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문화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 국내 여행 정보

한국관광공사에서 제공하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하여 구리문화원 - 주변 여행 및 근처 관광 명소 정보를 소개합니다.

구리문화원

구리문화원

14.6Km    2024-08-27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148번길 25 (인창동)

1991년 설립된 구리문화원은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증진하고, 지역 주민들이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주요 시설로는 전시실과 문화학교 강좌를 위한 다수의 강의실, 대강당과 도서실, 옥상 하늘정원이 있다. 구리문화원에서 운영하고 있는 문화학교는 1995년 9월에 개설되었으며 구리시민의 문화 복지 실현이라는 목적으로 오락 성향의 강좌가 아닌 순수 문화 예술 중심의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문화학교 프로그램으로는 한국무용, 대금, 풍물, 가야금, 서예 등의 전통 강좌와 통기타, 색소폰, 수필, 드럼의 일반강좌가 개설되어 있으며 문화원 홈페이지를 통해 수강 신청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동구릉문화제, 구리 벌말다리밟기, 갈매동 도당굿과 같은 지역 문화행사를 개최하고 매달 구리문화지를 발간하고 있으며, 향토사의 발굴 및 조사·연구 및 사료를 수집·보존하고 있다.

힐라비카페

힐라비카페

14.6Km    2025-04-29

경기도 구리시 금강로199번길 114 (사노동)

힐라비카페는 퇴계원역에서 1km 정도 거리로 역에서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다. 퇴계원 IC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있다. 카페의 넓은 정원은 조경이 잘 되어있고, 다양한 조각품으로 꾸며져 있다. 야외 테라스 좌석과 정원 좌석도 마련되어 있다. 내부는 높은 천장이 보기에 시원하고 널찍한 공간에 좌석이 여유롭게 배치되어 있다. 적절한 조명과 넓은 창 그리고 커다란 화분들이 밖의 정원 풍경과 더불어 편안한 느낌을 준다. 주차장은 넓어 주차가 편하다. 여러 종류의 신선한 빵을 판매하고, 커피는 취향에 맞게 두 가지 원두 중에 고를 수 있다. 힐라비 선라이즈, 런던포그라는 시그니처 음료가 있다. 바로 옆에 스크린 골프 연습장인 '힐라비 골프'가 있다. 구리왕숙체육공원, 동구릉과도 멀지 않다.

구리역공원

구리역공원

14.7Km    2024-08-27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구리역공원은 경기도 구리시 안창동에 위치한 도심 속 공원이다. 중앙선 전철역인 구리역 바로 앞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용이하다. 2003년 시민들의 녹지 공간 확보를 위해 건립된 곳으로, 야외무대와 분수, 벤치, 어린이 놀이시설 등의 시설이 있다. 도심 내 휴식 공간으로 각광받고 있으며, 지역 생활권 거주자의 휴양 및 정서 생활에도 도움 되고 있다. 그리고 구리역공원의 야외무대는 각종 문화공연과 행사가 개최되는 장소로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온사이드카페

온사이드카페

14.7Km    2025-05-13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읍 별내2로 203-11

온사이드카페는 남양주시 퇴계원읍 별내2로에 있는 반려견 카페이다. 15kg 이하의 반려견만 입장할 수 있고 이용 시간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8시까지다. 건물은 총 3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은 반려견 카페로 13세 이하는 이용할 수 없는 노키즈존이다. 2층은 반려견 미용, 반려견 호텔로 예약제로 이루어진다. 3층은 루프탑, 잔디운동장으로 대관이 가능하며 포토존이 있어 사진 촬영하기에 좋다. 1층에는 인조 잔디가 깔려있고 음료와 디저트 등을 판매한다.

다인한정식

다인한정식

14.7Km    2025-04-30

경기도 구리시 벌말로 98 (토평동)

다인한정식은 구리시 토평동에 있는 가족 모임 하기 좋은 한정식집이다. 건물 뒤편에 주차장이 있고 식당은 한층 올라가 2층에 있다. 식당 내부는 좌식과 입식 좌석이 나누어져 있고 여유롭게 식탁이 배치되어 있다. 메뉴는 점심 정식인 사계절과 봄정식, 여름정식, 가을정식, 겨울정식이 있다. 계절 재료에 따라 코스 구성이 조금씩 바뀌고 일품요리 또한 철에 맞게 음식을 달리한다. 정식이 부담스러운 어린이를 위한 소고기볶음밥이 있다. 주변에 가볼 만한 곳으로는 장자호수공원과 구리한강시민공원 등이 있다.

마장동한우촌

마장동한우촌

14.7Km    2025-04-30

경기도 구리시 벌말로 92 (토평동)

마장동 한우촌은 경기도 구리시 토평동에 위치한 가성비 좋은 정육 식당이다. 식당 내부는 넓고 깔끔하며, 회식 및 모임을 위한 룸도 구비되어 있다. 정육 식당으로 상차림 가격을 따로 내야 하지만 반찬이 다양하며, 한우 선짓국도 제공한다. 소고기는 한쪽에 있는 정육점에서 골라 올 수 있다. 부위 별로 다양하며 가격도 다 다르지만 다른 한우 고깃집에 비하면 가성비가 좋다.

공도동춘옥

공도동춘옥

14.7Km    2025-01-16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85 공도 동춘옥

공도 동춘옥은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는 고급 중화요리 전문점이다, 동구릉 옆에 있어 찾기 쉽다. 구리 IC에서 자동차로 6분 거리이고 버스를 타면 동구릉 버스 정거장에서 걸어서 1분 거리에 있다. 크고 작은 룸이 있어 다양한 식사 모임이나 회식에 좋고 식당 앞 주차 공간도 넉넉해서 편리하다. 다양한 코스요리를 가성비 좋은 구성으로 준비돼 있고 자장면, 짬뽕, 탕수육 등 기본 음식 맛도 좋다. 주변 가볼 만한 곳으로 다산 수변공원이 있고 도농 한강공원도 둘러볼 만하다.

구리 동구릉 [유네스코 세계유산]

14.7Km    2025-03-19

경기도 구리시 동구릉로 197 (인창동)

동구릉[東九陵]은 ‘동쪽에 있는 9기의 능’이라는 뜻으로, 약 450여 년간 7명의 왕과 10명의 왕비가 잠들어 있는 조선 최대의 왕릉군이다. 1408년(태종 8) 조선을 건국한 태조의 건원릉[健元陵]이 처음으로 조성되고 이후 문종의 현릉[顯陵], 선조의 목릉[穆陵], 현종의 숭릉[崇陵], 장렬왕후의 휘릉[徽陵], 단의왕후의 혜릉[惠陵], 영조의 원릉[元陵], 헌종의 경릉[景陵]이 차례로 조성되었다. 능이 조성될 때마다 동오릉[東五陵], 동칠릉[東七陵] 등으로 불리다가 문조의 수릉[綏陵]의 옮겨지면서 지금의 동구릉이 되었다. 동구릉은 조선 전기부터 후기까지의 왕릉을 모두 볼 수 있는 곳으로, 왕이나 왕후의 능을 단독으로 조성한 단릉, 나란히 조성한 쌍릉,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 한 능에 왕과 왕후를 같이 모신 합장릉, 왕과 두 왕후의 능을 나란히 조성한 삼연릉 등 다양한 형태로 조성된 능이 모여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돼지마을순대국

돼지마을순대국

14.7Km    2025-05-13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진벌로 57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순댓국 전문점이다. 구관과 신관 건물이 별도로 있어 원하는 곳에서 식사할 수 있다. 순댓국, 순대정식, 순대곱창전골, 순대, 머리고기, 오소리감투, 모둠순대 등 여러 가지 메뉴를 맛볼 수 있다. 순대정식은 2인분 이상 주문해야 한다. 순댓국을 주문하면 파, 다진 고추, 새우젓, 들깻가루, 양념장, 소금, 후추 등이 함께 제공되어 기호에 맞게 넣어 먹을 수 있다. 순댓국은 잡내가 나지 않으며 다양한 종류의 푸짐한 건더기와 뜨끈한 국물이 조화를 이루어 맛을 낸다. 남은 음식은 포장이 가능하다. 매장 앞 주차장이 있어 주차하기 편하다.

나만갑선생신도비

나만갑선생신도비

14.7Km    2024-08-23

경기도 구리시 사노동

나만갑선생신도비는 구리에 자리한 비석으로, 조선 인조 때 문신인 나만갑의 행적을 기록한 비이다. 1658년(효종 9)에 건립하였다. 비석은 평면 사각의 받침돌 위에 비석 몸통을 얹고 그 위에 팔작지붕 모양의 지붕돌을 얹은 형식을 하고 있다. 비문은 좌의정 김상헌이 짓고, 글씨는 송준길이, 비석 윗면의 비명 글씨는 손녀사위 김수항이 썼다. 비문에는 가계와 청년 시절, 관식 생활, 자손 현황 등이 기록되어 있다. 나만갑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해에 출생하여, 병자호란 6년 뒤인 1642년(인조 20)에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613년(광해군 5) 21세 때 진사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1618년 선조의 계비인 인목대비가 서궁(지금의 덕수궁)에 유폐되자 고향 영천으로 내려가 독서로 세월을 보내다가, 1623년 반정으로 인조가 들어서자 순릉 참봉이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당시 지방 군량을 관리하던 관향사로서 남한산성에 들어가 성내 양식을 공급하였고, 난이 끝난 후 누명을 쓰고 남해로 귀양갔다가 1639년에 풀려나 영주에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