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Km 2023-08-08
우리나라 최대의 해안사구인 신두리 사구는 빙하기 이후 1만 5천년전부터 형성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흙보다 고운 모래로 이루어진 사구의 언덕 위에 오르면 탁 트인 신두리 해수욕장의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모래사막을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6.0Km 2025-03-25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연들길
041-670-2852
만리포해수욕장 아래의 태안군 모항에 위치하며, 만수면적 3만 9천여 평의 평지형 저수지다. 저수지 전역에 연밭이 발달하고 경사가 완만하여 봄, 가을 낚시터로 각광받고 있다. 근 2~3년 동안 낚시가 이루어지지 않는 데다 붕어의 서식 여건이 잘 발달되어 있어,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 현재 65%의 저수율을 보이고 있다. 씨알은 6치급 안쪽으로 잘지만 마릿수 조황은 기대할 수 있다. 지렁이와 떡밥이 고루 잘 듣는다. 특히 연밭 사이의 수심 1~2m에 대를 펴면, 씨알 좋은 붕어를 기대할 수 있다.
6.3Km 2025-03-28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동해길 301-41
자연경관과 생태환경이 잘 보전된 농촌마을이다. 습지식물인 매화마름, 금개구리, 늦반딧불이 등 환경부 지정 멸종 위기 보호 생물종이 서식하고 있는 생태마을로 오염되지 않은 천혜의 환경을 자랑한다. 넓은 간척지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쌀을 생산하기 때문에 매화둠벙마을의 쌀은 밥맛이 특히 좋기로 유명하다. 마을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마을 내 둠벙이 104개 있으며 전국 최대 수준이다. 이 중 사람이 접근 가능한 둠벙은 약 50개이다. 마을에서는 이들 둠벙을 관찰하는 둠벙생태학습 체험을 할 수 있고 별도로 조성한 둠벙체험장에서 둠벙푸기(물고기잡기) 체험을 진행한다. 둠벙체험장에 체험을 위해 미리 풀어놓는 물고기는 실제 둠벙에서 마을 주민이 직접 잡아온 자연산 물고기다. 장뇌삼 화분 만들기 체험은 또 다른 대표 체험이다. 마을에는 약 3만 평의 장뇌삼 재배지(산)가 있는데 여기에서 7~10년 된 장뇌삼 한 뿌리를 화분에 심어 가져가는 체험이다. 매년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데 관상용으로 좋다. 마을에서 재배하는 장뇌삼을 활용하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도 크다. 사구로 유명한 신두리 해안까지 차로 약 20분 소요된다.
6.3Km 2024-08-21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동해길 301-41
매화둠벙마을 캠핑장은 충남 태안군 원북면에 있다. 태안군청을 기점으로 약 15km 거리에 있으며, 차량을 이용해 서해로, 원이로, 동해길을 차례로 거치면 닿는다. 도착까지 소요 시간은 30분가량이다. 이곳은 농촌 체험마을에서 운영하는 캠핑장으로 다양한 체험 활동과 캠핑을 즐길 수 있다. 캠핑장에는 글램핑 시설 9동을 마련했다. 사이트 크기는 가로 5m 세로 6m다. 개별 화로대, 공동취사장, 전기, 무선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다. 개인 트레일러와 카라반 입장은 불가능하다. 관리소에서는 텐트, 화로대, 난방기구, 식기를 빌려 준다. 캠핑장은 사계절 내내 운영하며, 예약은 전화와 온라인 실시간으로만 받는다. 매점은 없지만,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에 슈퍼와 편의점이 있어 물품 구매에 어려움은 없다. 캠핑장 주변에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 두웅습지 등 관광지와 꽃게탕과 꽃게장을 맛볼 수 있는 음식점 등이 있다.
7.0Km 2024-11-18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연들길 84
어은돌힐링야영장은 태안 어은돌해수욕장에 있는 솔향 그윽한 캠핑장으로 캠핑하우스도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어은돌해수욕장 바로 앞에는 소나무 숲이 있어 산림욕을 즐기고, 아름다운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바닷길을 산책하며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캠핑장은 파쇄석 구역과 데크 사이트, 단독 데크 사이트로 조성되어 있다. 또한, 샤워장, 음수대, 조리실 및 에어컨과 냉장고, 난방 시설을 갖추고 있다. 입, 퇴실 전후로 예약자가 없으면 시간이 조정 가능하고 13:00 시까지는 퇴실이 완료되어야 하며, 21:00 이전에 입실을 완료해야 한다. 매너 타임은 23:00~09:00까지이다. 특히 해가 지면 솔밭 사이로 조명이 켜지면 밤바다와 어우러져 낭만적인 분위기로 바뀌면서 바닷가 캠핑장의 진면모를 보여준다. 또한, 갯벌 체험, 갯바위 낚시 및 선상 낚시도 즐길 수 있으며, 각종 싱싱한 해산물을 싼 가격으로 현지에서 구입할 수 있다. 야영장 주변으로 천리포해수욕장, 만리포해수욕장, 파도리해수욕장 등이 있다.
7.0Km 2025-03-19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어은돌해변은 좁은 모래사장으로 영화 드라마에 나오는 전통적인 해변을 연상시킨다. 특히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좋으리라 생각되며 가족단위로 민박을 이용하면서 쉴 수 있는 곳이다. 해변 길이는 1㎞, 폭은 250m 정도이며 해변 형태는 자갈 모래로 되어 있다. 해안의 끝으로 보이는 석양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마을 입구엔 10여 가구의 민박집이 있으며, 물에서 막 끌어올린 어획물을 바로 공급할 수 있는 횟집이 있다.
7.2Km 2025-06-16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모항파도로 398-70
어은돌 오토캠핑장은 충남 태안군 소원면 파도리에 위치하고 있다. 만리포 입구에서 파도리해수욕장 방향으로 가는 길에 있다. 공동 음수대, 샤워장, 공중화장실, 전기시설이 완비되어 있어 편안하게 캠핑장을 이용하실 수 있다. 주변관광지로는 만리포해수욕장, 출렁다리, 모항항, 어은돌해수욕장, 천리포수목원, 파도리해수욕장이 있다.
7.4Km 2025-06-02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모항파도로 398-42
송림캠핑장은 충남 태안군 소원면에 자리하고 있는데, 태안군청을 기점으로 서해로, 모항파도로, 연들길을 순서대로 거쳐 약 30분이면 도착한다. 캠핑장은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선 파도리해변에 위치하고 있어 해송이 그늘을 만들어 주고, 바다의 파도소리는 캠퍼의 감성을 자극한다. 이곳은 파쇄석으로 이뤄진 오토캠핑장 160면을 4개 구역에 걸쳐 마련했는데, A구역은 수목이 우거져 다른 구역에 비해 그늘이 많다는 특징을 지녔고, B구역은 바다에 근접했으며, C구역은 관리소와 매점으로부터 가까운 거리에 있고, D구역은 사이트 앞에 주차를 할 수 있다. 전기, 무선인터넷, 화로대 사용이 가능하며, 반려견 동반 입장을 허용한다. 개인 트레일러와 카라반도 출입할 수 있다. 캠핑장 인근에는 어은돌항, 모항항, 만리포해수욕장 등 태안의 대표 관광지가 많고 바닷가 근처라서 해산물을 파는 음식점도 많다.
7.4Km 2025-03-27
충청남도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1097-21
어은돌항은 어은돌해수욕장과 맞닿아 있다. 둘 사이의 거리가 100m도 되지 않아서 여름철이면 해수욕과 낚시를 함께 즐기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어은돌항에는 정기적으로 출조하는 낚싯배가 있다. 낚시 초보자를 위한 체험 낚시 어선도 있어 경험 삼아 낚싯배에 오르는 사람들도 많다. 노래미, 광어, 볼락 등 다양한 어종을 낚을 수 있다. 구태여 출조 어선을 타지 않더라도 항구 주변에도 낚시를 즐길 수 있는 포인트가 많다.
7.8Km 2025-07-11
충청남도 태안군 원북면 옥파로 199-7
이종일 선생의 생가터는 태안보훈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이종일 선생은 1919년 3.1운동 당시 민족 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애국지사이다. 선생의 생가는 1979년 3월 1일 원북면 반계리에서 태안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이었던 박춘석에 의해 발견됐고 1986년에 복원되었다. 나무로 지은 초가집과 복원할 때 지은 사당, 낮은 돌담이 있다. 이종일선생생가지 내 주요 시설로는 초가집, 사당, 옥파이종일기념관, 체험관이 있으며 체험관에서는 태극기 만들기 체험을 운영한다. 선생은 1858년 11월 6일 태안군 원북면 반계리 89번지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총명한 재질과 뛰어난 학구력으로 한학에 전념했고 16세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1882년 수신사 박영효와 함께 사절단의 일원으로 일본을 다녀와 그곳의 개화된 문물을 접한 후, 개화의 의지가 불붙었다. 그 뒤 정2품 중추원 의관이 되었으나 쇠퇴기의 국운을 통탄하며 취임 10여개월 만에 관직을 내려놓고 구국운동에 뛰어들었다. 기울어가는 나라를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 민중 계몽과 인재 양성이 중요함을 느끼고 신문 발행과 교육 사업에 모든 정열을 쏟았다. 1919년 2월 3·1운동의 계획을 듣고 그 자리에서 민족 대표로서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것을 수락하고, 직접 독립선언서 원고를 인쇄하여 국내외에 배포하였다. 대한협회, 자강회, 조선국문연구회 등 구국 단체를 조직하여 정신 개조를 주장하고 근면과 노력을 강조하였으며, 한글 맞춤법 연구에 이바지하다가 1925년 사망하였다.