포함한 각종 물품을 땅에 묻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수성당 주변에는 적벽강, 채석강이 있으며 서해랑길이자 부안 마실길을 이용해 가볍게 산책하듯 둘러볼 수 있다.

백화산(영동)

2026-03-04

충청북도 영동군 황간면 우매리

해발 933m의 백화산은 충북 영동과 경북 상주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산이다. 남북으로 뻗은 날카로운 주능선 양옆으로 깎아지른 절벽이 이어지고, 사이사이로 아름다운 천이 흘러 계절이 좋을 때는 한 폭의 그림 같은 경관을 자랑한다. 반야교를 지나면 주행봉 들머리가 시작된다. 이곳에서 오르고 있으나, 낙타 등과 같은 능선을 하고 있는 경북 상주시에서 오르는 사람도 있다. 바위가 많고 반야사 쪽으로 오르는 산 중턱에는 저승골이라 불리는 협곡도 있어 등산객의 호기심과 모험심을 자극한다. 산줄기가 장쾌하여 백화산맥이라고도 부른다. 동서 쪽보다 취약한 토산지역인 북쪽은 아직까지 돌로 쌓아 올린 금돌성이 남아 있어 역사의 흔적 또한 엿볼 수 있다. 백옥정, 옥동서원, 반야사 등 문화유적 답사를 즐길 수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