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Km 2025-10-23
충청남도 태안군 용샘길 147
밀리앤코카페는 충청남도 태안군 태안읍 송암리에 있다.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외관과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는 인테리어가 눈에 띈다. 내부에는 단체석이 마련되어 있어 각종 모임을 하기 좋다. 루프탑에서는 탁 트인 풍경을 조망할 수 있으며 안전사고 방지를 위해 10세 이상부터 출입할 수 있는 노키즈 존으로 운영된다. 잔디가 깔린 외부 정원에는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어 근사한 사진을 남기기 좋다. 대표 메뉴는 아메리카노이며 에스프레소, 카페라떼, 카푸치노, 오리지널 밀크티, 자몽허니블랙티 등도 맛볼 수 있다. 서산 IC에서 가깝고 인근에 엠플레이파크, 로얄링스cc가 있다.
10.5Km 2025-03-26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대기길 12-20
충남 태안군에 위치한 갈두천은 원북면의 대기리, 양산리, 장대리, 청산리 등 갈두천 일대 마을이 모여 이루어진 곳으로, 농촌의 다원적 기능을 갖춘 명품 마을이다. 갈두천은 주민들의 뜻을 한 데 모아 지역 여건에 맞는 지역 발전계획을 세우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그윽한 솔내음 속에 머물고 싶은 마을, 쾌적하고 활기 넘치는 살기 좋은 농촌마을로 조성되었다. 3㎞의 갈두천을 가로수 및 야생화 식재, 태양광 가로등, 생태관찰테크 설치, 갈대숲 복원 등을 통해 자연친화적으로 정비해 생태학습장을 조성하고, 갈두천의 발원지인 장대 1리 마을 야산은 생태연못과 정자 설치 등으로 권역의 명소로 개발될 전망이다.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신동국여지승람 등 역사서에도 나왔을 정도로 과거 사냥터로 유명했던 대기리를 차별, 활성화하기 위해 활쏘기 체험장을 건립하였다.
10.6Km 2025-03-14
충청남도 서산시 음암면 상홍리
041-688-3069
잠홍저수지는 1951년 11월 5일 착공하여 1958년 12월 31일 준공된 저수지이다. 2003년 한 차례 제방 보강 공사가 있었으며, 현재 한국농어촌공사 서산·태안지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국도 32호선과 지방도 649호선이 분기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서산 A지구 간척지 북측에 농업용수를 제공하고 있다. 일부 방문객과 낚시객들의 쓰레기 투기를 방지하고 수질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2021년 5월 10일 이후로부터 낚시금지구역으로 지정되었다.
11.2Km 2025-03-12
충청남도 태안군 이원면 원이로 1539
041-672-8024
이원식당은 50년 전통을 이어가는 맛집으로 박속밀국낙지의 원조이며 원산지이다. 충남 지정 모법업소로 선정되어 태안관광의 대표 음식점이기도 하다. 이원식당은 태안군 이원면에서 잡히는 갯벌 낙지를 주로 사용하는 식당으로, 충남지역의 농산물을 사용하는 로컬푸드 맛집이다. 박의 속을 잘라서 야채와 갯벌낙지를 넣고 맑고 시원하게 끓이는 태안군 원북·이원면의 향토음식 박속낙지탕에 칼국수와 수제비를 넣어 먹는 박속밀국낙지탕을 맛볼 수 있다.
11.7Km 2025-11-14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부석사길 243
서해안 도비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사찰은 677년(신라 문무왕 17)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1,500년 가까운 고찰이다. 그 뒤 무학대사가 중건하였고, 1984년에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이곳에는 극락전, 요사채, 신검당, 안양루 등이 있으며 불상은 아미타불을 주불로 하여 관세음보살, 대세지 보살, 지장보살 등 8좌의 불상이 안치되어 있다. 그리고 사찰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또한 사찰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는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사찰이 있는 도비산은 정상의 해발고도가 352.8m로 높지는 않지만 서해안에 홀로 우뚝 솟아 주변이 잘 내려다보이는데, 특히 서해 낙조가 장관이다. 그리고 서산 아라메길 도비마루길의 경유지이기도 하여 이와 연계하여 관광하는 것도 좋다. 주변에는 그 외에 간월호, 천수만(철새도래지) 및 서산버드랜드 등이 있다.
11.7Km 2025-03-24
충청남도 서산시 홍안벌로 136 (수석동)
041-665-2262
충남 서산시에 위치함 반도회관은 전통 한정식 전문식당으로 음식이 정갈하고 쾌적하고 아늑한 분위기에서 맛깔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다. 단체석이 완비되어 있어 상견례나 각종 모임 등에 좋다. 대표메뉴인 한정식뿐만 아니라 1인 메뉴인 육개장, 소머리국밥, 도가니탕 등 다양한 메뉴가 준비되어 있어 취향껏 메뉴선택이 가능하다. 매장 외부에는 전용 주차장이 있어 더욱 편안한 식사시간을 가질 수 있다.
11.8Km 2025-03-19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산동리
모월저수지는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모월리에 위치한 저수지다. 농업 관개용 저수지로 1978년 1월 1일 착공하여 1982년 1월 1일 준공되었다. 직사각형 모양의 저수지로 민물 낚시터로도 이용되고 있다. 현재 한국농어촌공사 서산·태안지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나들이 삼아 풍경을 감상하려는 사람들이 종종 찾는다.
11.8Km 2025-03-18
충청남도 태안군 이원면 내리
041-670-2114
이원반도는 태안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툭 튀어나온 모양을 하고 있는 지형이다. 태안의 땅끝마을로 불리기도 한다. 최북단에 만대포구가 있는데 가로림만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는 서산 벌천포와 마주 보고 있고, 거리가 가까워서 벌천포와 대산산업단지, 독곶리 황금산 등이 보이기도 한다. 이원반도 내에서 가족단위로 찾아가기 좋은 해수욕장은 내리 1구의 사목해수욕장이다. 모래밭의 길이가 1km에 달하며 폭은 100m 정도이다. 대로변에서 700m가량 서쪽 바다로 들어가면 해변이 나타난다. 솔숲동산이 해변 가운데 있고, 그 양편으로 백사장이 뻗어 있다. 화려하진 않아도 인파에 시달리지 않고 조용히 해변 정경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어울리는 곳이다.
12.3Km 2025-03-12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고파도2길 10
서산시 팔봉면 북쪽 해상인 가로림만 내에 있는 섬으로 지역 주민 외에는 외지인들의 발길이 아주 드문 섬이다. 청정지역으로 해산물이 많이 잡혀 최근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古波島'라는 섬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파도가 아름답다. 태안반도와 서산 땅끝이 옴팍하게 파여, 파도와 거센 바람을 막아주는 로가림만에 안겨있어서 파도라고 할 것도 없이 잔잔하게 다듬어진 물결만이 밀려온다. 이 물결에 실려온 고운 모래는 고파도 해변에서 황금빛 모래사장을 이루고, 해마다 6월이 되면 붉은 해당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특히, 이곳의 해당화는 순수 야생이어서 색깔이 더욱 곱고 자태가 건강하다. 이렇듯 붉은 해당화와 누런 모래밭, 쪽빛수평선이 어우러진 풍경은 한 폭의 수채화 같다. 섬의 면적은 총 1.23㎢이고, 최고봉의 높이는 해발 69.1m, 해안선의 길이는 약 5km 정도이다. 수산업의 중심지로서 부근 바다에는 조기, 새우 등이 많이 잡히며 연안의 개펄에서는 바지락 같은 조개류의 양식업도 성하다.
12.4Km 2025-07-11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옥파로 199-7
이종일 선생의 생가터는 태안보훈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이종일 선생은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애국지사이다. 선생의 생가는 1979년 3월 1일 원북면 반계리에서 태안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이었던 박춘석에 의해 발견됐고 1986년에 복원되었다. 나무로 지은 초가집과 복원할 때 지은 사당, 낮은 돌담이 있다. 이종일선생생가지 내 주요 시설로는 초가집, 사당, 옥파이종일기념관, 체험관이 있으며 체험관에서는 태극기 만들기 체험을 운영한다. 선생은 1858년 11월 6일 태안군 원북면 반계리 89번지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총명한 재질과 뛰어난 학구력으로 한학에 전념했고 16세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882년 수신사 박영효와 함께 사절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와 그곳의 개화된 문물을 접한 후, 개화의 의지가 불붙었다. 그 뒤 정2품 중추원 의관이 되었으나 쇠퇴기의 국운을 통탄하며 취임 10여개월 만에 관직을 내려놓고 구국운동에 뛰어들었다. 기울어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민중 계몽과 인재 양성이 중요함을 느끼고 신문 발행과 교육 사업에 모든 정열을 쏟았다. 1919년 2월 3·1운동의 계획을 듣고 그 자리에서 민족 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것을 수락하고, 직접 독립선언서 원고를 인쇄하여 국내외에 배포하였다. 대한협회, 자강회, 조선국문연구회 등 구국 단체를 조직하여 정신 개조를 주장하고 근면과 노력을 강조하였으며, 한글 맞춤법 연구에 이바지하다가 1925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