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5
충청북도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옥순봉[玉筍峯]은 제천시 수산면 괴곡리에 있다. 제천 10경 중 8경에 속하는 옥순봉은 지리적인 이유로 구담봉과 함께 단양팔경에 속하기도 한다. 경관이 뛰어나 소금강이라고도 한다. 희고 푸른 여러 개의 봉우리가 마치 대나무 싹과 같다고 하여 옥순봉이라고 이름 붙였다. 옥순봉의 산세는 청풍호와 어우러져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해발 283미터의 낮은 산이지만 정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찔함마저 느낀다. 확 트인 정상부는 너른 안부와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어 쉬어가기 좋다. 산행과 더불어 유람선을 타고 옥순봉과 구담봉의 멋들어진 석벽을 조망하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옥순봉은 높이가 낮은 데다 등산로도 정비가 잘 되어 있어 쉽게 오를 수 있으니 1시간 산행이면 충분하다.
2025-12-03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박곡길 590
대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소속 사찰로 신라 시대 6세기경에 청도 호거산 운문사를 중심으로 한 다섯 갑사 중 하나로 세워진 소작갑사(小鵲岬寺)가 전신이다. 대비사는 대비갑사(大悲岬寺)로도 불리는데, 고려 때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 이름을 대비사(大悲寺)라고 한 것은 불교의 대자대비(大慈大悲)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일설에는 당시 신라 왕비가 수양 차 이 절에 와서 오랫동안 지냈기 때문에 소작갑사를 대비갑사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대비사는 566년(신라 진흥왕 27)에 신승이 세우고 600년(진평왕 22)에 원광국사가 보수했다. 고려시대 이전에는 박곡리 마을에 있었으나 고려시대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왔다. 석가모니불상을 모시고 있는 대비사 대웅전은 1985년 1월 8일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16세기 경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구성이 짜임새가 있고,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의 구성도 꼼꼼하고 튼튼하며, 이를 이루는 세부 부재들의 형태를 보아 조선 초기의 건축 수법을 볼 수 있다.
2025-09-23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대복사길 61 (왕정동)
남원의 서쪽 교룡산 자락에 자리한 대복사는 신라시대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사찰이라 전한다. 도선국사는 남원의 지세가 재물을 가득 실은 배(船)의 형국이고, 교룡산이 배를 덮치는 험한 파도로 보았다. 이에 주산인 백공산의 약한 기운을 북돋우기 위해 선원사(禪院寺)를 창건하고, 객산인 교룡산의 강한 기운을 누르기 위해 대복사의 전신인 대곡암(大谷庵)을 창건한 것이다. 따라서 풍수적으로 볼 때 대복사는 파도를 막는 방파제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조선 후기에는 절이 매우 퇴락하였던 것을, 뱀으로 화할 업보를 면하게 된 ‘대복(大福)’이라는 한 중생이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사찰을 중수함으로써 그의 이름을 따서 대복사로 사찰명을 바꾸었다고 한다. 19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매우 번창하여, 남원지역 불교학생회와 청년회가 이곳 대복사를 중심으로 왕성한 활동을 한 까닭에 두고두고 사찰의 자랑으로 삼을 만하였다. 그러나 시대가 급변하면서 사찰도 퇴락하였다가, 20여 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 예전의 명성을 되찾고자 하는 운동이 시작되고 있다. 예전 대복사의 불교활동을 기억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학생회를 다시 구성하고, 일반인을 상대로 한 다도강좌주말수련프로그램 등 다양한 문화활동을 계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계획들이 실현되는 앞날에 대복사는 다시 한 번 남원 땅에 큰 법음을 울릴 수 있을 것이다.
2026-03-11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무안서로 163-158
경남 밀양시 일대는 사명대사의 전설이 구석구석 배어 있는 지역으로, 땀 흘리는 표충비, 사명대사 생가 유적지, 표충사 등이 있다. 영취산 대법사에는 사명대사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아 놓은 것이 자라나 잎을 피웠다는 아름드리 모과나무 한 그루가 대법사 경내 보광전 앞마당에 서 있으며, 나무 밑동이 어른 두 사람이 양팔을 벌려야 마주 잡을 정도로 큰 모과나무이다. 대법사는 신라시대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사명대사가 머물렀던 사찰로 열반 후 영정을 모신 곳이라 해서 조정에서 표충사라는 이름을 하사하여 표충비를 세우고 사당을 세웠다가 후에 영정이 단장면의 현 표충사로 모셔지는 바람에 대법사라 하였다고 한다. 초창기 학 세 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하여 백하암이라는 사명으로 불리던 이 사찰은 사명대사의 위상 덕에 오랫동안 국가의 관심 속에 중건을 거듭해 왔으나, 국난의 영향과 조선조의 억불숭유 정책 등으로 인해 폐사되었다가 1968년 조실 지혜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대대적인 중창 불사를 통해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2025-06-30
경기도 여주시 가남읍 안금3길 3-43
대법사는 대포산 기슭에 위치한 사찰로 명성황후의 출생 일화가 전해진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자 경기도 전통사찰로 등록되었다. 고즈넉한 사찰 곳곳에 심어진 꽃나무와 연지가 있어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대법사는 1971년에 창건됐으며 역사가 오래되지 않은 사찰이다. 하지만 원래 이곳은 창건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진성여왕 때부터 절이 있었다고 전한다. 창건 당시 0.9m의 미륵입상을 조성해 미륵당으로 불렸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명성황후와 그의 아버지 민치록의 인연으로 유명해지게 되는데, 숙종 때 사찰 인근에 인현왕후의 오빠인 민진후의 묘를 쓰면서부터이다. 이 묘소를 관리하며 살아가던 명성황후의 부친 민치록은 꿈에 미륵불을 현몽하고 땅을 파서 미륵불을 발견한 뒤 법당을 새로 지어 불상을 봉안하고 부인인 한산 이씨가 정성으로 불공을 드려 낳은 자식이 바로 명성황후이다. 그 후 명성황후가 고종의 비로 책봉되자 미륵불이 있던 자리에 대웅전을 건립하고 원당사로 개칭하고 민씨 일가의 성원으로 번창하였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으로 원당사는 사라지고 거의 폐사되어 흔적만 있던 것을 오늘날의 대법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절을 새로 창건한 대원스님 또한 꿈에 현몽한 대법사라는 서책을 보고 절의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경내에는 일주문, 대웅전, 지장전, 범종각, 국사당, 삼성각 등이 있다. 1971년 건축해 1989년 중수한 대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건물로 다포계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석가여래, 관음보살, 대세지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 앞에는 석등, 삼층석탑, 약사여래 좌상이 있으며 뒤쪽 언덕으로 올라가면 9m에 이르는 미륵석불과 7층 석탑이 있다. 대웅전 옆 작은 석실에 명성황후와 연이 있는 미륵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오랜 세월 얼마나 많은 사람의 소원을 귀 기울여 들어주었는지 닳고 닳은 외형이 그 세월을 짐작하게 한다. 절 입구의 국사당에 2개의 탱화가 걸려있는데 좌측에는 산신이 우측에는 보통 호랑이가 있지만 말을 탄 선비의 그림이 걸려있는데 민치록이라 한다.
2025-11-26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순창읍 장류로 197-22
순창 대모암은 백제 시대의 산성터인 순창 대모산성 북쪽에 자리한 사찰이다. 학성이 1933년 창건한 곳으로, 6·25 전쟁 때 거의 폐사되다시피 했다가, 1973년 법당을 중수하였으며 1985년 범종각을 지었다. 1993년에는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대모암은 대웅전, 범종각, 요사채 2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웅전은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건물이다. 내외부에는 단청이 그려져 있고 외부의 벽화에는 화훼도, 심우도가(본성을 찾는 것을 소를 찾는 것에 비유하여 그린 것) 그려져 있다. 불벽에는 부처가 있다. 대웅전에는 일제강점기 말에 대모암으로 옮겨져 왔던 ‘대모암 목조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다. 17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여래상이다. 이 불상은 양손을 무릎 위에 올린 자세를 하고 있으며,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이 밖에도 사각형의 얼굴과, 단순화된 옷 주름 등으로 보아 17세기 활동했던 승려 조각가 희장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유물로는 작법귀감, 보장록 등 학술 연구에 중요한 불교 관련 서적들이 있다.
2026-02-11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동산2길 119
예산 예당저수지(예당관광지) 바로 서쪽에 솟은 봉수산(483m) 중턱에는 대련사라는 사찰이 있다. 백제 말기인 656년(의자왕 16)에 지어졌다고 전해지는 이 사찰은 창건 직후인 660년 백제 멸망 이후 백제부흥운동의 중심지였던 근처 임존성 안에 있는 연못과 우물에 큰 연꽃이 피었다고 하여 대련사라 명명되었다. 공교롭게도 이 사찰을 지은 도침은 임존성에서 일어난 백제부흥운동을 이끌기도 하였다. 현재는 더 큰 연못이라 할 수 있는 예당저수지가 저 멀리 보이고, 입구에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700년을 훨씬 넘긴 고목이다. 백제 멸망 후엔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어 원통보전(극락전), 요사채, 심검당, 산신각 등의 건물이 있다. 그중 원통보전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으며, 삼층석탑 역시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주변에는 봉수산, 임존성, 예당저수지(예당관광지) 외에 봉수산자연휴양림, 봉수산수목원, 광시한우거리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2025-09-02
경상북도 구미시 옥성면 산촌옥관로 691-78
구미 대둔사는 건축기법와 양식으로 보아 조선 후기인 17세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석가여래좌상을 본존불로 모시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과 명부전, 응진전, 삼성각 그리고 3동의 요사가 있고, 조선 후기 사찰 건축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인 대웅전과 대웅전 내부에 있는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이 있다. 신라 눌지왕 30년(446) 아도화상이 세웠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고려시대에 몽고족의 침략으로 불타버린 것을 충렬왕 때 재건하였고, 그 후로 최근까지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은 조선 중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하며 석가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윗부분에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양식이다. 안쪽은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지붕 모형의 닫집을 섬세하게 만들어 놓았으며 세부 재료를 받치는 부분을 색다른 수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2026-03-19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 가산로1길 272-59
대둔사는 경북 칠곡군 가산에 있는 조계종 사찰이다. 신라 고찰이라고 구전될 뿐 정확한 기록이 없어 창건 연대 및 이후의 사적을 알 수 없다.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신라 화랑들의 수행도량이었다고 한다. 1840년 대홍수로 사역 전체가 물에 잠겨 수해를 입었으며 이후 1992년에도 수해로 대웅전이 무너졌다. 1999년 다시 극락전을 건립해 사찰의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경내는 극락전, 요사채, 산신각, 심검당 등 총 4개 동으로 구성되어 있고 극락전을 중심으로 좌측 편에 전각과 요사가 모여 있다. 우측에는 화단과 휴식처 등이 마련되어 있다.
2026-03-12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10길 87 (봉익동)
대각사는 종로3가역에서 창경궁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절로 재단법인 대각회의 사찰이다. 민족대표 33인이며 3·1운동을 주도했던 백용성 스님이 창건한 절이다. 대각교가 대각사를 중심으로 민족 자주성을 일깨운다고 판단한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 하지만 탄압 속에서도 1945년 12월 12일에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의 귀국을 환영하는 귀국봉영회를 마련한 역사적 장소이다. 일제에 맞서 나라의 독립을 소망했던 자취가 남아 있는 절로서 일주문 단청에는 용성스님의 독립운동 발자취와 3·1독립만세운동에 대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