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Km 2025-03-17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541-3
익산 미륵산 자락에 있는 구룡마을 대나무 숲의 전체 면적 50,000㎡ 정도로 한강 이남의 최대 대나무 군락지이다. 분포하고 있는 주요 수종은 왕대이며, 일부 구간에 검은 대나무인 오죽 또는 분죽이라 부르는 솜대가 자라고 있다. 구룡마을의 대나무숲은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대나무의 주요 수종인 왕대의 북방한계선에 위치하여 생태적인 가치가 매우 높고, 다른 지역의 대나무 숲과 다르게 마을 한가운데에 크게 위치하고 있어 경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구룡마을에서 재배되는 대나무로 만든 죽제품은 우리나라 3대 오일장의 하나였던 강경 오일장을 통해 인근 지방뿐만 아니라 충청도, 경기도 지방까지 팔려 나간 역사적 전통이 있다. 익산지역 경제의 중요한 소득 자원으로 ‘생금밭’이라 불리기도 했다. 구룡마을 대나무 숲의 또 다른 멋은 초 여름밤 반딧불이의 군무를 볼 수 있다는 것인데, 자연과 하나 되는 행복함을 만끽할 수 있다.
3.7Km 2024-11-2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사곡길 21-5
200년 세월을 버텨온 지금의 왕궁다원은 이 고장의 부호였던 표정 송병우의 집터이다. 송병우는 초대 수리조합장을 지내면서 왕궁 저수지와 함벽정, 지방도 건설 등 지역 발전에 힘썼고, 교육이 낙후된 곳에 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에 공헌하며 생을 이곳에서 마감하였다. 그 후 세월이 흘러 고택 일부분이 소실되고 훼손되었으나, 그의 손자 손호윤이 늘푸른 수목원을 운영하며 지금의 왕궁다원을 손수 유지 보수하였다. 현재는 송병우의 증손녀가 옛 한옥의 멋을 함께 다원으로 운영, 관리하고 있다. 마당 안으로 들어가면 안채, 별채, 사랑채가 ㄷ자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오래된 고택이라 고풍미가 가득하고, 건물과 정원이 어우러져 힐링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익산의 가볼 만한 곳이다. 건물 주변으로 정원을 잘 가꾸어 놓아 계절마다 피는 꽃 구경을 하며 산책하기도 좋고, 곳곳에 숨겨진 오래된 농기구나 소품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근처에 있는 보석박물관, 서동공원, 왕궁리유적지 등과 함께 연계해 다녀오기도 좋다.
3.9Km 2024-09-20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화곡1길 53-15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소자파의 묘비다. 1526년(중종 21)에 건립되었으며 진주소씨 익산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비신은 대리석으로 높이 165㎝, 너비 93㎝, 두께 23㎝이다. 화강암으로 된 대석은 가로 136㎝, 세로 98㎝, 높이 73㎝이며, 전면과 후면은 2개의 정사각형 안에 용화문을, 윗부분은 연판문으로 장식하였다. 4각의 받침돌은 국화무늬를 조각하였다. 머릿돌은 앞·뒷면에 연꽃과 구름무늬를 새겨 넣었는데 그 조각이 매우 섬세하고 뛰어나다. 비의 전액은 글씨 크기가 약 10㎝로 김희수(1475~1527)가 썼으며 남곤(1471~1527)의 글이다. 비의 뒷면은 이행(1478~1534)의 글이고, 글씨는 크기가 약 10㎝로 성세창(1487~1548)이 썼다. 비의 모습이 완전하고 비문의 글씨도 선명하며 조각 수법도 우수하다. 또한 비의 건립연대가 중종 21년(1526)으로 익산지역에 전해오는 금석문으로서는 가장 빠른 것이어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4.0Km 2025-03-12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장중길 105-8
이 집은 조선 선조대 문인 표옹 송영구(瓢翁 宋英耉)선생이 선조 38년(1605) 선친을 여의고 지은 곳으로, 이곳에서 우산(紆山)에 있는 선영(先塋)을 망모(望慕)하였다고 한다. 망모당이란 편액(扁額)은 중국사신 주지번(朱之蕃)의 친필을 현각한 것이다.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집으로 전면의 초석은 기둥모양초석으로 누집 형식을 이루고 있다. 기둥위에 첨차를 놓아 굴도리 밑의 장혀를 받친것이나, 난간두겁대의 받침기둥을 계자각 비슷하게 다듬은 것 등이 이 건물의 특징이다. 당모당 부근에는 100여명 정도가 앉아서 놀 수 있는 평평한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 밑으로는 왕궁천이라는 냇물이 흐르고 있어서 주변의 경치가 매우 좋다.
4.0Km 2024-10-25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미륵사지내
미륵사지 석등하대석은 익산 미륵사지 내 동원과 중원에 있는 2기의 하대석이다. 중원의 석등 하대석은 석탑과 금당지 사이에 있고, 동원의 석등 하대석은 탑과 금당 사이에 있다. 미륵사지 석등하대석은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에서 1974년 8월 21일부터 9월 20일까지 실시한 [동탑지 발굴 및 서탑 기초 조사] 당시 풍탁 및 철물과 함께 발견되었다. 석등을 이루었던 부재들은 옥개석·화사석·상대석·연화하대석으로 하대석을 제외한 부재는 원래 위치를 이탈한 상태로 수습되었으며, 화사석 3개는 국립전주박물관에 보관 전시되고 있다. 미륵사지 석등하대석 상면에는 8개의 연화문이 조각되었는데, 백제 말기 연화문 수막새의 무늬와 같은 양식으로 백제 말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미륵사지 석등하대석이 한국 석등의 시원 양식임을 알 수 있다.
4.0Km 2024-01-18
익산은 고대부터 삼국시대, 근대의 역사까지 함께 품고 있는 보석과도 같은 고장이다. 많은 비밀을 간직한 미륵사지와 백제 무왕의 전설을 담은 서동공원, 국보인 왕궁리5층석탑과 유물전시관을 둘러본다. 잉옥수리조합사무실과 춘포역사, 구 일본인 농장가옥 등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근대의 가옥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4.1Km 2025-03-18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세워두는 것으로, 절에서는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걸어두는 길쭉한 장대를 당간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미륵사터의 남쪽에는 2기의 지주가 약 90여 미터의 간격을 두고 서 있는데, 크기와 양식, 조성수법이 같아 같은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본다. 지주를 받치는 기단부(基壇部)는 완전히 파괴되어 대부분이 땅속에 묻혀있는 상태이며, 약간만이 드러나서 그 원모습을 짐작하게 한다. 지주는 원래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마주 보는 면에는 특별한 장식이 없다. 바깥쪽 면에는 가장자리를 따라 띠를 돌린 후, 그 중앙에 한 줄의 띠를 새겨두었다. 당간을 흔들리지 않게 고정시키기 위해 지주의 안쪽 면에 3개의 구멍을 각각 뚫어놓았는데, 맨 위의 것만 직사각형 모양이고 나머지는 둥글다. 대체적으로 장식이 적으며, 단정한 형태를 보이는 이 두 지주는 통일신라 중기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이곳의 당간지주와 거의 같은 모양의 예로는 영주 숙수사지 당간지주(보물)와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보물) 등이 있다.
4.1Km 2025-03-04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용순신기길 44-76
화산서원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용순리에 위치한 조선 후기의 서원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월주(月州) 소두산(蘇斗山), 인산(仁山) 소휘면(蘇輝冕), 죽유(竹牖) 황자후(黃自厚)를 배향한 익산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1654년(효종 5) 창건되고 1662년(현종 3) 사액되었으며 1868년(고종 5) 훼철되었다. 1937년 강당과 원직사가 세워지고, 1966년 사당이 건립되고 담장을 쌓았으며, 2002년 대대적으로 중건되었다. 조선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과 병자호란 이후 대명 의리를 주장하며 서인을 이끌었던 송시열을 모시는 서원으로, 원생이 30명이나 되는 명망 있는 서원이었다. ‘좌창평 우익산’이라고 할 정도로 양반 고을인 익산에서 유림들의 대표적인 집합체이기도 하였다. 사당, 강당, 원직사 등이 구비되어 있었으며. 위토와 노비도 상당하였으나 1868년 서원이 훼철되면서 사우와 강당이 헐리고 서원답은 익산향교에 귀속되었다. 흥선대원군 실권 이후 설단하여 향사를 지내다가 1937년 강당과 원직사(院直舍)가 세워지고 약간의 위토가 마련되었다. 1966년 팔봉면의 유생 황상규(黃祥圭) 등의 노력으로 정면 3칸의 사당이 건립되고 사당 주위에 담장을 둘렀다. 이때 익산 출신의 소두산, 소휘면, 황자후가 추가로 배향되었다. 화산서원은 강당과 사당이 잘 보존되어 있다. 외삼문과 내삼문, 팔작지붕 형태의 강당 정면 4칸과 측면 2칸, 맞배지붕 형태의 사당 정면 3칸과 측면 3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내에는 화산서원비(華山書院碑), 화산서원 중건비(華山書院重建碑), 화산서원 계생비(華山書院繫牲碑), 군수황종석 영세불망비(郡守黃鍾奭永世不忘碑)가 세워져 있다.
4.1Km 2025-01-20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요지는 자기나 기와, 그릇들을 만들어 굽던 가마터를 말한다. 익산 백제토기 가마터는 미륵산 동편에 있으며, 2기의 가마터가 발굴되었다. 가마터의 구조는 반지하식으로 반원형의 천장이 위로 향하면서 경사를 이루는 굴가마(등요)로 밝혀졌다. 아가리큰항아리(광구호), 세발토기(삼족토기), 항아리가 출토되었다. 이 가마터는 백제 후기의 토기 모양을 파악할 수 있는 유적이며, 일본 오사카에 있는 6세기경 가마터의 구조와 비슷한 면이 많아 일본의 토기 제작기술이 백제로부터 비롯되었음을 말해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4.1Km 2025-03-07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미륵사지로 362
익산 미륵사지에 대한 발굴조사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의해 1980년부터 1996년까지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백제 당시의 사찰 규모와 가람배치를 확인하고, 창건기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19,000여 점의 문화재를 수습했다. 그 후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문화유산을 효율적으로 보존하고 전시하고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 1997년 전라북도가 주체가 되어 미륵사지유물전시관을 개관하였다. 한편, 2009년 1월에는 미륵사지 석탑(국보) 해체 보수 작업 과정에서 다량의 사리장엄구가 출토되었고, 2015년 7월에 미륵사지와 왕궁리 유적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에 미륵사지를 비롯하여 익산 지역에서 출토되는 문화유산의 체계적인 관리와 활용의 필요성이 커졌고, 2015년 12월 말에는 기존 도립 전시관이 국립으로 전환되었다. 미륵사지 남서쪽에 자리한 국립익산박물관은 역사 유적 안에 위치한 현장 박물관으로서 다양한 전시 및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다. (출처 : 국립익산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