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전 은행나무길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통일전 은행나무길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통일전 은행나무길

통일전 은행나무길

5.8Km    2025-12-04

경상북도 경주시 칠불암길 6 (남산동)

통일전 은행나무길은 경주시의 대표적인 가을 명소로 손꼽히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의 삼국통일 정신과 화랑의 호국정신을 기리고 이를 이어받아 나라의 정신적 지주로 삼기 위하여 조성한 길이다. 근방에 삼국통일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건립된 통일 전부터 시작되어 직선으로 광활하게 펼쳐진 도로 양옆으로 은행나무 가로수가 늘어서 있는 형태이다. 은행이 절정으로 물드는 10월 말부터 11월 초까지 가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경주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외지인들도 많이 방문하기도 한다. 또한 통일전으로 올라가 누각 위에서 통일전 은행나무길 전체의 풍광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경주 정강왕릉

경주 정강왕릉

5.8Km    2025-12-11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이 능은 신라 제50대 정강왕(재위 886~887)의 무덤이다. 정강왕은 경문왕의 둘째 아들이며, 헌강왕의 동생이다. 황룡사에 백고좌를 설치하여 왕이 친히 강연을 들었다. 정강왕은 병이 깊어지자 누이동생인 만(진성여왕)이 왕위를 잇게 하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재위 기간은 만 1년에 불과하다. 헌강왕과 마찬가지로 보리사 동남쪽에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정강왕릉은 경주 남산의 북동쪽 능선 끝자락에 있는데, 북쪽에는 헌강왕릉이 있다. 무덤의 외형은 흙으로 덮은 둥근 형태로, 무덤을 보호하기 위해 밑둘레에 3단으로 돌을 쌓았다. 그중 제일 밑단만이 밖으로 약간 나왔으며, 무덤 앞에는 돌단이 있는데, 그 위에 돌로 만든 작은 제사상이 있다. 무덤의 구조는 헌강왕릉과 같다. 그러나 1993년 헌강왕릉의 내부조사 결과, 그 구조와 나온 유물들이 8세기 이전의 형식이어서 이 왕들이 왕위에 있던 9세기와는 큰 차이가 있다.

경주 석빙고

경주 석빙고

5.8Km    2025-10-27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석빙고는 얼음을 넣어두던 창고로, 이 석빙고는 경주 반월성 안의 북쪽 성루 위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남쪽에 마련된 출입구를 들어가면 계단을 통하여 밑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다. 안으로 들어갈수록 바닥은 경사를 지어 물이 흘러 배수가 될 수 있게 만들었다. 지붕은 반원형이며 3곳에 환기통을 마련하여 바깥공기와 통하게 하였다. 석비와 입구 이맛돌에 의하면, 조선 영조 14년(1738) 당시 조명겸이 나무로 된 빙고를 돌로 축조하였다는 것과, 4년 뒤에 서쪽에서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는 내용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이때의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규모나 기법면에서 뛰어난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코오롱가든골프장

5.9Km    2025-03-14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로 289-17

토함산이 바라보이는 자연경관에 천연잔디 위에 설계된 골프장으로써, 연중무휴로 누구나 쉽게 이용이 가능한 골프장이다. 전장 150미터, 15타석의 골프연습장이 준비되어 있다. 심신의 건강을 위한 노캐디와 수동카트, 깊고 아름다운 숲 속 라운딩의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백률사(경주)

백률사(경주)

5.9Km    2025-12-11

경상북도 경주시 산업로 4214-110 (동천동)

경주시 북쪽 소금강산 중턱에 자리한 백률사는 신라 법흥왕 14년(527) 불교 공인을 위해 순교한 이차돈을 기리기 위한 절이자, 신라의 불교 성지이다. <삼국유사>와 헌덕왕 때 작성된 <향전>에 따르면 이차돈은 법흥왕의 명을 받들어 불교를 공인하고 사찰을 짓기 위해 순교했는데, 참수형을 받고 이차돈의 목을 베니 흰색 피가 솟아 나오고 꽃비가 내리는 등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불교 공인을 반대하던 신하들도 이것을 보고 마음을 돌렸다고 하며 이차돈의 아내가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차돈의 목이 베려 날아가 떨어진 자리에 자추사를 지었다고 전한다. 백률사는 이 기록에 나오는 자추사일 것으로 추정된다. 백률사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 후에 다시 지었으며, 기단부는 일부 신라시대 양식을 지니고 있다. 과거 대웅전에 모셨던 금동약사여래입상은 불국사의 금동아미타여래좌상,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으며, 이 세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3대 금동불로 알려져 있다. 금동약사여래입상과 이차돈의 석당은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동파랑

5.9Km    2025-09-01

경상북도 경주시 양정로98번길 16-8 (황오동)
0507-1316-4247

동파랑은 경주의 동쪽 언덕에 피어난 아지랑이라는 뜻으로, 옛 한옥의 서까래를 나무와 흙으로 고스란히 복원한 전통 한옥 독채 숙소다. 한옥 독채 숙소와 별채 다이닝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독채에는 포그한 침실, 안락한 거실과 작은 주방, 화장실, 사계절 온수풀이 가능한 실내 자쿠지가 있고, 별채에는 넓은 주방과 다이닝룸이 있다. 따뜻한 햇살이 반겨주는 마당에서는 차나 커피를 마시며 맑은 하늘과 초록빛 자연을 즐길 수 있다.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5.9Km    2025-09-23

경상북도 경주시 산업로 4214-76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은 경주 굴불사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바위 불상으로 약 높이 3미터의 바위 네 면에 불상이 조각되어 있어서 사면석불이라 부른다. 이 사면불의 서쪽은 서방 극락세계의 아미타삼존불, 동쪽은 유리광세계의 약사여래불, 북쪽은 미륵불, 남쪽은 석가모니불을 각각 새긴 사방불의 형태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이 백률사를 찾았을 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땅을 파보니 이 바위가 나와서 바위의 사방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굴불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이 기록만으로는 분명하지 않지만, 여러 가지 여건으로 보아 이때쯤 불상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은 불상조각에 있어 입체의 표현, 음각과 양각의 표현, 좌상과 입상의 표현 등을 변화 있게 배치해 매우 특색이 있으며 풍만하고 부드러우면서 생기를 잃지 않은 솜씨를 볼 때 통일신라 초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청공한옥

청공한옥

5.9Km    2025-01-17

경상북도 경주시 이구2길 5-6 (구정동)
010-9009-6022

‘청공’이란 이름은 불국사 아래 유난히 맑은 하늘과 바람이 머무는 이곳의 풍경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청공한옥에 머무는 손님들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지친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이름처럼 맑은 하늘 아래서 바람과 함께 머물며 아름다운 추억 만들어 가길 바라며 이름을 지었다. 청공한옥은 천년의 역사와 찬란한 문화 예술의 도시 경주를 대표하는 토함산과 세계문화유산 불국사의 기운을 내려받은 앞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황토벽돌과 천연자재를 사용하였으며, 고품격 인테리어를 가미하여 고즈넉한 한옥에서 힐링의 쉼터가 되도록 건축 개조하였다. 한옥 내에는 한민족과 건강을 상징하는 소나무를 비롯하여 다양한 종류의 조경수와 원예식물, 기암괴석이 조화롭게 조경하였으며, 한옥 앞 밭엔 계절 따라 아름다운 꽃말을 가진 꽃들이 자리 잡고 있다.

두부마을

두부마을

5.9Km    2025-01-16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로 168-3

두부마을은 경북 경주시 마동에 있다. MBC 시사 교양 프로그램 <생방송 오늘 저녁>에 출연한 바 있다.
대표 메뉴는 특송이얼큰순두부 정식이다. 이 밖에 얼큰순두부 정식, 들깨순두부 정식, 흰색순두부 정식, 청국장 정식, 촌두부버섯전골 정식, 한방보쌈 정식, 두부스테이크, 해물파전을 판다.

경주 서출지

경주 서출지

5.9Km    2025-11-14

경상북도 경주시 남산동
문화관광과(관광홍보) 054-779-6079 관광안내소(경주역) 054-772-3843

신라 21대 소지왕이 서기 488년 정월 보름날 행차에 나설 때다.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말했다. “이 까마귀 가는 곳을 살피십시오” 왕은 장수를 시켜 따라가게 했다. 동남산 양피촌 못 가에 이르러 장수는 그만 까마귀를 놓쳐 버렸다. 이때 갑자기 못 가운데서 풀 옷을 입은 한 노인이 봉투를 들고 나타났다. “장수께서는 이 글을 왕에게 전하시오” 노인은 글이 써진 봉투를 건넨 뒤 물속으로 사라졌다. 왕이 봉투를 받아보자 ‘열어보면 두 사람이 죽고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라고 적혀있었다. 이를 본 신하가 말했다. “두 사람은 평민이고 한 사람은 왕을 가리킴이오니 열어보시는 것이 어떨까 하옵니다.” 왕은 신하의 조언에 따라 봉투를 뜯었다. ‘사금갑(射琴匣)’ 즉 ‘거문고 갑을 쏘아라’라고 적혀 있었다. 대궐로 간 왕은 왕비의 침실에 세워둔 거문고 갑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 거문고 갑 속에는 왕실에서 불공을 보살피는 승려가 죽어있었다. 승려는 왕비와 짜고 소지왕을 해치려 한 것이었다. 왕비는 곧 사형되었으며 왕은 노인이 건네준 봉투 덕분에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이 연못은 글이 적힌 봉투가 나온 곳이라 해서 서출지라 부른다. 소지왕 10년은 신라에 불교가 공인되기 40년 전이다. 신라 눌지왕 시대에 묵호자가 불교를 전하러 왔으나 펴지 못했다. 소지왕 시대 아도 스님 역시 불교 전파에 실패했다. 법흥왕 15년 이차돈의 순교로 비로소 신라에 불교가 공인된 것이다. 당시 신라 귀족들은 민속신앙 특히 조상을 섬기는 신앙이 강해 쉽게 불교를 인정하지 않았다. 서출지의 전설은 전통적 민속신앙 속에 새로운 불교문화가 전래되는 과정에 빚어지는 갈등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