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Km 2025-03-04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동 560
정읍시 내장호 주변으로 조성된 내장산 단풍생태공원은 우리나라에 자생하고 있는 단풍나무 중 11종외 다양한 수목이 식재되어 있다. 특히, 잎이 아기 조막손처럼 작다하여 애기단풍이라 부르는 단풍나무의 빛깔이 아름답다. 단풍체험전시관과 석가원, 분재원, 습지원, 단풍동화숲, 단풍터널길, 고향의 정원등 단풍을 테마로 한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공간이다. 내장산 서래봉이 바로 눈앞에 펼쳐져 있어 산세 또한 수려하고, 11월에는 수놓은 듯한 아름다운 단풍이 환상적이다. 2015년 개장하였으며, 매년 3월부터 11월까지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사진 전시회등을 개최하고 있다.
6.2Km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화평길 2
063-533-6492
100% 정읍 한우만을 판매하며, 넓은 주차공간을 갖춘 곳이다. 전라북도 정읍시에 있는 한식 전문점이다. 대표메뉴는 한우 육회비빔밥이다.
6.4Km 2024-09-12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정신로 183-64
정읍 신태인간 지방도로변에서 500여 m쯤 더 들어간 곳에 있는 낮은 산인 남산에 남산사가 있다. 남산에는 예부터 반야선터라 하여 알려져 있는 선의 도량으로 병자호란 이전에는 승려가 100여 명이나 기거한 큰절이었다고 한다. 이 절은 옛날에는 ‘한적사(閑寂寺)’라 했다. 지금도 절터였던 주추돌과 기와장이 무수히 나오고 있다. 오랫동안 폐허가 된 사적지로 남아있던 사지에 1910년경 이장녀 보살이 작은 암자를 짓고 ‘남산사(南山寺)’라 이름하여 창건한 후 신도우, 정진성, 김금담 등 역대 주지가 있었고 1991년에는 현주지인 학승, 도선스님이 정진하고 있다.
6.6Km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신정동
삼신산(三神山)은 중국 전설에 나오는 신산으로 봉래, 방장, 영주의 세산을 말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에 견주어 영주산을 한라산, 봉래산을 금강산, 방장산을 지리산으로 여기고 있다. 이것은 신선사상의 영향을 입은 것으로 이와 같은 지명이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정읍에도 이러한 영향으로 삼신산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 바로 내장산 북쪽자락에 해당하는 곳으로 원 지명은 삼성산이다. 이 곳 주민들은 흔히 삼신산으로 부르고 있다. 삼성산은 이 산의 정기로 인하여 신과 같은 성인이 셋이 나온다는 산이다. 산의 좌우에는 붓끝 모양의 필봉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문필과 구학문이 이어진다고도 한다. 특히 도선 국사가 터를 잡았다고 전해지는 삼성산 정상에는 약수가 있고 조선조 말까지 절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주춧돌과 기와조각 기둥자리가 지금도 남아 있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다. 또 정읍은 도시 전체가 배의 형국인데 삼성산 정상 쪽이 뱃머리에 해당된다고도 한다. 특히 산죽이 많고 산 정상에서 서남쪽으로 150M 떨어진 지점에는 양해(양기를 해친다는 작물)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6.7Km 2024-07-26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종황길 92
전북 정읍에 위치한 자두마을 캠핑장은 35개 사이트와 카라반이 있는 캠핑장이다. 내장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어 산뷰가 좋다. 캠핑장과 주차장 사이를 흐르는 계곡 물놀이장과 캠핑장 안에 큰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캠핑존의 경우 입실은 오후 1시부터 21시까지 완료해야 하며 부득이한 사정이 있을 경우 관리자에게 연락을 해야 한다 또한 오후 11시부터는 매너타임이므로 소음에 유의해야 한다.
6.7Km 2025-08-13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망제동
망제동석불입상은 전라북도 정읍시 두승산의 지맥인 만제봉 중턱에 있는 석불로 대암석불이라고도 한다. 머리에는 마치 갓과 같은 테가 큰 모자를 쓰고 있어 유교적인 성격이 가미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깨는 다소 움츠린 모습이며, 턱 밑에는 옷 주름이 있다. 손목 아래에는 세 줄의 평행선이 내려지고 있다. 오른손은 어깨높이로 들어 손바닥을 보이며 손끝은 위를 향하고 있다. 왼손은 마찬가지로 손바닥을 보이는데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다. 얼굴 표현과 손 표현에 노력이 집중된 불상으로 민속적인 특색을 띠고 있다. 큰 부처로 한 덩이 돌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며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주변 관광지로 창동서원, 백운암 석불입상, 말목정과 감나무, 전봉준 선생 고택, 말목장터 유지비가 있어 연계 관광할 수 있다.
6.7Km 2025-01-15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호반로 328 (내장동)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동 내장산 금선계곡에 있는 폭포이다. 금선골의 용굴에서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암반으로 이루어진 기름바위를 지나면 좌편 산벽에 암굴동문인 신선문에 이르게 되고, 신선문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골짜기가 끝나는 곳에 이르니 바로 금선폭포이다. 금선계곡의 말단에 위치하고 신선봉에서 내리는 높이 18m의 폭포로써 주변에 신선문, 용굴, 기름바위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일대는 험지로서 내장산의 비경[秘境]을 이루고 있으며 4개의 폭포가 첫 폭포 위에 연달아 있지만 밑에서는 하나밖에 보이지 않고, 수원[水源]이 짧아 가물면 물이 거의 말라버리는 것이 흠이다. 승려들이 이곳에서 목욕재계하고 1,000일 기도를 드려 신선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7.5Km 2024-10-14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입암면 입암로
063-538-7875
입암산(626m)은 정읍시 입암면과 전남 장성군 북하면의 서부지역과 접하고 있다. 내장산 국립공원의 경계에 위치하고 주위에 축성한 백제 때의 입암산성과 더불어 내장 6봉, 백양 3봉과 함께 호남의 손꼽히는 명승지이다. 실제로는 내장산 11봉과 백암산의 6봉을 비롯해서 이 입암산 지역을 통틀어 내장산국립공원으로 일컫고 있으며 내장산과 백암산 못지않은 매력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각양각색의 기암괴석과 크고 작은 폭포와 소, 울창한 숲으로 천연의 신비경을 간직하고 있어 피서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이 외에도 내장산에 못지 않는 가을 단풍은 찾는 이의 발길을 붙들어두기에 충분할만큼 아름답다. 입암산 정상부에 있는 입암산성은 조선 태종 9년(1409)에 개축한 것으로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서쪽 정상에 있는 갓모양의 바위를 속칭 [갓바위]라고 하는데 입암산이란 이름이 이 바위에서 유래되었고 북쪽 산아래 면 이름도 입암면이다. 이곳은 사직제,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봉수대로도 사용되었으며 제석암 또는 제석봉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7.5Km 2024-01-18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산로 936
내장산국립공원 내장사에서 금선계곡을 따라 1.5km 정도 올라가다 보면 우측 산 중턱에 용굴이 나온다. 금선계곡 오른쪽에 위치한 용굴은 가파른 철재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임진왜란이 당시 난을 피해 정읍의 유생들인 오희길과 손홍록은 전주의 사고(史庫)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과 태조의 영정을 내장산 용굴로 옮겨 3개월 동안 지켰다. 후에는 이곳보다 더욱 험준한 곳에 있던 비래암(飛來庵)으로 옮겨 보관하였다고 전해진다. * 전주사고에 보관되었던 8백여 권의 조선왕조실록 * 조선왕조실록은 정읍사람 안의와 손홍록이 없었더라면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 의해 불태워져 오늘날까지 전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조선시대, 국가의 중요한 서적을 보관하던 서고인 사고는 경복궁내 춘추관, 경상도 성주, 전라도 전주, 충청도 충주 4곳에 있었다. 임진왜란으로 4곳의 사고가 모두 불타버렸지만, 전주사고에 보관되었던 8백여 권의 조선왕조실록은 불태워지기 전 내장산의 은봉암과 용굴에 피신시켜 지켜질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왜군이 들이닥친다는 소문을 듣고는 자기 집안의 머슴들을 이끌고 전주까지 달려가 전주사고의 참봉인 유신, 오희길 등과 함께 임진왜란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목숨을 걸고 내장산 깊은 곳 은봉암과 용굴까지 피신시킨 것이라 한다. 은봉암은 내장산 금선폭포 부근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현재 전하지 않으며 용굴(龍窟)은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동 내장산 금선계곡에 있는 동굴로 길이 8m, 높이 2~2.5m에 이른다.
7.5Km 2025-07-14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산로 1220-74
벽련암은 전라북도 정읍의 내장산에 위치한 사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원래 이름이 백련사로 기록되어 있다. 사찰은 백제 의자왕 20년인 서기 660년에 유해선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진다. 언제부터 백련사로 불렸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추사 김정희가 사찰 이름을 벽련사로 고쳐 부르고 현판을 써서 걸었으나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 1925년 학명선사가 극락보전을 중창하고 요사와 선원도 함께 지었다. 이 건물들 역시 1951년 음력 12월 10일 한국전쟁 중 모두 소실되었다. 사찰 서쪽에는 건립 연대를 알 수 없는 탑 형식의 부도가 남아 있다. 암자 뒤편 암벽에는 태인 출신 여성 시인 몽련당 김진민이 쓴 '석란정'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현재 벽련암은 그 역사성과 유물로 인해 문화적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