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11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서촌1길 34-3
우리나라 사찰은 대체로 산속에 위치해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남원사는 보기 드문 평지 사찰이다. 벼 이삭이 익어가는 8월이 어느 날. 장마 뒤끝에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시샘하듯 들녘을 가득 메운 벼들은 빗물에 씻긴 채 물기를 머금고 초록빛이 더욱 짙어져 간다. 시원하게 뚫린 서해안고속도로를 달려 울창한 나무와 숲을 가로질러 난 고불고불한 산길을 지나 노인분들께 물어물어 남원사를 찾아간다. 그러다 더 이상 물어볼 사람이 없어 두리번거릴 때 파란 들판 한가운데 그림같이 서 있는 사찰이 나타난다. 바로 남원사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남원사는 논두렁 사이에 파랗게 익어가는 벼 이삭 사이로 서 있는 아담한 사찰이다. 그곳에서는 장맛비를 맞아 환하게 피어 올라온 분홍빛 연꽃이 우선 맞이해 준다. 일주문을 거쳐 경내로 들어서면 유난히 아름다운 화단이 또 지친 나그네를 맞아준다. 낮은 꽃밭에는 정겨운 우리 꽃들이 수줍게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다. 아마도 이곳에 도착하게 되면 계절 따라 철철이 피는 또 다른 꽃을 만나게 되고, 그 꽃을 보면 부처님의 진리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러다가 미륵전을 들어가면 이곳 소박한 시골의 사찰을 닮은 순박한 모습의 부처님을 만나게 된다.
2025-10-31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정신로 183-64
정읍 신태인간 지방도로변에서 더 들어간 곳에 있는 낮은 산인 남산에 남산사가 있다. 남산에는 예부터 반야선터라 하여 알려져 있는 선의 도량으로 병자호란 이전에는 승려가 100여 명이나 기거한 큰절이었다고 한다. 이 절은 옛날에는 한적사(閑寂寺)라 했다. 지금도 절터였던 주추돌과 기와장이 무수히 나오고 있다. 오랫동안 폐허가 된 사적지로 남아있던 사지에 1910년경 이장녀 보살이 작은 암자를 짓고 남산사(南山寺)라 이름하여 창건한 후 신도우, 정진성, 김금담 등 역대 주지가 있었고 1991년에는 현주지인 학승, 도선스님이 정진하고 있다.
2025-04-30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남고산성1길 53-88
남고사는 고덕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남고산성을 따라 전주의 남쪽을 지키고 있는 사찰로, 절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면 전주 시가지가 한눈에 보여 아름다운 전망을 만나볼 수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 관음전, 삼성각, 사천왕문 등이 있다. 남고사 안쪽에는 삼성각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삼성각은 한국 고유의 토속신앙과 불교가 합쳐져 생긴 형태로, 산신, 칠성, 독성을 봉안하는 불교의 건축물이다. 또한,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내부에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하고,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대웅전 앞 건물 자리는 남고사지의 옛 절터로, 1985년 8월,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단풍 가득한 가을의 남고사는 더욱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하여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2025-10-23
경기도 김포시 승가로 125 (풍무동)
금정사는 신라 진흥왕(540~576) 때 창건되었으며, 창건 당시에는 ‘고상사’라고만 전하여 왔으나 달리 전해오는 기록은 없다. 조선 인조 5년(1627)에 왕은 자신의 아버지 원종으로 추증하고 어머니 역시 인헌왕후로 추증하여 그들의 묘를 양주에서 김포로 이장하고 장릉이라고 하였다. 인근에 있던 고상사를 현재의 위치로 옮겨 장릉을 보호하는 사찰로 재건하면서 ‘봉릉사’라 칭하게 되었다. 1930년에 당시 주지 영송화상이 사찰을 중수하였고, 1938년 주시 성화대사가 다시 한번 크게 중수하였다. 6·25전쟁 이후 사찰을 정녕스님과 고근스님이 대웅전과 범종각을 새로 지었다. 또한 능을 지킨다는 봉릉사에서 절의 뒷산인 금정산과 법당 앞에서 좋은 물맛이 솟아나므로 ‘하늘우물’이라는 의미의 ‘금정사’로 개명하여 김포지역 포교와 수행도량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 금정사는 경기도 전통사찰 제63호로 지정되어 있다.
2025-04-07
부산광역시 연제구 성지곡로 111
금용암은 쇠미산의 작은 암자로, 입구의 송림길과 함께 불국 수미산 산속에 홀로 묻힌 듯 자연과 동화되어 있는 사찰이다. 금용(金蓉)이란 금색 연꽃이란 뜻으로, 불교사상에서 연꽃과 금강석 또는 금과 함께 대표적인 불교사상의 상징을 따서 사찰명을 지었다. 조선 후기 철종 때 이인덕행이라는 보살이 1919년 10월 해인사에서 출가하여 대봉이라는 법명을 받아 쇠미산 기슭에 기와집으로 인법당 3칸을 짓고 금용암이라 불렀다. 금용암이라는 이름은 쇠미산의 별칭인 금용산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금당인 염화전과 삼성각, 요사인 원통료·향적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1992년 지은 염화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형태이며, 안에는 석가여래 좌상을 중심으로 약사여래 좌상과 관음보살 좌상이 배치되어 있고, 뒤편에는 1993년 조성한 후불탱을 비롯하여 지장탱·신중탱이 있다. 삼성각 안에는 삼신할머니 탱화가 있는데, 불상이 아니라 여인 세 명을 그린 것이다. 이곳 삼신할머니는 오래전부터 득남을 기원하는 이들에게 영험이 있다고 널리 알려져 있다. 절 담벽 아래 비탈길에 대봉의 상반신이 선각된 사적비가 있다.
2025-11-27
부산광역시 동구 망양로 533-1
금수사는 구봉산 아래 자리한 아담한 사찰이다. 금수사 계단 앞으로는 산복도로가 잘 나있으며, 버스정류장이 바로 앞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좋은 도심 속 사찰로 알려져 있다. 금수사는 한국불교원효종의 총본산으로도 유명하다. 2003년 입적한 원효종 종정 법홍스님이 주석한 이곳에는 원효대사의 유지와 종풍을 받들고자 하는 수많은 사부대중의 귀의처로서 자리매김하였으니 산중이 아닌 일반 백성들 속에 중생들을 깨우쳐 주고자 했던 원효대사의 화쟁 무애사상이 빛나는 사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불교가 낳은 불멸의 성사 원효대사의 유지를 받들고, 호국일념으로 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사명대사의 족적이 남아 있는 곳, 구계산 금수사는 이러한 역사적 터전 위에 지금 불법홍포의 기치를 높이 들고 있다. 또한 금수사 경내에 호국영각을 짓고 기미년 독립선언의 민족대표 33인과 안중근, 김좌진, 안창호, 윤봉길 등 애국독립지사 22인의 위패를 모셔 매년 추모법회를 봉행하고 있으니 호국도량으로서의 그 위상이 분명하다 할 것이다.
2025-09-24
서울특별시 종로구 비봉길 137
금선사는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솔 내음이 가득한 아름다운 사찰이다. 청와대와 경복궁이 위치한 인왕산이 바로 보이는 종로구 구기동에 소재하고 있다. 이북5도청을 지나서 북한산국립공원 비봉코스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첫 번째 관문인 삼각산 금선사의 일주문을 만나게 된다. 도량의 전각은, 법회를 보는 반야전을 지나면 200년이 넘은 소나무가 중앙에 있으며, 소나무를 지나서 108계단을 오르면 금선사의 주불이 모셔진 대적광전이 사찰의 가장 중심부이면서 가장 높은 곳에 그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우측으로는 삼성각이 있고, 북한산의 일급수가 모였다가 흘러내리는 홍예교가 자리하고 있다.
2025-10-29
전라남도 강진군 군동면 까치내로 261-21
금곡사는 신라 말 밀봉대사가 창건하여 성문사라 칭하다가 이 주위에 금광이 있다 하여 후에 금곡사라 개칭하였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훈련 장소로 쓰였으나 왜구의 침략으로 불에 탔다. 이후 폐사와 중창을 반복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찰 옆 개울가에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이 있는 것을 보면 이곳이 금광이었던 것이 사실인 것 같다. 금곡사에는 백제 계통의 고려 양식인 보물 제829호 삼층석탑이 있는데 1985년 복원작업을 하던 중 석가세존 진신사리 32과가 발견되어 세상의 이목을 받기도 했다. 이 탑은 석탑으로서는 5m가 넘는 거탑으로 그 형식 면에서는 전형적인 고려 양식을 고수하면서도 기단부 구성이나 옥개석의 우동마루 등 일부에서는 약간의 백제 계 석탑의 분위기가 가미되어 있다. 조성 연대는 고려 초반기로 추정된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물의 양이 일정한 약수터에서 풀로 만든 대롱으로 물을 빨아먹으면 신경통이 사라진다는 전설이 있기도 하다. 아마도 임진왜란 때 왜구를 격파한 이 고장 출신 김억추장군의 전설에서 비롯된 것일 것이다. 매년 봄이 되면 금곡사로 가는 군동면 호계리에서 작천면 군자리에 이르는 19㎞ 구간은 연분홍빛 벚꽃터널이 펼쳐져 장관을 이룬다. 금곡사 벚꽃 길은 1992년부터 2년에 걸쳐 강진군 공무원들이 휴일을 반납해가며 직접 만든 곳이다.
2026-03-13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금화길 107
금곡사는 신라 선덕여왕 7년(638)에 김란[金蘭]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현재 금곡사 사역은 아니다. 다만 주변에 금곡사지로 전하는 절터가 있으므로 이 일대가 일찍이 사찰이 자리하기에 유익한 풍수지리적 요건을 가졌다고 여겨진다. 현재의 극락전은 1959년에 건립된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주심포 익공계 건물이다. 극락전 전방 좌우측에는 요사채가 각각 1동씩 있으며, 좌측 요사채 뒤편과 극락전의 우측 후면에도 요사채가 각각 1동씩 자리 잡고 있다. 극락전의 좌측 후면의 삼성각은 1990년 건립된 맞배지붕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주심포 익공계 건물로 내부에는 건립 당시 봉안한 칠성탱화, 산신탱화, 독성탱화가 있다. 외벽에는 나반존자와 산신설화와 관련된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극락전 전면에는 세존사리탑이 있으며, 좌측으로는 세존사리탑건립비와 금곡사도로공덕비가 있다. 사찰의 입구에는 1986년에 세운 금곡사전기불사공덕비가 있다. 또한 이곳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 제531호 칠곡 금곡사 석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2025-03-06
부산광역시 동래구 우장춘로 157-59
1924년 금우(金牛) 스님에 의해 초창된 금정사는 고승대덕들이 왕래하며 머문 참선도량으로 푸른 선지를 휘날렸을 뿐 아니라 재가불자들의 참선수행을 위한 선원을 개설하는 등 정통선원으로 거듭나 있는 곳이다. 구전에 이곳이 절골이었다는 것으로 미루어 그 오랜 옛날에는 사찰이 있었던 자리였으리라 짐작하지만 전해오는 문헌이나 기록은 전무하다. 금정사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한암, 효봉, 경봉, 성철, 석주스님 등 근대 한국불교계의 흔치 않은 큰 거목들이 두루 주석하던 유서 깊은 사찰이다. 이렇게 당대의 큰스님들이 한 절에 모인 예는 무척 드문 일로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합천 해인사의 가야총림이 문을 닫고 스님들이 남하하게 되자 그해 겨울 효봉 방장스님은 금정선원, 그리고 그 제자 구산스님은 진주 응석사에 주석하시면서 이 일대의 선풍이 드날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다. 또한 금정사는 근대 최초의 방생지로 유명한 곳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전국에 걸쳐 많은 방생지가 있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유명무실해지자 2004년 입적한 칠보사 조실 석주스님이 이곳에 절 마당을 파고 방생지를 설립, 그물이나 낚시로 인해 또다시 화를 입는 물고기들을 위한 회향터를 이루었다 하니 방생의 참뜻을 되짚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