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관광 정보를 소개합니다.

월리사(청주)

월리사(청주)

2025-03-06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염티소전로 55-100 월리사

월리사는 충청북도 청주시 구룡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 법주사의 말사이다. 월리사는 대청호를 끼고 있는 구룡산 서쪽, 이른바 샘봉산이라 불리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대청호가 가둬둔 물이라면 월리사로 가는 길은 비탈을 따라 흐르는 물처럼 요동친다. 월리사에 가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구룡산 월리사를 알리는 표석과 "이곳은 불존(佛尊)이 있는 특별한 구역이니 장례를 치르지 말라"고 적어 놓은 금비(禁碑)다. 아마도 공양미 자루를 머리에 이고 먼지 날리는 길을 걸어 걸어서 절을 찾던 옛 아낙들은 이쯤에서 버선발에 힘이 모이고 노는 입에서는 저절로 염불이 흘러나왔을 것이다. 월리사는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사찰로 자연의 풍광을 거스르지 않는 전각들이 천상 고졸한 산사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까닭이다. 월리사에 있는 전각은 대웅전, 삼성각, 요사 등 모두 3동이다. 이 중 으뜸은 하늘로 날아갈 듯 한 추녀의 곡선이 빼어남을 자랑하는 대웅전으로 월리사의 중창과 함께하는 건물이다. 대웅전에 들어서 부처님께 참배한 뒤 천장을 보면 색과 선으로 표현된 천상의 세계를 만나게 될 것이다.

원흥사(장수)

원흥사(장수)

2025-09-17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원흥길 102-6

백제 무왕 때 창건한 팔성사의 일곱 암자 중의 하나이며, 고려 중기에 창건되어 조선 초기에 폐허화되었다고 한다. 절의 폐허 후에도 이곳에는 높이 4m, 둘레 3m의 거대한 미륵입상이 남아 있었다. 노천에 있던 이 불상은 1904년에 원흥 마을에 살았던 이 처사 부부가 현몽한 뒤 불당을 지어 봉안하였다. 그 뒤 부인은 출가하여 운선이라는 법명을 얻어 원흥사의 중건에 착수하였고, 딸 청신과 손자 김귀수가 그 뜻을 이어받아 현재의 원흥사를 이룩하였다. 원흥사의 문화재인 원흥석불입상은 몸에 비해 얼굴이 크고, 눈과 입은 작고, 코가 크며 귀는 길다. 목은 매우 짧고 양손을 가지런히 배에 대고 옷소매에 넣어 감추고 있다. 본래 머리 위에 관을 쓰고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불상은 크기와 비례, 조각수법 및 형태 등을 고려할 때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한다. 법당으로는 대웅전과, 산신각, 종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유물로는 1984년 전라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높이는 4m의 원흥석불입상이 있다. 사찰 주변으로 어필각, 압계서원, 호룡보루 등 연계 방문할 만한 문화유적지가 위치해 있다.

원효암(경산)

원효암(경산)

2025-06-27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갓바위로 386-73

원효암은 통일 신라 시대 원효대사(617~686)가 창건한 사찰로 전해지며, 경산시 와촌면 팔공산 자락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 은해사의 말사이다. 원효암 뒤에 사시사철 찬물이 나는 샘이 있어 냉천사라고도 불린다. 원효암 뒤 북쪽으로 난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경산원효암마애여래좌상이 있다. 1980년에 대웅전과 삼성각을 건립하였다. 1986년 대화재 이후 극락전과 산령각을 다시 건립하였고, 2016년에 아미타불상만 봉안하였던 극락전에 협시로 관세음보살상과 대세지보살상을 봉안하는 아미타삼존불 점안불사를 하였다.

원효암(양산)

원효암(양산)

2025-09-05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천성산길 727-82

원효암(元曉庵)은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천성산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원효암은 원효스님이 신라 선덕여왕 대에 창건한 유서깊은 고찰로, 천성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맑은 날이면 멀리 부산과 일본의 대마도, 양산과 울산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경관을 간직하고 있다. 현재 원효암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중심 법당을 비롯하여 미륵전·산령각·범종각 등이 있다. 중심 법당은 공포가 없이 둥글게 깎은 도리를 얹은 굴도리식으로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단순하고 소박하다. 퇴칸은 심우실(尋牛室) 등 생활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어칸과 협칸 세 칸은 예배 공간으로 석조약사여래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이 불상은 근래에 발견된 불상조성기에 의해 1648년에 조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에는 범종을 안치했으며, 종명(鐘銘)은 경봉(鏡峯)이 썼다. 법당의 동편의 석벽에는 마애아미타삼존불이 새겨져 있다.

원통사(서울)

원통사(서울)

2025-07-18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로169길 520 (도봉동)

원통사[圓通寺]는 서울시 도봉구 도봉산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1 교구인 조계사의 직할사찰이다. 원통사는 예로부터 좌우에 수락산과 삼각산을 거느리고 한강을 바라보는 도봉산의 최고 길지에 자리 잡은 수행기도처로 알려져 왔다. 조선초기의 무학대사를 비롯해서 근대에는 만공·동산·춘성스님 등 선지식이 이곳에 머물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관음기도 도량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지냈던 조현명, 서명균 등이 나라의 일을 이야기하며 심신을 닦았던 곳으로 당대 유학자들 사이에 명소로 이름 높았다. 현재 경내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기도했다는 석굴이 있으며, 약사전 아래 큰 바위에는 태조가 기도를 마치던 날 천상의 상공(정승)이 되어 옥황상제를 배알 하는 꿈을 꾸었다 하여 새겼다는 상공암 [相公岩]이라는 글씨가 있다. 그런가 하면 절 뒤쪽에 있는 우이암으로 불리는 바위는 관음보살이 부처님을 향해 기도하는 형상을 하고 있어 원래는 ‘관음봉’으로 불리었다고 한다. 주변의 자연 지세를 자세히 살펴보면 호랑이·코끼리·학 등 여러 동물 모습을 한 바위들이 이 바위를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형상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이곳을 천혜의 관음성지라고 믿고 있다.

원등사(완주)

원등사(완주)

2025-10-29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소양면 원등산길 386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인 완주 원등사는 원등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원등사는 확실하지 않으나 진묵대사가 오백나한을 모시기 위해 창건하게 되었다고 한다. 현 법당은 1956년 8월에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건립하였다. 원등사는 약 1,200년의 고찰이며, 산중턱에 진묵대사가 참선을 수행했다는 참선당(토굴)도 있다. 그러나 사찰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지가 소실되어 정확한 근거는 남아있지 않다. 사찰 측에 따르면 신라 문성왕 2년에 광보조선사가 절터를 구하고자 무주 향악 난야에서 나무로 만든 오리를 날려서 원등사 터로 날아오자, 이곳에 사찰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는데, 변산에 있는 월명암에서 진묵대사가 동쪽을 바라보니 멀리서 등불이 보이고 있어서 백리길을 찾아와 보니 원등사 터에 남아있던 석등에서 불빛이 비추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진묵대사가 성지임을 알고 중창하였으며, 이름도 멀리 비추는 등불을 보고 사찰의 터를 찾아내어 지은 사찰이라는 뜻으로 멀 원(遠), 등불 등(燈)을 써서 원등사라 했다고 한다. 그 뒤에 6·25전쟁의 공비토벌 때에 전소되었던 것을 1985년부터 3대 창건주인 수련스님이 석굴법당과 명부전을 재건하였고, 1989년에는 석굴법당에 500나한상을 모셨다.

원각사(김제)

원각사(김제)

2025-03-05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사정거리1길 20

사찰의 창건 및 연혁에 관하여 1984년에 기록된 ‘원각사사적비(圓覺寺事蹟碑)’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인 1927년 일본인 승려 아오키 타로가 일본 동본원사(東本願寺) 계통의 작은 규모의 사찰을 창건했으며, 창건 당시 이름은 진조사였다고 한다. 1945년 8월 해방 직후에 지금의 주지인 춘명 창석이 진조사를 인수하여 원각사(圓覺寺)로 이름을 바꾸고 사세를 점차 확장했다. 1968년에는 대웅전을 짓고, 1970년에는 종각을 새로 지었다. 1975년에는 최연화 화주의 시주로 오층석탑을 봉안했다. 1976년에는 미륵불상을 봉안하였다.

원각사(광주)

원각사(광주)

2025-04-02

광주광역시 동구 중앙로 197

원각사는 광주시 금남로 번화가에 위치한 대한 불교조계종 송광사의 광주 포교당이다. 현대에 중창된 대웅전, 사회활동장인 원각루, 그리고 요사채 두 동이 있다. 원각사 앞으로는 쉴 새 없이 자동차와 사람들이 오가며, 절에도 많은 사람이 참배하고 많은 모임과 행사를 통해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불일 서점에서 불교용품을 직접 팔고 있어 불교신자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다. 법회에는 지장 법회, 관음 법회, 초사흘 법회, 합창단 법회, 어린이 법회, 중고등학생 법회, 청년회법회, 신도회법회, 거사림법회 등이 있고, 복지시설을 찾아 선행하는 청년회와 선우회, 그리고 음악회를 통해 선행하는 울림이라는 신행단체도 운영되고 있다. 문화행사도 요가, 사군자 법회 등 60여 회의 다양한 법회가 있다. 복혜쌍수의 도량 광주 원각사는 인터넷 홈페이지도 개설되어 있고, 격월로 소식지도 발간하고 있어 말 그대로 완벽한 포교당의 역할을 하고 있다.

원효사(의정부)

2026-02-25

경기도 의정부시 원효사길 86 (호원동)

도봉산과 사패산 중간의 회룡능선에 위치한 원효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대사(617~686)가 수도한 곳으로 북한산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지하철 1호선 망월사역에서 약 50여분 가량 등산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당도하는데, 바위굴을 좋아했던 원효대사의 수행처답게 바위 절벽으로 둘러싸인 곳에 위치해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며, 경기도 전통사찰이다. 원효사는 현재 남아 있는 사적 기록이 없어 정확한 창건연대와 무슨 연고로 멸실되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원효대사가 이곳 석굴(지금의 나한전)에서 수도했다 전하며, 이후에도 많은 선승들이 깨달음을 얻기 위해 정진하였던 곳이었던 것 같다. 1954년 재창될 때 이를 증명하는 많은 불기(佛器)와 깨진 그릇, 수저, 기왓장 등의 고려•조선 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화폐의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숭령보중(崇寧寶重)이라 새겨진 동전이 발견되기도 했다. (숭령은 송나라 휘종(徽宗) 때인 1102년에서 1106년 사이 5년간 사용된 연호이다.) 1956년 비구니 우일이 이곳의 석굴을 발견하고 수도하면서 복원사업을 시작하였는데, 원효대사가 안거 하며 기도하던 곳이라 하여 절이름을 원효사라 하고, 원효대사의 동상을 세웠다. 이와 나란히 송담 정은(1927~) 대선사의 동상도 함께 세워져 있다. (송담 정은은 평생 은둔 수행자로 살면서 10년 묵언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어 일명 묵언선사라 불리운다.) 또 그 옆에는 7층 석탑이 있는데 일제 강점기 대마도 번주였던 소요시토시(1558~1615) 가문이 1910년대에 전북 서남부 지역에서 대마도로 옮겨갔던 것이다. 이후 나가사키의 미키 코진이라는 사람의 저택에 2007년까지 세워져 있었고 이를 일본의 한 대학에 교수로 재직하던 조선통신사 연구자 홍종필 교수가 알고 국내 반환을 추진한 끝에 이곳 원효사로 이건 되었다. 그 외에도 1626년(인조 4) 3월, 궁녀인 상궁 최씨의 발원으로 완성된 한글 사경인 「의정부원효사묘법연화경(議政府元曉寺妙法蓮華經)」을 소장하고 있으나 일반 공개는 하지 않고 있다. 이 사경은 한글 표음법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원통사(무주)

2024-10-21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안성면 원통사로 676

덕유산 원통사는 무주군 남덕유산 기슭에 있는 사찰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 말사이다. 원통사가 있는 덕유산 중턱에는 무룡봉에서 뻗어 내린 준령이 신령스럽고 영험한 길지를 이루고 있고 사계절 비경을 연출하며 언제나 맑은 물이 넘쳐난다. 1698(숙종 24)년에 탄언, 도영, 혜왕, 일학 스님이 중창하고 범종 주조와 불상을 보수하는 등의 불사를 하여 대가람을 이루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문태서, 김동신, 신명선, 박춘실 등의 의병장들이 원통사를 구국 항쟁의 근거지로 하여 활동하였던 의미 깊은 호국 도량이다. 애석하게도 1949년 여순사건의 병화로 당우가 전소되어 폐허가 되게 되었다. 그러나 1975년 정공대종사가 중창을 발원하여 손수 법당을 건립하면서 복원이 시작되었고 현재는 법당, 선방, 산신각, 요사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의 원통사지는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