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M 2025-07-28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엘씨디로8번길 20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에 있는 돈가스 전문점이다. 파주 LCD 산업단지 입구 상가에 있다. 상호명은 가장 맛있는 고기의 두께에서 유래해 2cm+가 되었다. 오픈형 주방이라 음식이 준비되는 과정을 직접 볼 수 있다. 대표 메뉴로 2cm 돈가스가 있으며, 안심왕 돈가스, 깻잎 돈가스 등 다양한 메뉴를 맛볼 수 있다. 돼지고기와 쌀, 계란과 고춧가루는 국내산을 사용하며, 치즈는 미국산 100% 자연산 치즈를 사용한다.
458.8M 2025-08-29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덕은리
지석묘는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만든 무덤으로, 받침돌 위에 큰 덮개돌이 괴어 있다고 하여 고인돌이라고도 한다. 고인돌은 모양에 따라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으로 나뉜다. 경기도 파주시 덕은리에는 20여 기의 탁자식 고인돌과 선사시대 사람들이 살았던 터가 함께 발견되었다. 낮은 언덕을 따라 집터가 있고 20여 기의 지석묘가 2~3기씩 흩어져 있는 청동기시대의 유적이다. 덕은리 지석묘는 모두 탁자식 모양이며, 다른 지역의 탁자식 고인돌에 비해 전체 크기와 무덤방이 작은 편이다. 가장 큰 고인돌의 덮개돌 길이는 3.3m, 너비 1.9m이며, 고인돌에서는 민무늬토기, 돌도끼, 돌칼 등이 출토되었다. 1963년부터 1965년까지 이곳의 고인돌을 발굴 조사하였는데, 그 결과 고인돌 밑에서 청동기시대의 커다란 집터가 겹쳐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깊이 40~90㎝, 길이 157㎝, 너비 370㎝에 이른다. 내부에는 벽을 따라 바닥에 기둥을 세웠던 흔적과 불을 피우던 화덕자리 등이 발견되었으며, 집안에서는 구멍무늬토기(공열토기), 간돌칼(마제석검), 돌도끼(석부), 가락바퀴를 비롯한 여러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긴 네모꼴 집터는 서울 역삼동, 파주 교하리 유적에서도 보이는 형태이다. 출토된 숯으로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실시한 결과 집터는 기원전 7세기경에 만들어졌으며, 고인돌은 그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밝혀졌다. 덕은리 주거지와 지석묘군은 청동기시대 이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의 생활모습을 확인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파주지역의 청동기시대 문화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1.4Km 2025-10-23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용주서원길 46
용주서원은 조선 중기 학자이자 청백리에 녹선된 휴암 백인걸(休庵 白仁傑, 1497~1579)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자 1598년(선조 31)에 건립된 서원이다. 백인걸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학문과 후진양성에 전념했던 옛 집터에 지방 유림들이 서원을 세우고 사당을 지어 위패를 모셨다. 그 후 유생 정재심이 사액을 청했으나 실패하고 철폐되었으며, 그 자리에 유허비만 남아 있다가 1924년 유생들이 다시 뜻을 모아 서원을 복원하고 백인걸 선생과 그의 문인이었던 옥천 조감(玉川 趙堪), 장포 김행(長浦 金行), 낙금당 신제현(樂琴堂 愼齊賢), 당산 백유함(堂山 白惟咸) 선생 등 5인의 위패를 모시고 배향하고 있다. 경내에는 정륜당과 사우, 내 ·외삼문, 홍살문 등이 있으며, 사우규모는 정면 7.5m, 측면 5.2m이고, 홑처마에 맞배지붕이다. 그 좌측에는 정조 24년(1800)에 세운 백휴암 선생의 휴허비가 있다. 매년 음력 9월 9일에 파주 유림에서 제향을 지내고 있다.
1.6Km 2025-10-23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주라위길 60-6
82-10-4105-2576
DMZ 인근 위치한 외국인 전용 ‘외국인관광 도시민박업’ 등록업체이다. 중국어에 능통한 운영자가 있어 외국인 관광객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부대시설로 드럼세탁기, 전자식 소파, 독일 및 일본식 그릴, 토스터기, 전기밥솥, 가스레인지, 에어컨, 냉장고, 전자레인지, 55인치 TV가 있다. 무료 주차를 할 수 있다. 와이파이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며, 난방 보일러가 설치되어 있다. 공항에서의 픽업과 DMZ투어 서비스를 유료로 이용할 수 있다.
1.6Km 2025-07-25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엘씨디로241번길 39-35
파주 LG디스플레이단지에 위치한 비즈니스 관광 호텔로 자유로와 인접하여 있다. 객실은 패밀리 스위트, 주니어 스위트, 슈페리어 트윈, 디럭스 더블, 디럭스 트윈이 있다. 패밀리 스위트룸은 가족 단위의 여행객에 알맞으며 취사가 가능한 넓고 탁 트인 주방과 야외 테라스가 있으며 야외 스파가 있다. 1층 레스토랑에서 아침 식사가 뷔페로 제공된다. 그 외에도 호텔에는 레스토랑, 와이파이와 PC가 제공되는 회의실, 비즈니스 센터, 피트니스 센터, 주차장 등의 부대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차량 이용 시 주변 관광지로는 대형 프리미엄 아울렛, 파주 출판도시, 헤이리 예술마을 등이 있다.
1.7Km 2025-07-25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용상골길 364
월롱산 자락에 위치한 월롱 시민공원은 2013년 배수지를 조성하면서 개관한 곳이다. 월롱 시민공원은 넓은 잔디광장과 공연 무대, 쉼터, 개수대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나무와 꽃이 식재되어 사시사철 아름다운 경관을 자아낸다. 잔디광장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기 좋고, 배드민턴과 같은 공놀이도 즐기고, 자전거 및 킥보드도 신나게 탈 수 있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의 주말 나들이 장소로 손에 꼽히는 곳이다. 배수지 뒤편에는 월롱산 등산로와 월롱 산성, 용상사 사찰 등이 위치해 있고 등산로 입구에 운동기구가 있어 운동과 산책을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특히 월롱산은 대규모의 철쭉 군락지가 있어 해마다 4월이면 붉게 물든 꽃이 만개해 장관을 연출해낸다. 주변 관광지는 율곡이이 유적지와 화석정, 임진각(평화누리공원), 파주출판도시, 헤이리 예술마을, 운정호수 등이 있다.
1.8Km 2025-03-25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용상골길 403
용상사는 월롱산 남쪽 사면 중턱에 위치해 있다. 993년(성종 12), 1010년(현종 1)에 이어 1018년(현종 9)에 소배압이 거느린 40만의 거란군이 개성까지 쳐들어오게 되자 현종은 민간인의 차림으로 이곳 월롱산까지 피신하게 되었다. 다행히 강감찬이 귀주에서 승리하면서 나라 안이 평정되자 현종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절을 짓게 하고는 임금이 머물렀다는 뜻으로 용상사라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 뒤 덕은화주가 1445년(세종 27)에 중건하였으며, 이때 소북석상을 인근 벽장굴에 조성해 봉안하였다. 임진왜란 때 승병의 도량이 되었는데 왜군의 시체가 근처 골짜기에 가득하여 한때는 ‘무덤골’이라 불리기도 하였다. 이후 조선 후기까지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으나 1530년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절 이름이 보이고 있고, 1799년에 편찬된 「범우고」에 보면 ‘절이 지금은 없어졌다’라는 말이 있어 임진왜란 이후 어느 때인가 폐사된 것으로 생각된다. 근대에는 1926년에 정염스님이 폐허가 된 절터에 사찰을 중건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 현재의 용상사는 옛터에서 약간 아래쪽에 터를 닦아 해방 전에 중건되었고, 벽장굴에 있던 석불을 대웅전에 모시게 되었다. 1967년에 대웅전을 다시 개축하면서 서쪽에 삼성각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2Km 2024-08-27
경기도 파주시 월롱면 다락고개길 121-2
031-945-0898
경의중앙선 월롱역 앞에 위치한 양평해장국은 ‘한국에서 두 번째 양평해장국’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해장국과 내장탕 전문점이다. MBC 놀면뭐하니 179회, SBS 런닝맨 648회의 촬영지로 소개되었으며 인근에 있는 파주 LG디스플레이 직원들도 즐겨 찾는다는 현지 유명 맛집이다. 양평해장국은 선지·차돌·황태 해장국과 내장탕이 대표 메뉴이며, 수육, 술국, 만두전골, 왕만두 등도 맛볼 수 있다. 해장국과 내장탕은 아낌없이 재료를 넣어 건져 먹을 것이 많고, 속이 풀리는 뜨거운 국물은 일품이다. 조금 더 얼큰하게 즐기고 싶다면 고추기름을 한 바퀴 두르고 후추 조금에 이 집만의 비결 고추 짠지 조금을 추가로 넣어 먹는 것도 방법이다. 식사 장소는 좌식과 입식 모두 마련되어 있으며, 넉넉한 테이블과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단체모임도 거뜬하다. 평일 점심은 인근에 근무하는 직원의 방문으로 붐비는 편이다. 경의중앙선 월롱역에서 도보로 약 5분(243m) 소요된다. 인근에 파주출판도시, 헤이리 예술마을, 임진각(평화누리공원), 세계문화유산 파주삼릉, 하니랜드, 퍼스트가든 등이 있다.
2.9Km 2025-08-29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정승로88번길 23-81
조선 왕조를 통하여 가장 망명 있는 재상으로 칭송되었던 방촌 황희(黃喜, 1363∼1452) 선생의 묘소이다. 고려 공민왕 1년(1389)에 문과에 급제한 후 성균관학록을 지냈으며, 고려가 멸망하자 한 때 시골에 은거하였으나 조정의 요청과 동료들의 천거로 성균관학관으로 제수되었고, 이후 여러 직책을 두루 맡았다. 그는 태종의 극진한 예우를 받으며 6조의 판서, 대사헌 등 요직을 거치면서 문물과 제도를 정비하여 조선 초기 국가 기반을 확립하는데 큰 업적을 남겼다. 태종 대의 관직생활을 통해 얻은 국정전반에 대한 깊이 있는 경험을 토대로, 세종 대에는 20여 년간 나라살림을 총괄하던 의정부에서 외교와 문물제도의 정비, 4군 6진의 개척, 문예진흥 등을 지휘하여 세종성세에 크게 공헌하였다. 묘역은 3단으로 넓게 조성되었으며, 봉분의 규모 역시 크다. 봉분의 아랫부분은 화강암으로 둘레석을 둘렀으며, 봉분 앞에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상석과 향로석 등의 석물이 있다. 좌우에는 동자상과 문인석이 한쌍씩 있고, 묘역 아래에는 그의 업적을 기린 사적비와 1945년에 세운 신도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