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Km 2024-11-22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봉산로 134
원주역사박물관은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봉산로에 위치한 박물관으로 원주의 역사와 전통문화유산을 수집. 보존하고 있으며 2000년 11월 14일에 개관하였다. 1층은 역사실, 현석실, 기획 전시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2층은 민속생활실과 일사 김봉룡 실이 있다. 부속시설로는 51평 규모의 전통한옥과 70석 수용 가능한 강당이 있다. 상설전시관인 역사실은 선사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원주의 주요 유적과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민속생활실에서는 세시 풍속과 우리 조상들의 생업, 의식주, 공예 등이 전시되어 있고, 원주의 방언과 설화, 민요를 검색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일사 김봉룡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칠공예 기능보유자로 선생의 유족들로부터 기증받은 2,180점의 중요 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현석실은 원주 출신의 대한민국 제10대 대통령인 최규하 대통령의 3,000점에 이르는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박물관 본관 뒤쪽에 자리한 야외전시장에는 원주에서 출토된 다양한 석조유물과 전통한옥, 야외공연장과 주민 쉼터가 있다. 이 밖에도 우리 전통문화를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기획 전시를 통한 특별전 개회 및 세시풍속 행사, 박물관 인문학 강좌 등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전통문화 체험을 운영하고 있다.
4.0Km 2025-01-15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삼광1길 10
뼈대있는짬뽕은 강원도 원주시에 있는 짬뽕 전문 중화식당이다. 뼈가 수북이 올라간 짬뽕은 진한 국물과 부드러운 살코기가 잔뜩 붙은 뼈의 환상 궁합이다. 언제 가더라도 대기가 있는 식당이다. 어지간한 감자탕의 뼈다귀보다 뼈가 잘 발라지고 부드러운 뼈에 홍합과 조개가 잘 어울리는 맛이다. 매운맛이 칼칼하고 얼큰하고 깔끔하게 맵다. 일찍 가도 재료 소진이 되면 조기 마감을 하니 영업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가정집을 식당으로 개조했고 마당에는 대기 공간을 따로 만들어 두었다. 주차장이 없어 주차는 주변에 골목이나 유료주차장을 찾아서 주차한 후 이용해야 한다. 원주역사박물관과 가깝다.
4.2Km 2025-01-15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버들만이길 12
안 432는 강원 원주시 반곡동에 위치한 돈가스전문점으로 신선한 최상급 제주 흑돼지만을 사용한다. 얼리지 않은 전용 생빵가루를 사용해 바삭하지만 거칠고 딱딱하지 않은 맛을 내고 있다. 생과일과 채소 등 천연 재료를 사용하여 안 432만의 소스를 만들고 있으며 합성 간장이 아닌 오로지 발효 간장만을 사용하며 늘 건강한 음식을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대표 메뉴는 모둠카츠정식으로 로스, 히레, 치즈, 새우 카츠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 메뉴이다. 이외에도 기쓰네우동, 냉모밀 등 다양한 메뉴를 취급하고 있다.
4.2Km 2025-03-27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흥양리
부흥사터에 흩어져 있던 탑의 일부분들로, 아래층 기단(基壇)과 위층 기단 일부, 탑신(塔身)의 몸돌 1개, 지붕돌 2개를 수습하여 민가 옆에 모아 놓았다. 위층 기단은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에 기둥모양을 새겨 두었고, 기둥조각으로 나뉜 8곳에 8부신중(불교에서 불법을 수호하고 대중을 교화하는 여덟 무리의 신)을 각각 조각해 두었다.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는데, 네 귀퉁이에 방울을 달았던 구멍이 남아 있다. 위층 기단의 신상 조각 머리 부분에 특이하게도 둥근 두광을 새겨 놓아 눈길을 끄는 탑으로, 원주지역의 불교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위층기단의 조각양식과 탑신의 짜임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4.3Km 2024-10-02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버들만이길 2-1
033-735-9066
본심오향족발은 원주에 위치한 족발·보쌈 전문점이다. 누린내가 적고 쫄깃하면서도 부드러운 족발을 한번 맛본 사람들은 계속 찾게 된다.
4.4Km 2024-12-26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행구로 53
033-765-3065
강원 원주시에 위치한 한식 전문점이다. 강원도의 산나물과 원주의 특산물인 당도 높은 복숭아를 접목시켜 다양한 메뉴를 개발하였다. 그리하여 장군 본가에서는 다양한 장아찌와 복숭아불고기를 맛볼 수 있다. 이 외에도 한우 모둠구이, 돼지왕갈비 등 다양한 구이 메뉴도 준비되어 있다. 또한 넓은 단독 주차장과 단체 및 개인 손님이 편안히 식사할 수 있는 개별 룸 시설이 완비되어 있다.
4.4Km 2025-03-27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봉산4길 45
원주시 봉산동에는 고려시대의 석조보살입상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석조보살입상의 높이는 1.78m이고,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친근감 있는 방형의 얼굴, 도식적인 신체, 형식화된 군의 주름 등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전기에 제작된 지방색이 농후한 작품이라고 한다. 머리에는 관을 쓰고 있으며, 풍만한 얼굴에 눈·코·입은 작게 표현되어 있지만 미소를 띠고 있어 친근한 인상이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배에 대고 있으며, 신체에 비해 팔은 가늘고 손이 작아서 불균형한 모습이다. 상체의 옷은 양복처럼 보이고, 큰 체구에 구름무늬 같은 하체의 옷주름이나 머리에 쓴 관 모양이 일반적인 보살과 거리가 먼 특이한 형태이다. 친근한 인상과 옷이나 신체 등 형식적인 세부표현에서 고려 보살상의 특징과 지방색이 어우러져 있는 작품으로, 이 지방의 불상양식을 알 수 있다.
4.5Km 2025-04-10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영원산성은 원주 치악산에 자리한 돌로 쌓은 산성이다. 2003년 6월 2일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신라 문무왕 때 이 산성이 축조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고려 충렬왕 17년(1291) 원나라의 합단군이 침입했을 때, 원충갑이 지역의 백성들과 함께 산성으로 들어가 지키다가 침략군을 통쾌히 무찌른 곳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 때 목사 김제갑의 지휘 아래 원주 일대의 주민들이 끝까지 항전하다가 함락되어 수많은 장졸들이 목숨을 잃은 비극의 현장으로 당시 치열한 격전지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산성의 성벽은 동쪽과 서북쪽 일부 구간에 잘 남아 있으나 대체로 붕괴된 상태이며, 전체 둘레는 약 2.4㎞ 정도이다. 옛 기록에 의하면 성안에는 우물 한 군데와 샘 다섯 군데가 있다고 하였는데, 지금도 샘터가 남아 있다. 샘터 외에도 성안에는 건물 터, 성문 터 등이 남아 있다. 영원산성은 산성 축조방식에 있어서 가장 전형적인 산성의 완전한 모습을 보여 주며 학술적으로는 중세 산성의 특징을 잘 나타냄과 동시에 역사적으로는 고려·조선시대를 걸쳐 전란 시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던 역사교육 현장의 귀중한 유적이다.
4.6Km 2025-03-31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치악로 2006-19
영천사(靈泉寺)는 강원도 원주시 태장 1동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이다. 영천사는 고려 시대의 고승 나옹 스님이 창건한 고찰로 처음에는 영전사(令傳寺)였으나 그 뒤 절 부근에서 신비로운 샘물이 솟는다고 하여 영천사로 하였다고 한다. 고려 말 혜근이 이 절에서 말년을 보냈으며, 그가 입적하고 난 뒤 1388년(고려 우왕 14)에 사리탑이 세워졌다. 조선 중기까지 원주 지방에서 가장 큰 절로 번창했으나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사세가 크게 기울었다. 1938년 박처사가 꿈을 꾸었는데, 부처가 절을 지으라고 하여 법당을 짓고 절 이름을 영천사로 바꿔 중창하였다. 1950년 6·25전쟁으로 절이 다시 불에 탔으며, 1958년 김종길이 대웅전을 중건하고 이후 선광 등이 불사를 계속 진행하여 오늘에 이른다.
4.6Km 2025-03-13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개봉교길 41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는 당이라는 깃발을 걸어두는데, 이 깃발을 다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시켜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원주시 봉산동 내천 옆에 자리한 이 당간지주는 원래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 내에 서 있던 것이라 한다. 기단부(基壇部)가 땅에 묻혀 있어 그 모양을 알 수 없으며, 좌우 두 기둥과 기둥사이의 당간받침돌만이 남아있다. 자연돌로 만든 당간받침돌은 양끝을 기둥밑부분이 들어갈 수 있도록 파낸 후 기둥을 끼웠고, 그 윗면에는 가운데에 동그랗게 테를 돌린 후 깃대를 끼워 세울 수 있도록 구멍을 파 놓았다. 양 기둥은 직사각형이나 위로 오를수록 차츰 좁아져 맨 끝은 뾰족하게 모아진 형태이다. 각 부분에서 날카로운 부분을 다듬어 부드러운 모습을 나타내고자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세워진 시기는 대체적으로 정교한 꾸밈이 없었던 고려시대로 여겨진다. 1910년 기둥 한쪽이 파손되어 1980년 4월 복원해 놓았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