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Km 2025-08-01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방축2길 77
짬뽕나무는 평택시 고덕동 방축2리 마을회관 근처에 있는 짬뽕 맛집이다. 육수를 매일 직접 우려내 주문을 하면 바로 요리해서 준다. 자리에 앉으면 물과 양파, 단무지, 김치를 가져다주고 더 필요하면 셀프바를 이용하면 된다. 짬뽕 안에는 홍합, 차돌박이, 야채가 듬뿍 들어가 있고 수란을 따로 준다. 기본 맛과 매운맛이 있어서 취향대로 주문하면 된다. 이 집의 탕수육은 두툼한 고기에 튀김옷 두께도 적당해서 식감이 좋다. 혼밥족을 위한 바에 앉으면 논밭을 보며 식사할 수 있다.
15.5Km 2025-08-04
경기도 평택시 함박산2길 13 (고덕동)
카페포렛은 고덕 신도시에 있는 디저트 카페다. 주택 상가 1층에 있고, 입구 주차장에 주차할 수 있다. 외부는 깔끔한 통유리에 그린색이 깨끗한 느낌을 주고 내부로 들어가면 카페 이름처럼 우드톤에 푸릇푸릇한 식물 위주의 인테리어가 싱그러운 분위기를 낸다. 곳곳에 화분도 많고 간접 조명으로 인테리어를 마무리했다.
15.5Km 2025-07-17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영인산로 440
SG아름다운골프앤리조트는 충남 아산시 영인면에 자리 잡고 있다. 영인산 자락을 끼고 있는 골프장은 고즈넉하며 경관이 수려하다. 27홀로 이루어져 있으며, 클럽하우스, 스타트 하우스 등이 갖춰져 있다. 리조트를 함께 운영하고 있어 골프 여행으로 안성맞춤이다. 골프장 주변에는 영인산자연휴양림, 삽교호 함상공원이 있다.
15.6Km 2025-03-19
충청남도 아산시 둔포면 해위길52번길 29
윤보선 대통령은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을 역임하였으며, 헌정 사상 최초의 의원 내각제 하 대통령이다. 본적은 충청남도 아산, 호는 해위(海葦), 기독교 집안인 중추원의관 동야 윤치소 씨와 중추원의관을 지낸 전주 이 씨 이재룡 씨의 장녀인 이범숙 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1913년 일본 유학길에 올랐던 윤보선은 이후 여운형을 따라 상하이로 건너가 상해임시정부에 들어가 약관의 나이에 독립운동에 투신하였으며 영국에서 옥스퍼드와 에든버러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였다. 해방 후 서울시장 및 상공부장관을 맡으며 출세가도를 달렸으나 대통령 직선제 개헌안과 사사오입 등의 개헌을 통해 이승만의 장기집권을 도모하자 야당들을 통합하여 민주당을 탄생시켰고, 야당인 민주당 소속으로 3, 4, 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자 윤보선은 민의원과 참의원의 양원합동회의에서 내각제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신군부에 의해 강제적으로 물러나게 되었으며 74년 정계를 은퇴하여 부인 공덕귀 여사와 함께 유신체제에 항거하는 재야지도자가 되었다. 윤보선 대통령이 태어난 생가는 충남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 143번지에 위치해 있으며, 1984년 12월에 국가민속문화유산 제196호로 지정되었다. 3138㎡의 생가 터에 사랑채, 안채, 문간채, 행랑채 등의 구조로 윤보선 대통령의 부친인 윤치소가 1907년에 지었다고 하며, 주변은 해평 윤 씨 집성촌으로 현재는 전통가옥(윤일선가옥, 윤승구가옥, 윤제형가옥)들과 함께 하나의 권역을 이루고 있다. 평생을 나라사랑과 민주화된 조국을 염원했던 윤보선 대통령의 일생은 불의에 대한 저항과 사회에 대한 책임 등 그 정신적 바탕에는 아산이라는 지역정서가 크게 담겨 있으며, 둔포면 신항리는 우리나라 개화기 시대의 선각자들인 윤 씨 가문의 전통이 녹아 있는 지역이기도 하다.
15.7Km 2025-11-18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여민루길 20
조선 시대의 아산군 관아 입구에 세워졌던 문루인데, 동향한 낮은 기단 위에 4 각형의 주형 초석을 배열하고 그 위에 둥근기둥을 세워서 루마루를 설치하였다. 하층은 정면 3칸에 각각 문을 달아 통로로 사용하였으며, 좌우 협간의 문미(門楣) 상부에는 홍살을 설치하였고 측면의 2칸은 판벽으로 막았다. 공포는 2익 공인데 외출목은 없으며 처마 밑의 기둥 사이에는 간략화된 화반형의 초화반을 중앙문에 3개, 그 이외의 문에는 모두 2 개식을 배치하였다. 지붕 가구는 앞뒤 기둥 위에 대들보를 걸었는데 대들보 위에 소로를 두고 그 위에 뜬 창방을, 다시 이 뜬 창방 위에 주두를 놓아 종량을 받치도록 하였다. 종량 위에 있는 대공은 파연대공(波蓮臺工)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이대공과 결구된 뜬 창방은 그 위에 있는 마루 도리와의 사이에 간단하게 장식된 초각반 3개를 배치하여 중간 부분을 보강하고 있다. 천장은 연등천장이며 모도 단청으로 채색되어 있고 이 칸 정면이 ‘여민루’란 현판이 걸려 있다.
15.7Km 2025-09-23
경기도 평택시 고덕동
평택시 고덕신도시에 있는 근린공원이다. 2020년 10월 ‘정원, 경계를 품다’라는 주제로 LH 가든쇼가 개최되었던 곳이다. 공원 곳곳에 가든쇼 당시에 선보인 작품이 있어 사진 찍기에 좋다. 댕당공원은 복잡하게 얽힌 산책로가 매력적이다. 다양한 식물과 나무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어 방문객들에게 편안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또한 인라인스케이트, 스케이트보드를 탈 수 있는 엑스게임장도 있다.
15.7Km 2025-06-18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로 54
먹골갈비는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에 위치해 있다. 매주 목요일에 직접 소를 발골하기 때문에 신선하게 맛볼 수 있다. 메뉴는 생등심과 생안심, 그리고 직접 작업한 부챗살, 업진살, 치마살이 나오는 한우 한 마리 등이 있다. 이곳은 한방갈비탕과 육개장도 인기가 많다. 인근에는 관광지로 아름다운 CC 리조트와 영인산이 있다.
15.8Km 2025-10-30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부용로17번길 40
평택향교는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객사리에 있는 향교이며, 경기도의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평택 향교는 1413년에 지었고, 1445년에 증설되었다. 병자호란으로 불타 없어졌으나, 1797년 복원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잠시 농민학교로 사용되기도 했다. 평택향교 입구의 홍살문은 신라시대 처음 만들어졌는데 홍살문 옆에는 하마비가 있다. 향교의 대문 격인 외삼문을 지나면 강학 건물인 명륜당과 유생들 숙소인 동재와 서재가 있고, 그 위쪽 조금 높은 곳에 유교 성현들에게 제사 지내는 대성전이 있다. 막돌허튼층으로 쌓은 기단 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익공을 짜올렸으며, 목부에는 단청이 칠해져 있다. 향교 주위 담장은 최근에 사고석으로 쌓았고,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공자, 맹자를 비롯한 선현의 위패를 봉안하며 제향을 지낸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 평택에는 진위향교와 평택향교가 있어 지역의 유생들을 교육하였다
15.9Km 2025-11-18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 동산절길 26-20
충남 북부 해안에 위치한 단호박올리고마을은 서해안고속도로에서 충남으로 들어오는 관문에 자리하고 있다. 장엄한 서해대교를 건너 우측으로 이어지는 삽교호 관광지를 지나 당진 방면으로 향하면 신평면 소재지 인근에 마을이 있다. 이곳의 특산품인 단호박은 토심 깊은 황토에서 자라 해풍을 맞아 당도가 높기로 유명하다.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도 품질을 인정받으며 호평을 받고 있다.
15.9Km 2025-10-30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제암길 50
1919년의 3·1운동은 개신교가 한국민족주의 운동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계기가 됐다. 개신교는 3·1운동에서 지도적 역할을 담당했으며, 전국 각지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독립만세시위 중 상당 부분이 개신교신자들에 의해 주도됐다. 그만큼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에 의한 피해도 많았는데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경기도 화성시의 제암리교회이다. 일본 경찰은 1919년 4월 15일 오후 제암리교회에 신자들을 모이게 한 후 문을 폐쇄하고 교회에 불을 지르면서 무차별 총격을 가했으며, 이는 4월 5일에 일어난 만세운동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제암리교회에 대한 무자비한 보복이었다. 1905년 8월 제암리 이장이었던 안종후의 주도로 설립된 제암리교회는 동족부락이라는 특성 때문에 유난히 강한 단결력을 지녔는데 3·1 운동 때도 이 같은 성격은 그대로 나타났다. 1959년 4월 사건 현장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로 된 3·1운동 순국기념탑이 세워졌고, 1970년 9월에는 일본의 기독교인과 사회단체들이 속죄의 뜻을 담아 보내온 1천만 엔의 성금으로 새 교회와 유족회관이 건립됐다. 또 1982년 9월 정부에 의해 대대적인 유해 발굴작업이 실시돼 교회 옆에 마련된 묘소에 안장됐으며, 다음해 7월 기념관과 새 기념탑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